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조현병 환자들’…이번엔 역주행 사고로 3명 사망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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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앓던 40代 남성, 고속도로 역주행…3세 아들, 예비신부 숨져
가족 “위험하다” 실종신고…경찰 위치추적땐 이미 역주행 하던 중

조현병이 있는 40대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다 교통사고를 내 함께 타고 있던 세 살 아들이 숨졌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20대 여성은 결혼을 불과 2주가량 앞두고 역주행하던 차량에 부딪혀 참변을 당했다.

6월4일 오전 7시34분쯤 당진-대전고속도로 당진 방향 65.5km 지점에서 역주행하던 화물차가 정주행하던 포르테 승용차와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화물차에 타고 있던 박아무개씨(40)와 그의 세 살 아들이 숨졌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 최아무개씨(29)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을 거뒀다.

최씨는 오는 6월22일 부산에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 신부였다. 그가 타고 있던 승용차에선 자신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 10여 장이 발견됐다.

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박씨는 사고 당일 새벽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아내는 아침에 박씨가 사라진 것을 알고 "남편이 아들과 함께 사라졌다. 남편은 조현병을 앓았는데 최근 약을 끊어 위험하다"고 신고했지만 사고를 막진 못했다. 박씨의 유족들은 경찰 조사에서 "몇 년 전부터 조현병으로 꾸준히 치료를 받다가 두 달 전에 스스로 병을 이겨내겠다며 치료약을 끊었다"고 진술했다.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남경찰청은 박씨의 휴대폰 위치 추적에 들어갔다. 신호가 충남 공주에서 잡히는 것을 확인하고 오전 7시 31분쯤 충남경찰청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박씨는 이미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고 있었다. 충남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에는 오전 7시19분쯤부터 "역주행하는 트럭이 있다"는 신고가 연이어 접수됐다.

ⓒ 일러스트 정재환
ⓒ 일러스트 정재환

박씨가 왜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앓고 있던 조현병이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현병 환자의 특징은 대개 망상과 환각, 환청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 주변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환청이 들린다거나 환영(幻影)을 봤다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이웃에게 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 반복적으로 괴성을 지르는 사람 등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증상이 심해질 경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을 갖는다. 대수롭지 않은 상대방의 언행이 피해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병의 진행을 막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당수의 환자는 아무런 치료 없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조현병 환자는 전국에 50만 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를 받은 사람은 이 중 5분의 1인 10만 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증상이 재발할 위험성도 매우 높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신의학과 허버트 멜처 교수는 “유지요법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 1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60~70%, 2년 이내에 재발할 가능성은 거의 90%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물론 조현병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통계적으로 봐도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범죄율은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낮다. 전체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0.3~0.4%로 매년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조현병 환자들이 범행에 나설 경우 예측이 불가능하다. 조현병 환자들의 사건에서 보듯이 환청이나 망상에 사로잡힌 충동적인 범죄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조현병의 경우 ‘방치’보다는 적극적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극구 꺼려 한다. ‘조현병’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위험이 야기될 수 있다.

정영철 전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은 “의료기관에서 정신보건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퇴원 후 환자의 치료 현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사례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사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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