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존재하는 장벽에 대한 고찰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2 11: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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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경의 현실을 보여주는 충격 화제작 《선은 장벽이 되고》

“이 지역은 상상을 뛰어넘는 척박하고 끔찍한 땅입니다. 토질은 불탄 석회암 같고, 돌들은 용광로에서 나온 화산암재 같으며, 풀도 없고,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한 역겨운 식물만 있을 뿐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 지대의 모습이다. 그 죽음의 땅을 찾는 이가 있고, 그들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절반은 경찰 같고, 절반은 군인 같은 국경순찰대 대원들이다. 애리조나대학에서 국경지대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23살의 청년이 험난한 조직에 뛰어들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도 그걸 달가워할 리 없다. 어머니 자신도 파크 레인저(공원 경비원)로 일했지만 자식을 말렸다. 아들은 말한다.

“여기엔 제가 외면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어요. 황무지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의 유착일 수도 있겠죠. 어쩌면 제 내면에 존재하는 두 문화 간의 긴장과 갈등일지도 모르죠. 그게 무엇이든, 그곳에 직접 가기 전에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선은 장벽이 되고》 프란시스코 칸투 지음│서울문화사 펴냄│328쪽│1만5800원 ⓒ AP 연합
《선은 장벽이 되고》 프란시스코 칸투 지음│서울문화사 펴냄│328쪽│1만5800원 ⓒ AP 연합

연구자 출신 국경순찰대원의 생생한 기록

그리고 그는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텍사스 등을 맡는 국경순찰대에서 2008년부터 3년간 일했다. 순찰대 교육 과정에서부터 양국의 국경은 불법 이민자들만이 존재하는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2000년 150만 명에 달하던 불법 이민자들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70만 명 이상(2008년)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속에 마피아나 마약상 등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마약범을 포함해 멕시코의 불안한 정치나 경제 상황이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곳이 미국과의 국경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의 역사는 2년여의 전쟁 끝에 1848년 체결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시작이다. 합의된 국경은 샌디에이고 항구의 남단에서 남쪽으로 3해양 리그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해 콜로라도강을 거쳐 리오그란데강으로 진행된다. 조약은 이후 라메시야 조약 등으로 수정된다. 위험의 차이는 있지만 1951마일의 국경은 이후 통곡의 선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가진 곳이 됐다.

연구자로서 직접 순찰대를 체험해 기록한 만큼 프란시스코 칸투의 책이 미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파급력이 컸다. 죽은 사람은 끌고 오고, 산 사람들은 구금하는 순찰대의 잔혹함과 무관용에 지친 그의 기록이 2018년에 아마존, 워싱턴포스트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링크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은 3개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저자가 국경순찰대에 지원하게 된 동기와 들어가서 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돼 근무하면서 경험한 일들을 담아낸다. 두 번째 부분은 현장에서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건들로 인해 악몽을 꾸고,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이민 관련 시스템과 제도의 몰인간성 때문에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경험하는 저자의 심경 변화, 일에 대한 목적의식과 열정의 상실 등을 그린다. 세 번째 부분은 국경순찰대를 그만두고 국경 근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중, 미국에서 30년이나 살아온 이민자 친구, 호세가 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멕시코 고향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해 평생 아내와 세 아들을 만나지 못하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자 다시 한번 마주한 국경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국경이 초래하는 폭력의 실체를 폭로하며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도 절실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모든 이들이 ‘국경’에 대한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게 한다. 지금도 국경을 넘기 위해서, 또 국경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많은 이들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저자의 가장 큰 메시지는 “사람이 우선”

순찰대 대원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색출해 내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극단적인 폭력과 끔찍한 살인 등 국경의 비참한 현실을 체험하게 된다. 아무리 막아도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으려다 실제로 죽거나, 다시 멕시코로 송환되고, 그런 고초를 겪으면서도 또다시 국경을 넘는 시도를 강행하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하며 악몽에 시달린다. 죽은 사람들은 끌고 오고, 산 사람들은 구금하는 인간의 잔혹함과 무관용에 국경순찰대 대원으로서 회의를 느끼며 결국 그만둔다. 트럼프의 당선은 이런 문제에 대한 회의를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대통령이 직접 무장군인을 보내 국경을 더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는 한, 국가 간 이동은 가장 큰 문제다. 우리나라도 이 문제가 이미 닥친 문제이자, 앞으로는 더 많은 딜레마를 안고 갈 가능성이 있다. 역자가 소개하듯이 휴전선은 미국-멕시코 간 국경보다 더 삼엄한 장벽이고, 수많은 새터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장벽을 넘어서려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는 책의 앞 순찰대 훈련 교관인 로블레스에게 있다. 로블레스는 그와 대면했던 한 이민자가 강에 빠져 익사한 것을 본 후, 다음에는 직접 강한 물살에 뛰어들어 생명을 구해 냈다는 이야기를 한다. 불법 이민자들이라 해도 죽음을 지켜볼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걸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주는 가치를 후배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은 가장 필요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자는 여린 감수성으로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 황무지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그려내며, 자신이 경험했던 실제 사건들을 담담하게 사실 그대로 서술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미국-멕시코 국경의 생생한 실태를 순찰대원의 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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