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침입자가 남긴 유일한 발자국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9 16:09
  • 호수 15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락인의 사건추적] 광주 대인동 식당 주인 살해 사건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에는 오랫동안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이 위치해 있었다. 주변에는 숙박업소와 식당이 밀집해 있는 등 항시 외지인들이 드나들던 번잡한 곳이었다. 1992년 터미널이 서구 광천동으로 이전하면서 이곳 상인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상권을 잃은 숙박업소들은 궁여지책으로 장기투숙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방을 싸게 내놓았다. 식당에도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최아무개씨(66) 부부는 20년째 대인동 골목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인숙 1층을 빌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을 내며 식당 안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했다. 그래도 세 자녀를 번듯하게 키워내 ‘자식 농사’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아들은 의과대학을 나와 병원 전문의로 일하고, 딸들도 디자이너 등 전문 직종에 종사했다. 

지난 2008년 10월18일 최씨 아내 김아무개씨(58)는 결혼한 딸의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남편 최씨는 혼자 식당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다음 날인 10월19일 오전 10시쯤 택배 배송사원이 최씨의 식당을 찾았다. 

평소 때 같으면 벌써 문을 열고 점심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인데도 식당 문은 잠겨 있었다. 택배 배송사원이 문을 두드려 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식당 문이 안에서 잠겨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럼 옆 슈퍼에 맡겨 놔라”라고 말한 뒤 남편에게 전화를 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든 김씨는 2층 여인숙 주인에게 전화해 “식당에 찾아가 남편이 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인숙 주인은 김씨가 알려준 대로 잠긴 문틈을 비집고 어렵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안쪽을 보니 최씨가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면서 여인숙 주인은 기겁하고 말았다. 최씨가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고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던 것이다. 이때가 오전 10시50분쯤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참혹한 시신에 혀를 내둘렀다. 최씨는 머리를 둔기에 맞아 후두부가 함몰된 상태였다. 시신은 사후 강직이 와서 몸이 굳어 있었다. 방바닥은 최씨가 흘린 다량의 피로 얼룩졌고, 벽에도 혈흔이 튀어 있었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범행도구 찾았지만 지문·DNA 검출 안 돼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리고 과학수사반 9명을 투입해 현장 감식에 들어갔다. 시신 주변에는 범행도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감식에 참여했던 수사관이 내실과 바닥 사이의 틈에 있던 공구함에서 망치(장도리)를 찾아냈다. 

육안으로는 깨끗했으나 혈흔반응을 했더니 최씨의 DNA가 나왔다. 범행도구는 찾았지만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나 DNA 등은 검출되지 않았다. 다만 현장에는 여러 개의 발자국이 있었는데, 혈흔 시약을 뿌려봤더니 피가 묻어 있었다. 사건 현장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범인의 흔적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최씨의 사망원인은 ‘둔기에 의한 두부 손상’이었다. 최씨의 손에는 공격을 받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면서 생긴 방어흔이 있었다. 저항하거나 도망치려고 한 흔적은 없었다. 이것은 최씨가 잠을 자다가 불시에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씨는 평소 식당 영업이 끝나면 습관적으로 소주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 현장에도 최씨가 마신 것으로 보이는 소주병과 소주잔이 있었다. 술잔은 하나였고 다른 사람의 DNA가 검출되지 않아 최씨 혼자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부부에 따르면 10월18일 오후 10시쯤 식당 앞을 지나가다가 최씨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인사를 나눴다. 이후 최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10월19일 새벽이다. 인근 노래방 사장이 오전 1시30분쯤 문을 닫은 후 식당 앞에 있던 최씨를 목격했다. 아마도 이때 식당 문을 닫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걸 토대로 보면 최씨는 10월19일 오전 1시30분부터 택배 배송사원이 방문한 오전 10시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좀 더 시간을 좁혀보면 최씨가 깊은 잠에 빠진 후 날이 밝기 전인 오전 2~5시 사이로 추정된다. 

식당 안팎에는 범인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범인이 침입할 당시 식당 문은 자전거 자물쇠로 안에서 잠겨 있었다. 이 때문에 범인은 다른 통로를 통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외부 화장실로 나가는 문이 있었는데 외출할 때 외에는 밤에도 잠그지 않았다. 문을 열면 외부로 연결된 좁은 통로가 나오고, 담을 넘으면 다시 또 다른 통로가 있다. 여기에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식당 안에서 화장실로 나가는 곳에 범인의 발자국이 있었고, 담을 넘으면서 장갑 혈흔을 남겼다. 그리고 담을 넘은 후 벽을 짚으면서 장갑 혈흔 3개를 추가로 남겼다. 범인은 식당에 침입하고 나갈 때 이 통로를 이용했던 것이다. 

범인이 훔쳐간 물건들 ⓒ 광주동부경찰서
범인이 훔쳐간 물건들 ⓒ 광주동부경찰서

그런데 범인의 범행 목적이 애매했다. ‘강도’인지 ‘살인’인지가 불분명했다. 범인이 강탈한 물건은 최씨가 손에 차고 있던 금반지와 금시계가 전부였다. 금반지와 금시계는 최씨의 아내가 금은방에서 큰맘 먹고 구입해 선물로 준 것이다. 순금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형태인 금반지는 당시 시가로 60만원, 금시계는 300만원 정도였다.

이상한 것은 범인이 다른 물건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최씨의 주머니에는 현금 7만7000원이 있었고, 식당 계산대에도 현금이 있었으나 뒤진 흔적이 없었다. 강도가 목적이었다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두고 간 것이 의아하다. 반지와 시계는 장물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걸리고 위험부담도 뒤따른다. 

식당이 강도의 표적이 될 만한 곳도 아니었다. 최씨가 이곳에서 장사를 오래 하기는 했지만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딱히 훔쳐갈 만한 물건도 없었다. 

강도로 침입했다가 최씨에게 발각되자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도 아니다. 범인이 식당에 침입할 당시 최씨는 술을 마신 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범인은 이런 최씨를 장도리로 머리를 집중적으로 내리쳐 살해했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8번이나 내리쳤고, 이로 인해 주변의 뼈가 부서질 정도였다. 

경찰은 잔인한 살해 방법으로 봤을 때 원한에 의한 살인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식당에 침입한 후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반지와 시계를 빼간 것으로 본 것이다. 

경찰은 최씨의 주변을 집중 탐문했지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최씨가 사건 발생 5년 전 계단에서 굴러 뇌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성격이 좀 괴팍하게 변했다고 한다. 

감정의 변화가 심했고, 가끔 욱하는 성질이 있어 마찰을 빚기도 했다. 식당에서 화투판이 종종 벌어졌는데 이때 돈을 잃으면 판을 엎어버리고, 끼어들어 참견하는 과정에서 언쟁도 빚었다. 그렇다고 원한을 품고 살인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내기 돈이 200~300원 수준이어서 크게 돈을 잃은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사람이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올랐다. 최씨와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던 구아무개씨(62)가 사건 이후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구씨는 식당 건물 2층 여인숙에 머물던 일명 ‘달방’ 거주자였다. ‘달방’은 매월 일정 금액의 숙박료를 내고 장기간 거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구씨는 경기 지역에서 물건을 받아 광주·전남 지역 유흥업소 종사자들에게 치석제거용 치약을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해당 여인숙에는 매일 7000원 정도를 내고 6개월 정도 머무른 것이 확인됐다. 

경찰은 사실상 구씨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어렵게 한 은행에서 구씨가 거래처에 보낸 무통장입금 전표와 은행 창구 폐쇄회로(CC)TV에 찍힌 구씨의 사진을 확보했다. 경찰은 2008년 12월16일 구씨를 살인 혐의로 공개 수배하고 그의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 수천 장을 전국에 배포했지만 그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유력 용의자 검거했으나 사건과 무관

그러다 4년이 지난 2012년 광주지방경찰청에 꾸려진 미제사건전담팀이 재수사에 돌입했다. 수사팀은 은행 무통장입금표에서 구씨의 지문을 확보해 신원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구씨를 지명수배 명단에 올려 전국에 공개 수배했다. 드디어 2015년 10월 구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하지만 범인과 구씨의 신발 크기가 확연하게 달랐다. 거짓말 탐지기 반응도 ‘진실’로 나왔다. 경찰이 수년에 걸쳐 ‘유력 용의자’로 지명수배까지 하면서 추적했던 구씨가 잡고 보니 최씨 살인과는 무관했던 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수사는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당시 사건 현장 인근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영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유일한 희망은 현장에 남은 발자국과 범인이 강탈해 간 금반지와 금시계다. 발자국의 경우 사건 초기 경찰이 신발 구매자들을 찾아 조사를 벌였으나 너무 광범위해 용의자를 좁혀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훔쳐간 장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지의 경우 측면에 용 문양이 있어 전당포나 금은방 등에 나왔다면 금방 알 수도 있다. 하지만 범인이 녹였거나 깊은 곳에 은닉했다면 찾아낼 방법이 없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식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면식범이다. 

범인은 최씨의 아내가 잠시 식당을 비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식당과 옆 빌라 사이에 화장실로 이어지는 문을 통해 침입한 것도 평소 식당을 여러 번 출입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심지어 마루 밑 구석진 곳에 공구함이 있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최씨를 살해하면서 범인의 옷에도 혈흔이 튀면서 묻었을 것이다. 범인은 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당시 택시기사들 중에 피 묻은 옷을 입거나 수상한 사람을 태운 사람도 없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범인은 식당을 자주 출입했던 손님 중 한 명이며, 최씨 식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근 거주자일 가능성이 높다. 

2. 피해자를 계획적으로 노렸다. 

범행 현장에 남겨진 범인의 유일한 흔적은 희미한 발자국이 전부다. 식당 안에 있던 장도리를 흉기로 사용한 후 깨끗이 닦아낸 다음 다시 공구함에 넣어 놓았을 정도로 치밀했다. 식당에 침입할 때는 장갑을 낀 상태였다. 이처럼 범인은 용의주도하게 움직였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하고 식당에 침입해 살인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3. 범인은 키 170cm, 몸무게 70~74kg 정도다.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범인의 족적은 270mm지만 실제 발 크기는 약 2cm 정도 작다. 이를 토대로 할 때 범인의 발 크기는 250~255mm로 추정된다. 족적과 보폭을 통해 범인의 키는 170cm, 몸무게 70~74kg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 밑창 무늬로 같은 종류의 신발을 찾은 결과 주로 40~50대가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