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학교폭력’ 의혹 제기는 왜 계속될까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3 14: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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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무관용 따라 ‘학폭 가해자’ 반드시 불이익 당한다는 교훈

또 다른 미투 운동이 번질 조짐이다. 이번엔 학교폭력 미투다. 최근 엠넷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에서 연습생 윤서빈이 하차하는 일이 있었다.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프로그램 초반에 인기를 끌었지만 그가 폭력 ‘일진’이었다는 폭로 글이 인터넷에 등장하고, 미성년자일 때 술과 담배를 하는 모습이라는 사진도 퍼졌다.

대중은 공분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팬들인 ‘프로듀스X101 갤러리’ 측은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결국 그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퇴출됐고 《프로듀스X101》에서도 하차, 통편집됐다. 

그리고 잔나비 멤버 유영현 논란이 터졌다. 잔나비는 무명 인디밴드였는데 최근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자마자 멤버인 유영현에 대한 익명 폭로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11년 전 고등학교 때 일이라며 글쓴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말이 살짝 어눌했던 나는 많은 괴롭힘을 당했다” “도저히 그 학교를 다닐 수가 없어 전학을 가고 정신치료도 받으며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 뒤로는 세상과 문 닫고 치유에만 신경 쓰며 지냈다”고 주장했다.

《프로듀스X101》 연습생 윤서빈 ⓒ m·net
잔나비 멤버 유영현(맨 왼쪽) ⓒ 뉴시스
《프로듀스X101》 연습생 윤서빈 ⓒ m·net
《프로듀스X101》 연습생 윤서빈 ⓒ m·net

인성과 과거 행적이 중요해진 시대

그렇게 살다 잔나비 노래에 위로를 받았는데, 그 멤버 중에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만들고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감정을 느끼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며 눈물이 흐르고 헛구역질도 났다”며 “그 시절 나에게 하던 언행과 조롱, 비웃음을 난 살아서도 죽어서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고 썼다. 큰 논란이 일었고 바로 다음 날 소속사가 사실 확인을 거쳐 유영현의 팀 탈퇴와 자숙을 알렸다.

그 직후 효린에 대한 폭로가 터졌다. 15년 전 중학교 때 3년간 끊임없이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상습적으로 옷과 현금 등을 빼앗겼고 온갖 이유로 아파트 놀이터에서 폭행을 당했다. 내 친구는 노래방 마이크로 머리도 맞았다. 3년 동안 내 자신이 자살을 안 한 게 신기할 정도로 버텼다”며 “효린이 가수가 됐다는 소리를 듣고 까무러치게 놀랐다. 효린이 꿈에 나오면 항상 가위에 눌린다”고 썼다. 효린 측에선 처음에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고 했다가, 나중에 부인하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진실공방으로 이어지는 듯했으나 효린과 폭로자가 서로 오해를 풀고 원만하게 협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누리꾼들은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그다음엔 걸그룹 베리굿의 다예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다예가 왕따를 주도하며 괴롭혔다는 내용이었는데 다예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그러자 폭로자가 반박하며 논란이 이어졌다. 양측 주장이 맞서고 있는데 추가 폭로자의 등장 여부가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잇따르면서 또 하나의 미투, ‘학폭 미투’라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은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엔 학교폭력이라고 해도 그저 어렸을 때의 일탈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학교폭력 문제가 아주 심각해졌다. 불량 학생들끼리 싸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약자를 찍어 집단적으로 장기간 괴롭히는 반인륜적 가해 행위가 된 것이다. 그야말로 영혼을 파괴하는 일로 피해자는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거나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차에 관련 폭로가 나오자 대중이 뜨겁게 반응하며 논란이 커진 것이다.

보통 연예인을 뽑을 때 외모, 끼, 재능만 보면서 인성과 과거 행적 문제는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서 연예인 중에 학창 시절 가해자가 끼어 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과거엔 일반인 피해자가 대중에게 자기 목소리를 전할 수 없었지만 이젠 인터넷이라는 통로가 나타났다. 게다가 학교폭력 관련 폭로에 대중이 뜨겁게 반응하니까 의기소침해 있던 또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서 고발할 수 있게 됐다. 가해자가 버젓이 TV에 나와 항상 눈앞에 비치는 것도 피해자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이런 구조라면 앞으로도 고발이 잇따를 수 있다.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누리꾼은 기획사나 프로그램 제작진을 질타하지만 사실 회사나 제작진이라고 해도 타인의 과거 행적을 조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망생이 작정하고 거짓말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인성 문제, 과거사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경각심은 가져야 한다. 관계자들이 이런 문제를 계속 강조해야 연예인 지망생도 좀 더 긴장하게 될 것이다.

가수 효린 ⓒ 뉴시스
가수 효린 ⓒ 뉴시스

거짓 폭로에 휘둘릴 위험도

무엇보다도 지망생 본인이 자기 잘못을 덮고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언제든 고발이 터질 수 있는 인터넷 시대다. 유명인이 과거를 덮는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스타덤에 오르자마자 폭로가 나오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 점을 당사자가 직시하고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거나 연예활동 전에 피해자에게 충분히 용서를 구하고 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인터넷 익명 폭로에 대중이 너무 쉽게 휘둘리는 것은 문제다. 《프로듀스X101》에서 하차한 윤서빈의 경우엔 과거 좀 ‘놀았던’ 건 맞지만 폭력 가해자는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처음 폭로가 나왔을 때도 술·담배 사진만 나왔지 폭력 증거가 나온 건 아니었다. 이런데도 대중은 폭력 가해자로 낙인을 찍었다. 효린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사람에 대해선 사실 그 사람도 폭력 가해자라는 주장이 인터넷에서 제기됐다. 그 폭로자는 돌연 자기 글을 지웠다. 누구 말이 어디까지 맞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학교폭력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정의를 실현하는 건 좋지만 누구를 단죄할 땐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대중이 정의감으로 들끓을 때 그것을 이용해 거짓정보를 흘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불분명한 정보에 휘둘려 공분하다 보면 바로 누리꾼이 집단공격의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에 대한 뜨거운 분노는 간직하되 사실관계 판단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어쨌든 학교폭력 이슈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무관용의 자세는 연예인 지망생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어린 학생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반드시 불이익을 당할 것이며, 결코 과거를 덮을 수 없다는 교훈 말이다. 학폭 가해자가 숨을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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