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의 두 가지 본질과 투자전략
  • 홍춘욱 이코노미스트(전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0 08: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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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이냐 ‘버티기’냐…중국 선택에 갈릴 한국 경제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중국과 무역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들이 재협상을 시도함에 따라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아울러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매기는 관세를 현행 10%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 이후 안정되던 세계 금융시장은 일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마저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데, 왜 2018년부터 무역전쟁이 시작되고 이렇듯 격화되는 것일까?

미·중 무역갈등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 PIC 연합
미·중 무역갈등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 PIC 연합

중국의 대국굴기와 미국 경제의 변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야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있겠지만 ‘중국 경쟁력의 강화’가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한 해석인 것 같다.

지난 2018년 8월3일 미국 의회는 외국인 투자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지를 심사하는 기구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를 통해 미국 내 중국 투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미 기업들의 핵심 수출을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또 ZTE, 화웨이 등 중국 통신기업이 미 정부 조달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 배제하진 않았지만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바 있다.

미 정책 당국이 중국 기업에 대해 강한 경계감을 보이는 이유는 전기차와 5G 등 차세대 성장 산업에서 중국의 입지가 날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이나 반도체 등 오랜 연원을 가진 산업에서 중국이 하루아침에 경쟁력을 갖기 힘들지만, 막 태동하는 산업에서는 중국도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미 무역대표부(USTR)가 2017년 8월부터 조사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의 내용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더욱 강경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합작법인 설립 요구사항, 외자 기업 투자규제, 특허사용계약 절차 등을 통해 미국 기업의 기술이전을 강요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 등 주요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중국 내 합작법인이 보유하도록 관련 요건을 규정하는 식이었다.

중국이 위협적인 경쟁자로 부각된 것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에 나타난 중요한 변화도 무역분쟁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의 저자 피터 자이한은 ‘셰일오일 혁명’이 미국 정책 당국의 대외 정책기조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공간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셰일 에너지의 특징은 전통적인 형태의 에너지들과 비교해 볼 때 그것이 생산되는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중략) 세계 주요 석유·천연가스 매장지는 시베리아, 페르시아만,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대륙붕, 나이지리아, 흑해, 멕시코만 같은 곳에 집중되어 있다.(책 192~193쪽)

그러나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지역은 전혀 다르다. 전통적인 석유·천연가스는 인구밀도가 희박하며 또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곳에서 생산되는 반면, 셰일오일은 경제와 산업의 중심지에 직접 연결된다는 차이가 있다.

첫째, 전통적인 에너지 매장지역과 셰일 매장지역은 거의 겹치지 않는다. (중략) 둘째, 인구밀집 지역은 거의 모두 셰일 매장지역과 일치하거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안전을 보장해 주던 역할을 해 왔는데, 더 이상 이 역할을 통해 미국이 얻을 실익이 없다는 뜻이다.(책 196쪽)

미국이 세계 2차대전 이후 ‘세계의 경찰’ 역할을 수행했던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독일을 스탈린그라드에서 쳐부순 세계 최강의 육군을 지닌 소련의 위협이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 소련과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기보다 독일이나 일본 등 소련과 맞닿아 있는 나라들을 키워 ‘방어막’으로 쓰는 게 훨씬 더 이익이었다. 미국이 세계의 정치에 개입했던 두 번째 이유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석유 생산국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이어지는 수송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사라졌다. 1990년을 전후해 소련이 몰락하고 또 다양한 국가로 해체됨에 따라 소련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동맹국을 적극 키우고 육성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더 나아가 셰일오일 혁명 덕분에 에너지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짐에 따라 석유 수송로를 지키는 데 열의를 가질 이유가 없어졌다.

예상되는 두 가지 시나리오

이상의 요인을 감안할 때, 미국이 중국을 향한 공격의 고삐를 늦출 이유를 찾기 어렵다. 결국 중국의 대응이 중요한데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선택은 내수시장을 개방하고, 인터넷 등 핵심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당장 큰 고통이 따른다. 해외 선진기업들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했던, 그리고 해외 경쟁기업의 진입을 정부가 막아줌으로써 국내시장에서 독점적 이익을 누린 기업들은 어쩌면 생사의 기로에 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선택은 장기적으로 중국에 ‘득’으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경쟁’만큼 기업의 혁신을 자극하는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선택은 ‘버티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번 대선에서 패배하기를 기대하면서 관세 부과에 대해서는 위안화 환율 조정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전략은 꽤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이기에 선거가 빈번하게 치러지며,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무역정책’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장기적으로 중국에 ‘독’이 될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이제 ‘보호육성’의 단계를 벗어난 몸집을 가지고 있기에, ‘해외에서 국내로의 매출 전환’ 정책은 한계가 있다.

중국이 첫 번째 시나리오를 선택했을 때, 한국의 주식시장은 최대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주요 기업들이 무역분쟁을 이유로 주문을 늦추고 있던 것을 다시 발주할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중국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시나리오가 선택될 경우에는 미국 달러 표시 채권을 비롯한 안전자산의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무역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교역량의 감소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는 데다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 하강의 위험을 막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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