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 경찰’ ‘부사장 경찰’ 사라진다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4 11: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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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정보경찰 쇄신 추진사항’ 내부 문건 입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이른바 ‘정보경찰’이 청와대 지시에 따라 정치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한창인 상황이라 정치적 파장이 상당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정보경찰의 정치나 선거 개입, 민간인 사찰 등 다시는 걱정하는 그런 과오가 생기지 않도록 정보경찰 활동규칙을 세밀하게 제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최근 경찰청에서 작성한 ‘정보경찰 쇄신 추진사항’ 문서를 입수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가 ‘고강도 정보경찰 개혁’을 경찰청에 권고한 지 1년여 만에 작성된 내부 문건이다. 민 청장이 말한 ‘정보경찰 활동규칙’도 첨부돼 있다.

우선 정치·선거 관련 정보 수집을 원천 차단하도록 정치관여 금지 규정을 제도화했다. ‘정치관여’ 논란을 초래했던 정보경찰의 국회·정당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경찰청·지방청 정보부서 소속의 국회 협력관도 전면 폐지했다. 이와 함께 정보경찰 개개인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를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경찰공무원법에 정치관여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 원칙을 명문화했다. 정치관여 경찰은 5년 이하의 징역, 자격정지로 처벌받게 된다. 이 개정안은 현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음으로 정보활동의 근거 등을 법령으로 명확히 규정해 불법사찰을 근절하기로 했다. 정보활동의 경계가 모호해 무제한적인 정보 수집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그동안의 지적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경찰 정보활동의 법적 근거 및 활동범위를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보경찰의 불법사찰·정치관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4월9일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정보경찰의 불법사찰·정치관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4월9일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온라인에 정치적 글 작성 및 추천·공유 금지 

수사권 조정 논의 과정에서 제기돼 온 경찰권 비대화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감안해 정보경찰에 대한 통제 시스템 마련에도 나섰다. 이를 위해 경찰청 정보국 내에 변호사를 포함한 준법지원팀을 신설했다. 준법지원팀을 통해 모든 정보활동의 적법성 여부를 상시 확인하고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감사관실 정기감사 도입, 경찰위원회 정례보고 등 별도의 통제 시스템도 구축했다.

경찰청 개청 이후 줄곧 사용해 온 ‘정보국’ 명칭도 변경될 예정이다. 정보경찰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명칭으로 변경하고, 새 명칭에 걸맞도록 직제와 사무분장 개정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과거 은밀한 정보활동의 상징으로 비치던 한남동 정보분실이 지난해 10월 전격 폐쇄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정보경찰 활동규칙’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정보경찰이 해야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놓은 것이다. 정치관여 금지와 관련해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동향 파악과 온라인에 정치적 내용의 글 작성 및 추천·공유를 금지했다. 불법사찰 부문에서도 개인의 사상·동향 파악을 위한 사생활 정보 수집과 명시적 의사에 반한 자료제출·의견표명 강요를 금지했다.

또 정보경찰이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경찰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보 수집 시 신분과 목적을 밝히도록 의무화하고 ‘전무’ ‘부사장’ 등 비공식 직함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다. 이에 따라 과거 회사 임원이나 시민단체 간부 직함, 그리고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힌 정보경찰 명함은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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