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 늙어가고 있다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5 15: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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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日서 편의점과 헬스케어 융합한 ‘케어 편의점’이 각광받는 이유

편의점은 자영업의 대표 업종이라 할 만큼 매장 수와 시장 규모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우선 옆에 있는 표를 하나 보자. 일본 편의점 ‘로손’이 최근 자사 고객을 시계열로 분석한 것이다.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편의점 고객이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다. 20대 고객 비율은 1989년 35%였지만 2017년에는 무려 19%나 줄어든 16%에 불과하다. 반대로 50대 이상은 같은 기간 9%에서 37%로 크게 늘어났다.

이 자료가 무엇을 뜻할까. 당연히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첫 번째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노인들의 건강 저하로 생활 반경이 좁아진 이유가 크다. 노인 가구는 생필품 외에 특별히 필요한 것이 없다. 소소한 일상품들은 대부분 편의점에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에 갈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편의점 주요 고객 20대에서 50대로 이동

다른 시각에서 한번 보자. 미래의 유망산업 가운데 단연 으뜸은 케어(Care) 서비스다.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첨단으로 치닫는 기술 기반 세상의 반작용에 의한 정서적 문제, 다른 하나는 지구의 고령화다. 이 가운데 고령화로 인한 케어 서비스는 하나의 산업으로 묶기에는 버거울 만큼 크게 확대되고 있다.

케어의 대상 시장은 두말할 것 없이 노인이다. 초고령 사회의 선두에 서 있는 일본을 보자. 일본의 경우 총인구 평균 나이가 이미 47세를 넘어섰고, 2025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365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의 약 30%가 노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등장한 모델이 대표적 입지 업종인 편의점과 미래형 최고의 유망사업인 헬스케어를 묶은 ‘케어 편의점’이다. 2015년 4월 일본 편의점 2위 업체인 로손이 사이타마현 가카와구치시에 ‘개호(Care) 편의점’ 1호점을 오픈했다. 노인에게 맞는 70여 종의 식품과 케어용품 코너를 만들어 차별화했다. 노인들이 불편해하는 택배와 쇼핑 대행은 물론 복지상담도 현재 이 편의점에서 병행하고 있다.

점포 운영은 간호 서비스 업체인 ‘위드넷(With net)’이 맡았다. 편의점에 케어러가 상주하면서 건강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건 기존 편의점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노인 커뮤니티의 장이 되는 상담 공간을 확보해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신청을 도와주고, 민간 간호 서비스도 연결해 주는 그야말로 ‘로컬 케어 플랫폼’으로 모델링한 것이다. 

일본프랜차이즈체인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편의점 수는 2019년 5월 현재 5만8000여 개나 된다. 포화 상태라는 업계의 소리도 있다. 그래서 생존 전략으로 각 기업이 노리고 있는 것이 편의점 기반 케어 서비스다. 초고령 사회의 수요를 기대하면서 헬스케어와 택배 등 새로운 분야와도 융합하고 있다.

로손은 고령화에 따른 케어 서비스의 필요성을 미리 파악하고 차세대 편의점 모델로 시장을 선점했다. 향후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편의점’으로 비전을 전환할 태세다. 상품 역시 간편한 자가 건강진단이나 의약품 등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셀프 메디케이션’과 저칼로리 건강 지향 식품을 제공하는 ‘미르 솔루션(meal solution)’ 등 두 축으로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병원과 제휴해 간호용품에서 재활용품까지 약 3000여 종의 의료·위생용품을 취급한다는 계획이다.

식품도 시니어들의 영양을 위한 기능식품과 먹기 편한 레토르트 식품 등으로 점차 바뀌어 가는 추세다. 특히 독신 고령자가 먹기 좋은 소량의 반찬을 주로 출시하고 있는데 칼로리 표시나 합성 착색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무설탕 식품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다른 편의점 브랜드 훼미리마트도 늙어가는 편의점 시대를 맞아 ‘약국 편의점’을 운영 중이다. 의약품업체 ‘구수리히구치(薬ヒグチ)’와 손잡고 일반 의약품을 24시간 판매하는 편의점이다. 이 편의점은 이미 제약사 13곳과 계약을 맺고 보다 전문성을 갖춘 출점을 가속화시키려는 모양새다.

훼미리마트는 한발 더 나아가 노인 전문 도시락 배달 프랜차이즈 ‘택배쿡123’을 이미 전개하고 있다. 관동지방에서는 슈쿠토쿠대학 간호영양학부 감수 아래, 식염 비중 2.0g 이하 도시락을 판매 중이다. 보통 도시락은 평균 4.5g의 염분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다. 이 때문에 염분 섭취가 염려되는 고혈압 고령 환자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택배로 이용자의 안부를 확인해 주는 등 비상품 서비스를 통해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 덕분에 프라이빗(private) 케어 서비스와 시니어 도시락 등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훼미리마트의 영업이익 역시 최근 5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일본 편의점 ‘로손’은 최근 기존 편의점에 헬스케어 서비스를 더한 ‘개호(care) 편의점’을 오픈해 인기를 얻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편의점 ‘로손’은 최근 기존 편의점에 헬스케어 서비스를 더한 ‘개호(care) 편의점’을 오픈해 인기를 얻고 있다. ⓒ 연합뉴스

훼미리마트 영업이익 5년 연속 사상 최고치 

이렇듯 일본에서는 모든 편의점 제품과 서비스의 방향이 고령자를 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올해부터 많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프랜차이즈체인협회가 올해 5월 발행한 통계월보를 보면, 편의점 내점 고객 수는 전년 대비 0.05% 감소한 반면에 객단가는 2.7% 늘어났다. 상품으로 분류하면 더욱 확실해지는데 같은 기간 가공식품은 1.4% 줄었지만 비식품(3.5%)과 서비스(7.2%)는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도 편의점은 고객의 요구에 맞는 제품 개발뿐 아니라 공공요금 지불, ATM 설치 등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서비스로 새로운 수요를 발굴해 왔다. 일찍부터 고객과 상품의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한 덕분에 체계적인 시장 분석이 가능했다. 편의점이 움직이는 방향이 곧 시장의 트렌드라고 봐도 무방한 이유다.

이제 우리 사회는 케어(Care)를 빼놓고 정책과 사업을 논하는 자체가 어려운 시대에 와 있다. 고령 사회에서 케어 산업은 편의점, 헬스클럽과 같은 로컬 오프라인 점포와 어떠한 방법으로 제휴하거나 융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혁신 업종으로 모델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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