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어설픈 용서’가 ‘하도급 공화국’ 키웠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9 13:00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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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미발급 12년간 1522건…과징금은 11번뿐, 정부 대응 적절성 논란

“어설픈 용서? 그 자체가 악이고 악을 만들어내는 근원이거든.”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가톨릭 사제 역할을 맡은 김해일(김남길 분)은 이렇게 말했다. 이 한마디는 대한민국의 고질적 병폐를 제대로 꼬집고 있다.

왜 한국인들은 아직도 ‘권선징악’에 열광하는가. 영화 《베테랑》과 《내부자들》에서 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이 단순하면서도 일차원적인 스토리에 반응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최소한 그렇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권선징악은 왜 ‘정의구현’ 되지 않을까. 맞다. 정의구현 사제가 이미 얘기했다. ‘어설픈 용서’ 때문이다.

‘하도급’이라는 세 글자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비극을 빚고 있다. 매년 약 300명에 달하는 건설노동자가 추락사하는데, 상당수가 하도급업체 소속이다. ⓒ 연합뉴스
‘하도급’이라는 세 글자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비극을 빚고 있다. 매년 약 300명에 달하는 건설노동자가 추락사하는데, 상당수가 하도급업체 소속이다. ⓒ 연합뉴스

반복되는 하도급의 비극

2018년 7월4일 용인의 한 전원주택 공사현장에서 50대 하청업체 대표가 분신해 자살했다. 자재 납품대금 1억3000만원을 받지 못해 원청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6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그가 남긴 A4용지 3장의 유서에는 ‘한(恨)’이 서려 있었다. 시행사 대표에게 쓴 유서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들 월급은 꼭 챙겼습니다. 사장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가슴 먹먹한 사연은 금방 잊혔다. 사실 우리는 이런 내용의 뉴스에 많이 무뎌져 있다. 무감각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청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니 한다. 뉴스도 딱 여기서 멈췄다. 이후 사건이 어떻게 매듭지어졌는지, 누가 처벌받았는지에 대한 뉴스는 찾기 어려웠다. 맞다. ‘하도급.’ 이 세 글자에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비극이 빚어진다.

하도급은 수급인이 다시 제3자에게 도급을 주는 걸 말한다. ‘하청’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하도급에 대해서는 사실 큰 설명이 필요 없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매일 목격하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장면은 물론 건설현장이다. 소설가 김훈은 5월14일 ‘아, 목숨이 낙엽처럼’이란 한겨레 기고를 통해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며 1년에 270~300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추락사하고 있다고 썼다. 김훈은 하도급 구조를 ‘먹이 피라미드의 문제’라 했다.

‘먹이 피라미드’가 무슨 뜻일까. 김훈의 설명이다. “재벌이나 대기업이 사업을 발주하면 시공업체가 공사를 맡아서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원청, 하청, 재하청으로 하도급되고, 이 먹이 피라미드의 단계마다 적대적 관계가 발생한다. 이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고층으로 올라가고, 고층에서 떨어진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고.

이런 상황을 정부가 내버려두고만 있지는 않았다. 1984년 하도급법이 제정됐고 지금까지 43번 개정됐다. 43번이나 법을 고치고 보완할 만큼 ‘갑질’은 다양하게 진화했다. 문제의 근원은 ‘돈’이다. 그래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라는 제도가 탄생했다. 이 제도는 원도급업체의 파산 등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대금을 지불해 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 종합건설업체 한 개가 부도나면 수백 개 하청사업자의 연쇄 도산과 소속 노동자에게 고통을 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솜방망이 처벌’도 변함 없어

시사저널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토교통부로부터 ‘2007년 이후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미발급 업체현황’ 자료 일체를 확보했다. 연도별 통계를 살펴보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미발급 적발은 정부의 의지와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7~11년에 적발된 업체는 총 7곳에 그친 반면, 2012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2년 182곳, 2013년 229곳으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 미발급 업체는 급증하다 2014년 193곳, 2015년 87곳 등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2016년 다시 165곳으로 증가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다시 83곳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95곳이 적발됐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은 업체는 총 1041곳이다.

이 통계는 현실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분명한 것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80개 이상의 업체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았고, 이 추세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현 정부에서도 이런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들 업체에 대한 ‘조치 내역’을 보면 답이 보인다. 정부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아 시정명령, 영업정지, 과징금 등의 처분을 내린 건수는 총 1522건이다. 복수로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를 발급하지 않은 업체들이 있어 같은 기간 적발된 업체 수(1041곳)와 차이가 있다.

여기서 바로 비극의 고리, ‘어설픈 용서’가 시작된다. 총 1522건 중 가장 가벼운 처벌에 해당하는 시정명령은 1449건으로 전체의 95.2%를 차지했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처분인 영업정지와 과징금을 받은 건수는 각각 62건(4.1%), 11건(0.7%)에 불과했다. 그나마 영업정지와 과징금 처분은 문재인 정부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현 정부 출범 전 과징금 처분은 2015년 딱 1차례 있었지만 2017년 1건, 2018년 9건으로 늘어나는 모습이다. 영업정지 처분도 2014년 8건, 2015년 7건, 2016년 19건, 2017년 10건, 2018년 18건으로 최근에야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하청업체와 소속 노동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 숫자 뒤에 ‘만에 하나’를 걱정하며 불안에 떨어야 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건설업체는 2018년 6월 기준 전국에 5만5513개사가 있으며 이들이 상시 고용하고 있는 인원과 일용직 노동자는 100만여 명에 달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한 원청업체가 부도나면 평균적으로 약 200개 하청업체가 직접적 타격을 입고 약 1200억원에 이르는 피해가 난다. 과거 한보그룹이 부도났을 때 170개 전문 하도급업체가 940여억원의 피해를 보았다.

2018년 10월4일 50대 하청업체 대표가 원청 건설사와 공사대금 문제로 갈등을 빚다 분신해 자살했다. 하도급자가 임금체불을 하게 되는 원인 중 94%가 원도급자의 공사대금 미지급 때문이다. ⓒ 연합뉴스
2018년 10월4일 50대 하청업체 대표가 원청 건설사와 공사대금 문제로 갈등을 빚다 분신해 자살했다. 하도급자가 임금체불을 하게 되는 원인 중 94%가 원도급자의 공사대금 미지급 때문이다. ⓒ 연합뉴스

건설업 임금체불, 9년간 두 배 증가

‘어설픈 용서’는 어떤 비극을 낳았을까.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임금체불 규모는 2926억원이다. 2010년 1463억원과 비교해 9년간 정확히 두 배 늘었다. 임금체불의 90% 이상은 하도급업체에서 일어난다. 건설노동자의 70% 이상을 하청이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의 임금체불 원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도급자가 임금체불을 하게 되는 원인 중 94%가 원도급자의 공사대금 미지급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장 실패’와도 같은 이런 상황을 끊어내려면 정부가 엄중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홍근 의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당초 목표한 정책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상습적으로 지급보증서를 미발급하는 업체에 보다 강력한 제재를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서구 전 대한전문건설협회 본부장은 저서 《하도급 솔루션》에서 “크든 작든 모든 불공정행위에 ‘징벌적 보상제도’와 ‘과징금 부과제도’를 도입하고, 가장 약한 처벌은 손해금액의 3배, 가장 강한 처벌은 10배 정도로 차등해 강화시켜야 한다. 이 정도는 돼야 60년 된 불공정 관행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오래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정부가 오래된 숙제에 나설 때다. 

하도급자들, “계산으론 남는데 뒤로는 밑진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하도급 불공정 문제에 있어 가장 심각한 곳은 건설”이라고 했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건설사업은 수주산업이다. 공사가 수주돼야 일을 할 수 있다. 하도급업체 일감은 오로지 공사 일감을 주는 원도급업체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하청업체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은 원청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극명히 보여주는 게 있다. 바로 호칭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원도급 회사 30대 대리를 ‘할배’라 부른다 한다. 50~60대 하도급 사장들이 원도급사 30대 대리를 ‘할배’라고 부를 정도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또 다른 이유는 10여 년 전보다 현저히 낮아진 건설공사의 수익성이다. 대한건설협회 발표에 따르면, 종합건설업체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006년 5.9%에서 2015년 0.6%로 급감했다. 제조업 평균인 5.1%에 크게 못 미친다. 2006년만 해도 제조업을 앞섰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역전된 뒤 그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건설업계는 어렵다. 공사발주량도 줄어들고 수익성도 낮아지고 사업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원도급자는 수익성이 낮은 공사를 따서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극대화시키려 하니 오로지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하도급 금액을 깎는 것이다. 그렇게 하도급 금액을 마른수건 짜내듯 짜고 또 짜내는 것이 이미 일반화됐다. 공사대금 입금도 늦어진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조사 결과를 보면 법에 정한 60일을 초과해 하도급대금을 수령하는 경우는 전체의 22.8%나 됐다. 장기어음이나 물건으로 대신 받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제대로, 제때 못 받는 경우는 별개다.

그나마 공사대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공사 진행 과정에서 추가공사와 재공사 등이 수없이 이뤄지게 되는데, 하도급업체 입장에서는 계약금액이 적정선에서 정해졌다고 해도 추가 재공사만큼 계약금액이 깎이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렇게 하청업체는 당초 계약금액에서 마이너스가 되면서 서서히 적자선으로 접근해 간다. 그래서 하도급자들은 “계산으로는 남는데 뒤로 밑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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