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강원 화재, 컨트롤타워가 대응 갈랐다
  • 조유빈·구민주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6 08: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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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체계 혼선과 늑장 현장방문 vs 872대 소방차 관할지역 넘어 조기 집결

재난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대응이 중요하다.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피해를 회복하는지는 피해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자취가 어떻게 남느냐에 따라 국민의 위기감과 안전의식도 달라진다.

이번 재난은 ‘불’이었다. 식목일 하루 전, 강원도 고성과 삼척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이 또 하나의 재난으로 타올랐다. 공교롭게도 이번 재난은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며칠 앞두고 일어나 또다시 안전 문제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 대한민국은 바뀌었을까. 이번 재난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자세는 어땠을까.

 

국민안전처 해체로 독립한 소방청 역할 커 

4월4일 시작된 강원도 화재의 주 불길은 하루 만에 잡혔다. 소방 당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과 장비를 신속하게 동원했다. 소방에서 발령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인 ‘3단계 대응’을 발령하고, 진화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 소방차 출동을 지시했다. 이번 화재에 동원된 소방차는 872대, 소방관은 3251명이었다. 

전국의 소방자원이 빠르게 투입된 데는 소방청이 독립기관이 된 덕이 컸다. 관할지역을 넘어 출동하려면 국민안전처 장관의 지시가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2017년 7월 이후부터 소방청장의 판단만 있다면 관할지역 구분 없이 소방차가 집결할 수 있게 됐다.

세월호 참사 후 국가재난관리 컨트롤타워 임무를 부여받아 탄생했던 국민안전처가 해체되면서다. 국민안전처는 지진과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보고체계 혼선과 늑장 현장 방문 등으로 질타를 받은 뒤 분해됐다. 이로 인해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이 독립했고, 나머지 안전정책과 재난관리 업무는 행정안전부에 흡수됐다. 안전과 재난 수습을 위해 만들어졌던 국민안전처가 해체되면서 이뤄진 소방청 독립으로 인해 이번 재난이 신속하게 수습됐다는 점은 모순적이다.

이전 정부의 재난대책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는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추진한 ‘재난안전법’의 핵심은 국가재난 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하고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이 총괄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태풍이나 산사태 같은 자연재난의 실무책임은 소방방재청이, 교통사고 등 사회재난은 안행부가 실무책임을 담당하게 돼 있었다.

당시 한국방재협회, 한국방재학회 등 10개 방재 관련 단체는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안전행정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재난안전을 담당하는 부서를 늘리려는 안행부의 부처 이기주의에 매몰된 대책”이라는 점을 집중 비판했다. 또 재난대책의 양대 컨트롤타워인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간 업무 중복에 대한 지적도 제기했다. 

이러한 비판에는 안행부가 재난상황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법안은 우려 속에 통과됐고, 세월호 참사에서는 그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민 안전을 국정전략으로 걸었던 박근혜 정부의 재난대응 체계는 세월호 참사 2개월 전에 ‘완성됐다’고 했지만, ‘작동하지’ 못했다.

 

초기 대응에 중요한 컨트롤타워 역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7년 5월 “세월호 참사 때 대처를 못 해 해경을 해체하고 안전처를 만들었는데,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부족한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정권을 교체하면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를 맡으면서 소방과 해경을 독립시키고, 육상 재난은 소방이 현장책임을 지도록 재난구조 대응체계를 일원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이번 재난 구조 대응체계는 일원화됐고, 정부의 대응도 빨랐다. 정부는 산불 발생 1시간여 만인 오후 8시30분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로 상황판단회의를 거쳤고, 자정을 기해 중대본을 가동했다. 문 대통령은 오전 11시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해 현장에 있는 김부겸 행안부 장관으로부터 상황을 실시간 보고받았고, 청와대는 24시간 위기관리센터를 가동하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필두로 산불 진화와 피해수습 상황 관리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진두지휘에 나섬으로써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이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부인할 것 없이,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비판받았던 것은 컨트롤타워의 역할이었다. 사고 7시간여 만에 중대본에 나타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발언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4월16일 오전 8시52분 최초로 세월호 침몰 상황이 신고되고, 4월18일 세월호가 완전 침몰하기까지 해경의 신속한 대응을 유도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고 접수 후 1시간이 지나 꾸려진 중대본은 기관의 보고 숫자를 모으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고, 구조자와 실종자의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휘체계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던 정부는 사고 수습을 위해, 자신들이 발의했던 재난안전법에 나오지도 않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라는 것을 구성해 중대본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마비시키기까지 했다. 보고와 지시 과정이 길어지고, 공무원들이 의전에 동원되면서 구조 활동은 뒷전으로 밀렸다. 

1차 대응기관인 해경은 선박 침몰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선박에 접근하고 나서야 해상구조에 집중했다. 선체 대부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30분가량 지난 뒤에야 잠수부가 투입됐지만 그 인원도 20명에 그쳤다. 당시 고명석 해경 장비기술국장은 중대본 브리핑을 통해 “밖으로 나와 있는 당장 구할 수 있는 인원을 구했다”며 “잠수는 전문 장비가 필요해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언급했다. 그렇게 골든타임은 지나갔다. 4월25일 민간 잠수사가 처음으로 투입됐고, 4월26일 수중 구조작업 장비인 ‘다이빙벨’을 투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선박이 전복된 위기 속에서 선원들의 대응조치는 없었다. 먼저 선박을 탈출한 이기주의와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로 한 엉터리 조난신고는 재난에 놓인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번 재난에서는 달랐다. 소방청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군의 개입도 빨랐다. 현지 경찰들은 발화지점에서 7km 떨어진 화약창고의 화약들을 옮겨 폭발 위기를 면했고, 지자체는 주민들과 학생들의 신속한 대피를 도왔다. 국방부는 4월5일 일출과 동시에 군 헬기 32대와 군 보유 소방차 26대, 장병 1만6500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청와대는 산불 진압 과정에서 가동된 정부의 위기대응체계를 정리한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의 총력 대응, 시스템 대응, 적극 대응으로 초대형 산불이 조기에 진화됐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 상황판단회의, 중대본 가동 등 모든 상황이 매뉴얼에 입각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아직 남은 과제가 있는 이유는, 재난은 쉽사리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을 회복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미 세월호 참사는 그것을 보여줬다. 참사 이후 1년4개월이 지나서야 특조위가 발족했지만 정부의 방해로 어떤 진상도 규명할 수 없었고, 지금도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재조사를 촉구하는 유족과 선체 조사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3월28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해경·해군이 세월호에 탑재된 CC(폐쇄회로)TV 영상저장장치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면서다. 사고의 원인, 조사를 방해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일 수밖에 없다. 

제천 화재·포항 지진 피해자 지원 미흡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피해 지원이 ‘권리’여야 한다는 사실도 고개를 들었다. 피해자들을 ‘수혜자’나 ‘지원 대상자’가 아닌 ‘권리자’로 봐야 한다는 제안이다. 재난을 겪었다고 해서 슬픔과 프라이버시를 공유해야 할 이유도 없으며, 악의적 대응과 왜곡을 통해 피해가 커지는 일이 없도록 피해자들의 인권에 기초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산불 재난 피해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정부는 철도공단연수원, LH속초연수원 등 각종 연수원으로 이재민들을 보내 보호에 들어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체육관에서 슬픔을 내보여야 했던 실종자 가족들과, 2017년 경북 포항 지진 당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모포만 깔고 생활해야 했던 피해자들처럼 이재민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정부의 판단보다는 재난 피해자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포항지진과 제천화재 참사 피해자 심층면접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11월 발생한 경북 포항 지진 피해자들 중 ‘국가 지원이 필요하지만 지원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높은 항목은 생활안정지원(54.3%)이었다. 2017년 12월 일어난 충북 제천 화재 피해자들은 구호 서비스와 복구 과정에 대한 정보 제공(33.3%)이 가장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재난이 일어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아직 국가의 진상조사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포항 지진 피해자들의 경우, ‘피해자의 권리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30.8%, ‘대체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20.5%였고, ‘국가의 진상조사 노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58.3%, ‘대체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는 의견이 22.2%였다. 제천 화재 피해자들은 ‘피해 주민들의 욕구를 반영한 지원 상황이 이뤄졌는가’라는 질문에 80%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심리적 피해 지원도 이뤄져야

피해자들의 심리적 피해에 대한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포항 지진 피해자 중 82.5%는 피해 이후 불안 증세를 겪었고, 불면증과 우울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55%와 42.5%로 집계됐다. 절반에 가까운 47.5%가 수면제를 복용했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봤다는 응답도 16.1%, 실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봤다는 응답도 10%나 됐다. 제천 화재 피해자의 경우 73%가 불면증을 앓았고, 정신 이상 증세로 31%가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 생각을 한 피해자는 36.7%였다.

미국 등 해외 사례처럼 피해자에 대한 추적관찰 연구가 장기간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참사 20개월째인 2015년 12월을 기준으로 단원고 생존학생 57명의 PTSD 정도를 분석한 결과, 26.3%가 임상 위험군인 것으로 밝혀졌다. 생존학생들은 배는 물론 비행기나 버스 등을 회피하거나 새로운 관계 형성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였고, 신체가 과하게 각성된 상태를 유지해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지는 증상을 호소했다. 

최희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 피해지원국장은 “우리나라 재난관리 시스템은 구조 후 최대한 소극적으로, 생명연장만 가능할 정도의 지원만 허용해 왔다.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에 대한 고민은 매우 부족했다”며 “재난이 나면 지역 체육관에 몰아넣었던 과거와 달리 이번 고성 산불의 경우에는 연수원에 거주 환경을 마련해 주는 등 개선된 부분도 최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피해자 중심의 피해지원이 다방면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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