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양비’ 누구 말려줄 사람 없소?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5.31 14:24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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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철 신임 민주연구원장, 현실정치 복귀 후 연이어 구설
여당 내부 “제대로 사고 쳤다”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대통령이 그렇게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이번 일로 웃기게 됐다.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국정원장이 여당, 그것도 핵심 실세를 만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돌아온 양비(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더불어민주당 재선 A의원)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5월21일 서훈 국정원장과 모처에서 4시간가량 사적 모임을 가졌다는 언론보도가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며 정치 공세에 나섰다. 당장 야당은 정보위를 열어 서훈 원장의 국회 출석을 요구하려는 움직임이다. 논란이 되자, 양 원장은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서 원장에게 모처럼 문자로 귀국인사를 드렸고 저도 잘 아는 일행과의 모임에 같이하자고 해 잡힌 약속”이라고 해명했다.

양 원장이 말한 ‘귀국인사’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적지 않다. 대선 직후인 2015년 5월25일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둘째 형이 살고 있는 뉴질랜드로 떠난 것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렇다. ‘비선 실세’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린 양 원장이 그랬다기에 여권이 받는 충격은 상당하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5월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5월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문 대통령, “정철아” 부를 정도로 친근감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양 원장의 국내 복귀 때부터 이러한 문제는 충분히 예견됐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5월로 임기가 끝나는 김민석 원장의 후임으로 양 원장에게 민주연구원장 자리를 제안했고,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가 “이제는 나설 때가 됐다”고 설득하면서 국내 정치 복귀가 이뤄졌다는 게 여권의 공식적인 설명이다.

반대로 양 원장 본인이 현실정치 복귀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설득력이 높은 것은 당·정·청 간 소통부재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빠르게 하락세를 보이다 보니 외곽에서 이를 지켜보던 양 원장이 구원투수 자격으로 민주연구원장 자리에 앉았다는 소문이다. 그간 몇몇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강하게 열망하던 양 원장의 말을 근거로 보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차기 권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민주연구원장 자리를 수락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칫 양 원장의 등판이 권력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여권이 가장 경계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양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현실정치 입문 때부터 함께하던 인물이다. 2011년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있던 시절 양 원장은 재단 사무처장으로 있으면서 손발을 맞췄다. 문 대통령의 현실정치 참여에는 양 원장의 역할이 컸다.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한 문 대통령이 측근 몇 명만 데리고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을 때도 양 원장은 함께했다. 또 2011년 문 대통령이 책 《문재인의 운명》을 펴낸 것이나 출간 후 전국 토크콘서트를 열어 대중 인지도를 키운 것도 모두 양 원장의 작품이다. 2017년 대선 때는 대선캠프인 광흥창팀을 꾸려, 대선 승리에 이바지했다. 여의도 정가의 변방에서 야인생활을 하던 임종석 전 의원을 광흥창팀에 합류시킨 것은 물론, 정권 출범 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추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평소 아랫사람에게 “~씨”라고 말하는 문 대통령도 양 원장에게는 “정철아”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감을 표시한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이 여권 내에서 이름을 부르는 인물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양 원장은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야인으로 지내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곽으로 밀려난 것으로부터 오는 소외감이 컸다는 후문이다. 양 원장의 주변 지인 B씨는 “남의 눈을 피해 뉴질랜드·일본에서 지내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다”면서 “대통령을 위해 결단했지만, 자연인 양정철의 삶은 무척 외로워했다”고 말했다. 또 정권 출범 후 자신을 따르던 주변 사람들이 청와대 등 권부 핵심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도 가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5월21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나오고 있다. ⓒ 더 팩트 제공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5월21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나오고 있다. ⓒ 더 팩트 제공

이해찬 대표 “선거는 당이 치르는 것” 불쾌감

민주연구원은 장기 정책 어젠다를 발굴하는 정책 연구를 주 기능으로 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그렇다 보니 당내 위상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양 원장이 복귀하면서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5월27일 김영진·이재정·이철희 민주당 의원, 이근형 당 전략기획위원장 등 5명을 부원장으로 선임한 것이 좋은 예다. 3명에서 5명으로 부원장 자리를 늘린 것이나 불과 몇 달 전까지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일한 백원우 전 비서관을 부원장으로 합류시킨 것은 달라진 민주연구원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이 밖에도 당에서 핵심 역할을 하던 인사 상당수가 민주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론의 관심은 양 원장의 역할이다.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장 취임 일성으로 “차기 총선 승리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총선 전략 수립부터 인재 영입까지를 모두 아우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논란이 되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5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연구원은 선거에 개입하는 곳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공약 개발이라든가 중장기 정책 개발을 주로 하는 곳”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민주연구원장이 누구를 어떻게 물갈이하느냐, 선거는 당이 치르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양 원장이 5월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토크콘서트에서 “기존에 거론된 분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조국 민정수석 정도가 가세해서 경쟁하면 국민이 보시기에 얼마나 안심이 되겠냐”고 발언한 것도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자칫 ‘20년 정권론’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이해찬 대표와 역할이 겹칠 수도 있어서다.

현재 여권 내에서 양 원장을 컨트롤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양 원장과 함께 ‘3철’로 불리던 전해철 의원,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선 직후 각자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선캠프에서 핵심 참모 역할을 했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최재성 의원과는 정치적으로 긴장관계다. 민주당 초선 의원 C씨는 “정권 출범 이후 제대로 된 자리를 얻지 못하고 해외로 떠돌아다니던 양비에 대해 문 대통령도 상당히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 원장이) 2년 가까이 정치권을 떠나 있어 그런지 정무적인 판단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직자 D씨는 “도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문 대통령은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양비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면서 “지금으로선 양비 스스로가 구설에 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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