수양벚꽃,절창의 미학을 노래하다
  • 조용준 작가·문화탐사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3 15: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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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최고의 벚꽃 명승지 세 곳

봄은 짧다. 봄이 왔나 싶다 느끼면, 어느새 봄은 우리 곁에서 달아난다. 봄꽃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마음을 간질이고, 설레게 하는 것도 잠시다. 봄꽃은 봄바람과 함께 흩날려 시나브로 자취를 감춘다. 그럼에도 일순, 봄꽃이 넘쳐나는 순간이 있다. 과연 어디로 꽃놀이를 가야 할지 우리 모두를 결정장애증후군으로 만드는 고갱이 같은 그 시기.

일본은 전국 어디를 가도 벚꽃 명승지가 있다. 하지만, 교토의 벚꽃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교토 자체가 갖는 특유의 고전과 문화의 향취가 벚꽃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교토의 정취는 일찍이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명문의 하이쿠(俳句)로 남겼다. ‘교토에 있어도 교토가 그립구나, 소쩍새 울음(京にても京なつかしや時鳥)’.

교토는 794년부터 1867년까지 무려 1073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사찰과 신사가 5000개가 넘고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상점만 무려 3000여 개다. 눈길 주는 곳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재와 보물이 넘쳐난다. 전국시대가 종식되고 에도막부 체제가 들어선 다음부터 교토는 왕의 도시, 에도(도쿄)는 쇼군의 도시였다. 막부의 쇼군들이 에도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휘두르는 동안 허수아비 왕들은 교토에서 숨죽이며 지냈다. 그렇다 보니 교토에서는 왕과 귀족들의 우아한 삶을 위한 내면적인 예술과 문화 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교토는 일본 다도의 성지이자 메카로도 불린다.

교토 안에서도 벚꽃 명승지는 차고 넘친다. 교토 최고의 벚꽃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고다이지 수양벚꽃
고다이지 수양벚꽃

단 한 그루의 뛰어난 노래
고다이지(高台寺)

고다이지(高台寺)는 임제종(臨濟宗) 겐닌지(建仁寺)파의 대본산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매우 마뜩찮은 절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부인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 네네(ねね)는 히데요시가 1598년에 사망하자 불가에 귀의해 고다이인고게쓰니(高台院湖月尼)라는 법명을 얻었다. 이후 히데요시의 명복을 빌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상의해 1606년에 건립한 사원이 바로 고다이지다. 절의 이름도 네네의 법명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고다이지는 선종 사원이면서도 히데요시와 네네를 모시는 사당의 성격을 지닌다.

벚꽃 시즌에 사람들이 고다이지로 몰리는 이유는 바로 이 절 호조(方丈·주지의 방) 앞 정원에 있는 한 그루의 수양벚꽃 때문이다. 절 자체는 우리에게 통한의 역사를 가져온 장본인과 관련된 것이련만, 일본 특유의 석정(石庭)과 어울린 이 벚나무는 비록 한 그루라고 하더라도 수만 그루나 되는 것 같은 폭발적인 절창의 미학을 보여준다. 수양벚꽃이 있는 이 정원은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비공개 정원이었으나, 1989년부터 일반인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이곳을 비롯해 고다이지의 모든 정원은 센노 리큐(千利休·1522~1591)의 뒤를 이은 대표적인 다도(茶道) 스승이자 뛰어난 다원(茶院) 건축가에 정원 설계사인 고보리 엔슈(小堀遠州·1579~1647) 작품이다. 조선 핏줄인 센노 리큐는 일본 최고의 다두(茶頭)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이었는데, 조선을 치려 하는 히데요시의 계획에 반대하다가 결국 할복 명령을 받았다. 도다이지에는 센노 리큐가 디자인한 다실 ‘시구레테이(時雨亭)’도 남아 있다. 

엔슈가 만든 교토의 또 다른 정원은 단풍으로 유명한 난젠지(南禪寺)의 곤지인(金地院)과 혼보우(本坊·본사 주지) 정원이 있다. 또한 네네가 말년 여생을 보냈던 엔토쿠인(圓徳院)의 정원 역시 엔슈 작품이다. 도다이지 정원에서 벚나무 한 그루가 빛난다면, 도다이지 맞은편 엔토쿠인 정원에서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왼쪽)후시미성 벚꽃(오른쪽)난젠지 벚꽃 ⓒ 조용준 제공
(왼쪽)후시미성 벚꽃(오른쪽)난젠지 벚꽃 ⓒ 조용준 제공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메이지 신정부에 
승리를 안겨준 후시미성(伏見城)

교토 중심부에서 기차로 약 40분 거리 남쪽 후시미에 있는 후시미성(伏見城)은 1592년 히데요시가 자신의 은거 후 거처로 삼기 위해 만든 성이다. 히데요시는 이 성에서 사망했다. 이 성에서는 역사적 의미가 큰 두 번의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하나는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초전이다. 메이지 유신 성립 직전 신정부군과 막부군 사이에 벌어진 보신(戊辰)전쟁의 서막도 이곳이 무대다. 후시미성은 교통이 불편하고, 덜 알려져서 일반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그 한적함이 벚꽃놀이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난젠지 앞 꽃길과 
비와호(琵琶湖)

난젠지의 벚꽃도 훌륭하지만, 난젠지에서 시작되는 수로를 통해 내려간 물이 모이는 비와호(琵琶湖)까지의 꽃길도 더할 나위 없이 절경이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기는 하지만, 사람에 떠밀려가는 형국인 시내만큼은 아니다. 난젠지를 먼저 구경하고 산문을 나서면 이렇게 예쁜 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위 세 곳을 갈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해도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교토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시조가와라마치(四條河原町)만 가면 된다. 이곳 시라가와(白川) 시냇가 주변의 벚꽃은 상점가 불빛과 어우러지는 밤에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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