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공한 제3정당은 없는가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7 10: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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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개혁정치? “그때그때 달라요”…소선거구제에선 더욱 불리

거대 양당정치에 실망할 때 특히 여야가 충돌해 국회가 대치정국에 접어들게 되면 제3정당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된다. 제3정당은 현재 정치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며 대안의 요구다. 이처럼 국민이 대안의 정치를 역설하면서도 현실에서 성공한 제3정당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제3정당이 등장하면 정치가 나아질까. 

우선 제도적 측면에서 대통령제 권력구조가 제3정당의 등장에 걸림돌이 된다. 대통령선거는 승자독식 방식이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정당이 소수 의석만 차지해도 패배가 아니라 선거 이후 집권당과 연합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정당들은 당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선거에 임할 수 있다. 반면에 대통령제에서 승자는 권력의 모든 것을 얻고 패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정당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거대 양당의 득표 극대화 전략에 따른 백화점식 싹쓸이 공약에 맞서 제3정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는 정당은 불임(不姙)정당으로 취급받는다. 총선도 대통령에 종속돼 총선 때 등장하는 구호가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다. 제3정당이 거대 양당을 견제하고 때론 완충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지만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당은 지지를 모으기 어렵다. 1992년 총선에서 31명의 당선자를 낸 정주영 주도의 통일국민당이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가 16.3%밖에 득표하지 못하자 곧바로 교섭단체의 지위마저 상실하고 결국 해체되는 과정이 대통령제에서 제3정당의 운명을 보여준다. 

1992년 12월8일  통일국민당 대표로 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경기도 광명시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
1992년 12월8일 통일국민당 대표로 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경기도 광명시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

교섭단체 못 만들면 얼마 못 가 해체 수순

또한 한국 유권자의 이념적 분포가 중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제3정당의 등장을 어렵게 만든다. 한국 유권자의 이념분포는 0점(매우 진보)에서 10점(매우 보수)의 범위에서 5점의 중도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40%가 넘고 4~6점 사이에 3명 중 2명에 포함된다. 대다수 유권자들이 중도를 중심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거대 양당이 이미 이 범주에 속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어 제3정당은 새로이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이념범주의 여지가 거의 없다.

이 같은 이념분포 아래서 제3정당이 극단적 진보나 극단적 보수에 위치할 경우 총선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중도적 제3정당의 등장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이념적 중도라는 개념의 중첩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도라는 것이 쟁점 이슈들에 대해 중도적 태도를 갖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이슈에는 진보적 태도를, 다른 이슈에는 보수적 태도를 가지고 있어 이를 평균했을 때 중도라고 표현될 수도 있다. 

그동안 제3정당을 주창하는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은 이슈 차원에 따라 상이한 태도를 견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를 보면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이지만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 태도를 취했다. 세련된 정치인들은 이슈 차원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상이한 입장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상당수 유권자들은 다양한 쟁점 이슈들 사이에서 이념적 일관성을 기대한다. 유권자들 입장에서 합리적 중도는 모호한 정책 입장으로 비치기 십상이며 선거에서 지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선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정치인이나 정당이 중도를 내세워선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현행 선거제도가 제3정당의 등장을 어렵게 한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대표만을 선출하는 다수결제 소선거구제에서는 거대 양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당선 가능성을 고려해 당선될 만한 후보를 밀어줘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행태가 제3정당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행 1인2표의 총선에서 지역구 투표에서는 군소후보를 선호해도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차선의 거대정당 후보를 택하고 정당비례투표에서는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가 20%를 넘는다는 사실이 제3정당의 불리함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 선거법 개정의 골자인 의석 전환의 왜곡 문제도 있다. 다수결제 소선거구제에서는 보편적으로 거대정당이 득표율에 비해 더 높은 의석수를 확보한다. 한국에서도 의석전환율에서 제1당과 제2당이 이득을 보고 제3당 이하는 손해를 보는 현상이 항상 나타났다. 이처럼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그리고 정치 문화가 제3정당의 등장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그동안 제3정당의 출현이 어려웠고 등장한다고 해도 장기간 유지되지 못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제3정당이 등장하면 현재의 정치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평가해 보는 것이다. 만일 정치 개선의 가능성이 높다면 제3정당 등장에 부담이 되는 요인들을 변경시킬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제3정당 출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현재 정치에 대한 불만이라면 제3정당에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제3정당은 국회에서 여야 거대정당이 충돌하고 돌파구를 찾지 못할 때 여당이나 거대 야당 중 어느 한쪽과 연합해 국회에서 의사결정에 힘을 실어주고 국회 운영을 정상화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제3정당이 갈등 이슈에 균형추 역할을 한다면 국회에서 실제 결정력이 제1당이나 제2당과 같은 수준의 영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대정당들은 제3정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소수 의석의 제3정당이 키맨 역할을 맡기 때문에 거대정당 정도의 의사결정력을 갖게 되는 것이 타당한지 규범성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서구 민주국가에서도 제3정당은 단명

더욱 본질적 문제는 과연 제3정당이 기존 거대정당들과 차별적으로 소위 국민을 위한 ‘선한 정당’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 제3정당 역시 기존 정당과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의정 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정당이 기존 거대정당들과 동일한 선거 승리의 목표를 가지면서 동시에 차별적이어야 존속할 수 있다는 이중적 과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제3정당은 지역주의 덕분에 존재했으며 새로운 정치를 모색한 제3정당은 모두 실패했다. 

서구 민주주의국가에서 정치 불만의 결과물로 생겨난 제3정당은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다. 제3정당의 출현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각성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제3정당 의원들은 다른 거대정당으로 옮기거나 차기 선거에서 패하고 정당이 소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와 분노 때문에 막연히 제3정당의 등장과 이를 통한 정당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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