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중의 “그런데 말입니다”가 갖는 의미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8 10: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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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사딸라!”
유행어 탄생 과정 속 세대 간 소통의 비밀

요즘 10대들 사이에서는 “사딸라(4달러)!”가 하나의 유행이다. 배우 김영철이 한 햄버거 광고에서 막무가내로 “사딸라!”를 외치는 장면이 화제의 시작이었다. “사딸라!”는 유튜브 등을 통해 무수한 짤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사딸라 유행’은 몇 년 전부터 생겨나고 있었다. 배우 김영철조차 어리둥절해하는 이런 현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던 것일까. 

배우 김영철의 햄버거 광고 ⓒ 버커킹 CF
배우 김영철의 햄버거 광고 ⓒ 버커킹 CF

이야기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방영됐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그가 노임 협상을 하면서 외친 대사 “1달러는 너무 적소. 4달러쯤 합시다”라는 대목이 있다. “어찌 일급 1달러를 네 배나 올린단 말이오. 1.5달러로 합시다”라고 말하는 사측에 눈도 안 깜박이며 “사딸라”를 외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뒤늦게 유튜브를 타고 회자되면서 급속도로 퍼졌고 이제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무려 17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대사 한 줄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과 그 공간에서 짤방들을 만들어내며 킥킥대는 젊은이들에 의해 새롭게 유행어로 탄생했다. 

김영철은 이미 꽤 오랫동안 《태조 왕건》에서 했던 궁예 연기로 유튜브에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누구인가. 누가 지금 기침 소리를 내었어”라는 이른바 ‘관심법 대사’는 짤방으로도 만들어지고 무수한 패러디로도 활용됐다. 김영철은 워낙 이 궁예의 아우라가 커서 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고 했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들을 즐기고 있다. 실제로 KBS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를 보면 그가 자신을 내려놓고 동네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우러지는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어필한다. 이제는 10대 아이들이 달려와 “사딸라 아저씨다”라고 해도 빙긋이 웃으며 반가워하는 김영철의 그 ‘젊은 느낌’은 그가 햄버거 광고는 물론이고 립스틱 광고까지 찍은 이유가 됐다. 립스틱 광고는 ‘발라보지 않아도 피부 색깔에 맞는 톤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립스틱의 소구 포인트를 궁예의 관심법과 연결 지었다. 김영철이 벗어나려 했던 궁예 이미지는 그렇게 발랄하게 재창조돼 그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주었다. 


연예인들이 유행어 만들어내던 시대 지나

한때 유행어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그 주요 산실이었다. 《개그콘서트》가 그랬다. 그 이전에도 《유머일번지》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혹은 개그맨들이 내놓은 대사들이 유행어로 탄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내놓는 유행어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건 최근 개그 프로그램들이 과거만큼 뜨겁지 않아서 생겨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튜브 같은 SNS를 통해 유행어의 탄생 과정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행어는 이제 개그맨 같은 연예인들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그걸 소비하던 대중들이 찾아내 재창조하는 것이 됐다. 그래서 과거에는 그저 드라마의 한 대사였거나 어떤 장면이었던 것이 다시 현재로 소환돼 무수히 패러디되거나 재생산되면서 유행어로 만들어진다. 주체가 달라진 것이다. 한때는 소비자로만 머물던 대중들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이제는 생산자가 되면서 생겨난 변화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 ⓒ SBS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 ⓒ SBS

또 다른 대표적인 유행어의 사례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이 주인공이 된 “그런데 말입니다”가 있다. 사실 이 말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기조일 수 있는 궁금증과 반전효과를 주기 위해 많이 사용되던 말이다. “이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것이었다”라는 이야기로 반전을 주거나 혹은 “이런 의혹이 있다”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다. 하지만 이 말은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면서 급속도로 유행어가 됐다. 거기에는 김상중 특유의 말하는 톤이 작용한 면이 있다. 특유의 그 진지함이 묻어나는 톤은 살짝만 무너뜨리면 웃음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김영철의 “사딸라”나 관심법 대사가 화제가 됐던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상중은 대중들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이 톤 때문에 시 낭독이 등장하는 은행 광고를 찍었고 나아가 최근에는 은행을 소재로 하는 《더 뱅커》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초반에는 특유의 톤 때문에 《그것이 알고 싶다》와 그 광고가 떠오른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가 돼 가고 있다. 김상중 역시 유튜브 시대의 톡톡한 수혜자가 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뉴트로 문화

김영철이나 김상중의 뜻하지 않게 만들어진 유행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들과 중년 이상의 나이 든 세대 사이에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소통의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김영철도 김상중도 이런 유행어의 수혜자가 된 건 젊은 세대들이 자기 식으로 재해석한 그 짤방들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소통하려는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젊은 세대들이 자신이 했던 대사들을 즐기도록 내버려두었고, 나아가 그런 즐거움을 공유했다. 사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든 세대들이 젊은 세대와 소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취향도 또 언어도 정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딸라” 같은 유행어는 단박에 이런 장벽들을 뛰어넘는다. 그러고 보면 젊은 세대들도 무조건 나이 든 세대들을 이른바 ‘꼰대’라 칭하며 거리를 두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들 역시 소통하고 싶지만 거리를 두는 어른들이 불통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최근 들어 불고 있는 이른바 ‘뉴트로(New+Retro)’ 열풍은 젊은 세대들에게 옛것이 구닥다리가 아니라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그래서 이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방영됐던 옛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짤방으로 찾아내고 공유하며 함께 즐기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순풍산부인과》 같은 시트콤들이 짤방으로 재편집돼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건 그래서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런 옛 시트콤 정도를 챙겨 보는 것이 이른바 ‘인싸(인사이더라는 뜻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불리고 있다. 그러니 갑자기 김영철이나 김상중처럼 의도치 않은 유행어들이 그들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연스럽게 옛것이 가진 아날로그의 갈증들이 묻어난다. 빠르게 변화해 가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는 아날로그적 요소들을 찾아내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엉뚱한 지점에서 요즘처럼 소원해진 세대 간의 소통의 물꼬가 가능해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과거는 기꺼이 스케치북이 되어 주었고 현재는 그 위에 스케치를 하는 풍경처럼 보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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