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횡포에 멍드는 ‘뉴스테이 1호’ 사업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1 10:05
  • 호수 15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대주택 조건으로 용도변경 된 ‘쌍용제지 오산공장’, 일반분양으로?

민간제안형 뉴스테이(임대주택) 1호 사업으로 주목받았던 경기도 오산시 청학동 쌍용제지 오산공장 뉴스테이 사업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임대주택을 지으려던 당초 계획과 달리 사업은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관할 지자체인 오산시와 토지 소유주인 쌍용제지가 해당 부지를 당초 의도와 다르게 개발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사업의 신탁금융기관인 하나은행과 메리츠금융그룹 산하 금융사들 또한 토지 소유주에게 유리하도록 처신한 것도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원 안은 2018년 2월 하늘에서 내려다본 경기도 오산시 청학동 쌍용제지 공장. 지금은 건물을 헐고 빈터만 남아 있다. ⓒ 국토부 제공
원 안은 2018년 2월 하늘에서 내려다본 경기도 오산시 청학동 쌍용제지 공장. 지금은 건물을 헐고 빈터만 남아 있다. ⓒ 국토부 제공

공업용지에서 주거용지로 바뀌며 개발 분쟁 

쌍용제지 오산공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폐공장으로 방치돼 있었다. 주변은 허허벌판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인근이 세교2지구로 개발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토지 소유주인 쌍용제지도 이 땅을 개발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공업용지로 묶여 있다는 점이었다.  

쌍용제지는 국토부로부터 2017년 2월 민간제안 촉진지구 후보지 선정을 따냈다. 쌍용제지는 이곳에 임대주택 1300가구, 분양주택 13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해 3월 쌍용제지는 AMC(자산관리회사)와 ‘오산세교위탁관리부동산회사’라는 리츠를 함께 세우고 개발을 시도했다. 민간이 제안한 첫 촉진지구 사업이라는 점에서 오산공장은 상징성이 있었다. 용적률이 280%로 높아지면서 사업성에 날개를 달았다. 바로 옆 오산세교2지구의 평균 용적률은 180%였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용도변경도 이뤄졌다. 공업용지로 묶여 있던 게 주거용지로 바뀌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인허가를 담당한 오산시는 2017년 9월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도시기본계획 일부변경(안) 승인’을 조건부로 의결했다. 그리고 그해 말 도시기본계획(변경)을 승인했다. 이제 오산시 도시기본계획을 토대로 국토부가 촉진지구 지정만 해 주면 임대주택 사업은 문제 없이 진행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공업용지에서 주거용지로의 전환은 토지를 개발하려는 사업체 간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오산시의 승인이 난 2017년 9월 무렵이다. 사업주체를 누구로 하느냐를 놓고 토지 소유주인 쌍용제지와 리츠 운영 주체인 AMC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불거진 것. 2018년 10월, 법원 1심은 개발 소유권을 넘겨달라는 AMC의 요구를 기각함으로써 쌍용제지 손을 들어줬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서 승소한 쌍용제지가 국토부에 촉진지구 지정 취소를 요청하면서 사업은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다. 당초 오산시의 주거용지로의 도시기본계획 변경은 촉진지구 지정을 위해 이뤄졌는데, 만약 이게 취소되면 용지 전환만 이뤄진 꼴이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오산시 도시계획팀 관계자는 “국토부로부터 지구지정을 받아야 기본계획 변경이 확정되는 등 조건부로 승인받았기 때문에 아직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산시는 현재 새로운 도시기본계획을 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 촉진지구 지정’이라는 조건이 빠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국토부 민간임대정책과 관계자는 “오산시로부터 ‘조건부 규정을 빼도 되는지 검토해 달라’는 문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뉴스테이가 들어설 자리에 임대주택은 사라지고 대규모 일반분양 아파트만 남을 수 있다.

이 와중에 쌍용제지는 해당 부지를 부동산개발업체 ‘네오밸류’에 매각했다. 지난 4월1일 공매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공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부적절한 처사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소유권을 놓고 소송이 오가는 와중에 사업의 신탁금융기관인 하나은행이 돌연 공매를 처리한 것이다. 하나은행은 “공동1순위우선수익자인 메리츠종금증권·메리츠화재보험·메리츠캐피탈의 요청에 따라 공매를 신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메리츠금융그룹 산하 3개사는 “해당 사업자(AMC)가 기한이익을 상실했다고 판단해 공매를 신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지에 대한 가처분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유권이 바뀌면 문제는 더욱 꼬인다. 공매라는 사법부의 방식을 통해 행정 절차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어서다. 


하나은행, 서둘러 무리하게 공매 처리

네오밸류의 낙찰가는 1451억6000만원이다. 쌍용제지와 법적 분쟁 중인 AMC 관계자는 “서면 독촉 등 기한이익 상실의 기본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았으며 가만히 있어도 토지주인 쌍용제지로부터 연체이자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사가 공매를 신청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네오밸류가 대출계약을 체결한 시점도 논란이다. 네오밸류는 아시아신탁과 3월29일 대출계약을 맺었다. 토지가 공매로 나올 거라고 공고가 나온 시점은 3월12일. 통상적으로 금융기관의 대출심사가 한 달 정도 걸린다고 가정하면, 네오밸류는 공고 전 공매 처리 사실을 알았다고 볼 수 있다. 

대출계약도 낙찰 전에 끝마쳤다. 물건을 살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출이 결정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네오밸류에 자금을 대준 곳은 공교롭게도 똑같이 메리츠금융그룹 산하 3개 계열사다. 해당 사업 추진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공매 처리를 결정한 금융기관이 똑같은 부지에 또다시 자금을 대줬다는 점은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의도된 공매 신청이라는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대출 금액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에 대해 메리츠종금증권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로 진행됐다는 것 외에는 확인해 주기 힘들다”고 밝혔다. 소유권을 넘겨받은 네오밸류가 지구지정 취소 후 일반분양을 시도할 경우 오산공장 부지는 특혜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의도했던 임대분양은 흐지부지된 채, 결과적으론 일반분양을 위해 토지용도를 변경해 준 꼴이 되기 때문이다. 네오밸류 관계자는 “뉴스테이 사업과 상관없이 취득할 수 있는 인허가 용도에 부합하는 적절한 개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주민의 주거안정 제고에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최종호 조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업지의 소유권 변동을 만드는 일체의 처분(공매)은 가처분 소송에 저촉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테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 부동산정책

박근혜 정부의 핵심 주거지원 정책인 뉴스테이(New Stay) 사업은 공공임대와 달리 연 임대료 상승률을 5% 이내로 제한하면서 최소 8년간 거주를 보장받는다. 그럼으로써 입주민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게 목표다. 대신 이를 추진하는 민간사업자에게는 주택도시기금을 싸게 융자해 주거나, 택지를 싼값에 공급해 준다. 인허가 과정에서 혜택도 뒤따른다. 민간 건설사가 짓지만 완공 후 운영·관리는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가 맡도록 허용한 것도 기존 개발사업과는 다르다. 뉴스테이 사업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성이 강화되면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