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덧셈의 정치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3 09: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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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쟁 같지 않은, 허접한 진흙탕 싸움이 끝나고 정치권에서는 전과를 따지는 셈이 바쁘다.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을 둘러싼 패스트트랙을 놓고 서로 자기네가 옳다고 강변하지만, 아직 그 내용조차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며칠 동안 국회를 아비규환으로 만든 몸싸움의 잔상은 또 어떤가. 일찌감치 기대감을 잃은 국회라지만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폭력적 전개로 인해 가뜩이나 고단한 일상에 불쾌감만 더 커졌다.

이 싸움에서는 어차피 누가 이기고 졌음을 따질 수 없다. 국민의 시선으로 보면 양쪽 다 초라하고 부끄러운 패자일 뿐이다. 그들은 그 싸움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내상을 입었고, 그보다 더 큰 아픔을 국민들에게 주었다. 혹시나 하며 정치에 조금이라도 다가가 보려 했던 국민들에게 이를테면 느닷없는 물대포를 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국회 패스트트랙 공방 이후 나온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따지면 집권당인 민주당이나 제1야당인 한국당이나 모두 지지층 결집에서는 일단 상당한 소득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두 정당 모두 정당 지지도가 이전보다 소폭이나마 오르는(5월 첫째 주 결과) 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을 성공이라고 치부한다면 큰 오산이다. 대립이 격화될수록 기존 지지층이 더 똘똘 뭉치는 것은 우리 정치판에서 흔히 보아 오던 일정한 경향일 뿐이다.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이후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4월 임시국회가 본회의 한번 못열고 5월7일 종료된다. 이날 국회에 견학온 방문객들이 본회의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이후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4월 임시국회가 본회의 한번 못열고 5월7일 종료된다. 이날 국회에 견학온 방문객들이 본회의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셈법은 누가 뭐래도 ‘덧셈’이다. 다수결이 우선하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덧셈의 위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크다. 더하고 더해서 뭉친 그 다수가 여론이 되고 표가 되는 이치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나타난 민주당과 한국당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답답한 모습이다. 둘 다 덧셈 정치에 꼭 필요한 외연 확장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방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는 형국이다. 집권당 대표가 상대 당을 향해 ‘도둑놈’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야당이 정부·여당을 향해 ‘좌파 독재’라 몰아붙이고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 폭파”와 같이 도 넘은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은 상대 진영뿐만 아니라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까지 밀쳐내는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에 소속된 사람들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지금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최고의 유인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합리성이다.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은 합리적인 행동이나 절차가 선행되지 않는 한 결코 열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보수 정당 지지자는 아니면서 너무 앞서가는 진보에 식상해하는 합리적 보수층이 있다. 그들은 원색적이고 투박한 보수에 마음을 내주기는 아직 꺼림칙하다고 여기며, 보수가 좀 더 유연하고 총명해지기를 원한다. 반대로 진보 정당 지지자가 아니면서 시대 변화에 둔감한 보수에는 싫증을 느끼는 합리적 진보층도 있다. 그들은 진보가 혁신적으로 나아가되 조금은 덜 성급하고 사려 깊기를 바란다. 그런 합리적 보수층과 합리적 진보층을 진정한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지금의 여야 정당들이 해야 할 일이다. 둘 다 합리적인 언행과 전략으로 접근해오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편에만 의지한 정치를 계속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뺄셈의 정치’이자 미련한 ‘호가호위’이다. 그런 정당은 이미 집권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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