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분식회계가 하나투어 고성장 ‘동력’이었나
  • 이석·김지영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7 13: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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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협력업체 진정서 접수 후 조사 저울질…하나투어 측 ‘묵묵부답’ 일관

국내 여행업계 1위인 하나투어가 이중장부를 관리하며 실적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나투어는 최근 몇 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해 왔다. 2018년 연결 기준으로 8283억원의 매출과 24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당초 증권가에서 예상했던 ‘어닝 서프라이즈’는 아니지만, 여행업계가 최근 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선방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런 실적이 장부 조작을 통한 분식회계를 통해 이뤄졌다는 진정서가 최근 금융감독원에 접수됐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이 진정서에 따르면, 하나투어는 현재 전 세계에 1800여 곳의 랜드사(현지 협력업체)를 두고 있다. 이들 업체는 하나투어가 고객에게 판매한 여행상품대로 행사를 진행하고, 지상비(행사비)를 지급받는다. 하지만 하나투어는 이 협력업체에 실제 발생한 지상비보다 적은 금액으로 인보이스(청구서)를 작성하게 한 다음 그 차액을 미수금으로 달아두게 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조작했다는 것이 진정서 내용의 요지다.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내 여행업계 1위 업체인 하나투어가 이중장부 관리를 통해 실적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협력업체 진정서(왼쪽)가 최근 금감원에 접수돼 주목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국내 여행업계 1위 업체인 하나투어가 이중장부 관리를 통해 실적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협력업체 진정서(왼쪽)가 최근 금감원에 접수돼 주목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하나투어 홍콩 협력업체가 진정서 접수

무엇보다 금감원에 진정서를 접수한 곳은 하나투어의 홍콩 담당 협력업체로 주요 거래처여서 어떤 식으로든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협력업체의 사장 A씨는 “국세청은 현재 항공료와 숙박비, 입장료, 식비, 가이드 비용, 차량 렌트비 등 현지 협력사가 지출한 수탁경비를 제외한 여행알선 수수료에만 세금을 부과한다”며 “하지만 여행사가 랜드사 경비에 대해 정상적으로 세금계산서를 처리하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회계 조작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하나투어와 주고받은 인보이스와 내부 전산자료를 제시했다. 이 자료에는 2015년 3월9일부터 3월15일까지 거래내역이 적혀 있다. 이 기간 동안 행사 건수는 모두 35건이고, 총 지상비는 12만4789달러였다. 당시 환율을 감안할 때 A씨에게 송금할 최종 금액은 1억4219만원으로 표시돼 있다. 하지만 미수와 과수 처리를 통해 실제 협력업체에 지급된 돈은 1억3602만원이었다. 

문제는 하나투어 내부 전산자료에 실제 지급된 돈이 아니라 최종 송금금액으로 표시돼 있다는 점이다. 미수나 과수 내역도 전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서류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하나투어가 회계 처리를 투명하게 하지 않고 있는 셈이 된다. A씨가 최근 하나투어의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며 금감원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중장부를 통해 미수와 과수 장부를 따로 관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하나투어에서 미리 작성한 인보이스 서류에 협력업체가 사인을 해서 반송하지 않으면 지상비 정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진정서와 함께 관련 근거 서류를 최근 금감원에 제출한 상태다. 

금감원 측은 현재 말을 아끼고 있다. 금감원 회계조사국의 한 관계자는 “진정서가 접수됐다고 모두 조사하는 것은 아니다. 법 위반 여부를 엄밀하게 따져 증명할 수 있을 때 조사가 가능하다”며 “조사 중인 기업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뭐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A씨는 최근 몇 년간 하나투어와 거래한 자료를 모두 금감원에 제출했다. A씨는 금감원에 “다른 해외 협력업체들도 보통 1억~4억원 규모의 미수금을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 금액을 감안하면 분식회계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에 따라서는 홍콩 협력업체에서 시작된 문제가 전 세계 랜드사로 확대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금융 당국의 최근 기조도 예사롭지 않다. 회계부정이나 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 단속을 위해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을 최근 밝혔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3월초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금감원 직원을 특사경으로 활용하기 위해 금감원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윤석헌 금감원장도 “투자자 보호에 기반한 자본시장의 성장·발전을 위해 불공정거래 조사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감한 내부 정보가 금감원에 진정서 형식으로 접수된 것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 본원 ⓒ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 본원 ⓒ 시사저널 이종현

“하나투어 미수금, 공공연한 업계 비밀”  

하나투어 주변에서는 “터질 게 터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하나투어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하나투어가 미수 형식으로 랜드사에 지상비 일부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매 분기마다 실적 목표를 정해 두고 이 수익을 맞추기 위해 랜드사에 미수금 형식으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하나투어는 몇 년 전 국세청 조사4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거액의 추징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 역시 해외 랜드사의 제보로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서의 소식통은 “갑의 횡포 때문에 드러내놓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피해를 당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결국 하나투어의 실적 역시 현지 협력업체를 쥐어짜 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하나투어는 2015년 3월 A팀장 명의로 협력사에 쪽지를 발송했다. A팀장은 이 쪽지에서 “장기적으로 지연된 미수에 대한 내용은 협력사에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반드시 사전에 공유해 줘야 한다”고 밝혀 미수가 있음을 암시한 바 있다. 시사저널은 하나투어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로 여러 차례 의사를 타진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하나투어의 거취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이 M&A(인수·합병)설이다. 하나투어는 2018년 하반기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경영악화에 따른 매출 감소와 면세점 영업 부진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면세점 진출이 경영악화를 더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이에 하나투어는 해외 매각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중국 여행상품을 주로 다루는 여행사 사장은 “하나투어가 2018년 홍콩 기업에 매각을 추진했고 계약 단계까지 거의 다 갔다”면서 “하지만 하나투어 운영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결국 결렬됐다”고 말했다.  

어떤 회사든 M&A는 가능하다. 문제는 하나투어 매각은 비자 업무와 관련돼 있어 단순한 회사 매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투어는 현재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법무부 지정 비자신청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여행업계에선 “법무부가 비자센터 운영업체 평가 기준을 안 바꾸고 있다. 하나투어에 유리한 구조로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비자센터는 법무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 외국 기업에 비자센터 운영을 맡길 수 없다. 따라서 하나투어가 외국 기업에 넘어간다면 비자센터 운영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이 같은 운영 구조여서 하나투어는 중국과 베트남 현지에 계열사가 아닌 독립법인을 설립해 비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여행사 사장은 “하나투어가 독립법인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경영자가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에도 하나투어는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기록해 주목받았다. ⓒ 연합뉴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에도 하나투어는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기록해 주목받았다. ⓒ 연합뉴스

홍콩 기업 M&A설에 “사실무근”

법무부는 3년마다 비자센터 운영기관을 모집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2일 중국·동남아 지역 6곳 비자센터 운영기관 선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심사 결과, 하나투어가 중국 상하이(上海), 청두(成都), 우한(武漢)과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 등 5곳의 비자센터 운영기관으로 지정됐다. 모두투어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 곳을 지정받았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하나투어 비자센터의 연간 수익은 50억~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선 “비자센터는 하나투어 회사 차원에서 운영업체로 지정받았다. 하지만 그 수익은 현지 독립법인을 통해 경영자가 챙기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한국 여행업계 사정을 잘 아는 중국 여행사 고위 임원은 “겉보기와 달리 하나투어는 인력 구조조정뿐 아니라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다. 그런데도 비자센터 수익이 경영자에게 빠져나가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투어는 중국국제여행사(China International Travel Service Limited·CITS)와 협업하고 있다. CITS가 하나투어의 중국 비자센터 파트너인 셈이다. 여행업계 일각에선 “하나투어가 경영악화로 CITS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경우 중국계 자본에 편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하나투어와 CITS의 이면계약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비자센터 운영권을 CITS에 일부 위임하면서 하나투어 지분을 양도하고 그 대신 CITS로부터 투자금을 받는다’는 이면계약 일부 내용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이 같은 방식으로 하나투어가 외국 기업에 넘어간다면 한국 여행업의 고질병인 저가 덤핑관광으로 여행업계가 줄도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국 여행업계엔 현재도 중국 자본이 70% 이상 투입돼 있다”며 “여행객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여행업계 수익은 대부분 중국계 자본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하나투어 관계자는 “중국 쪽에서 하나투어 매각설이 나돌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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