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비상(飛上)에 비상 걸렸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4 16:00
  • 호수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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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하늘길’ 열며 떠올랐지만…‘필리핀-인천 제주항공 회항’으로 LCC의 숙제 일깨워

최근 잇단 악재로 국내 항공 양대 산맥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저비용 항공사(LCC·Low Cost Carrier)의 영업이익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고공비행 중인 LCC가 제대로 ‘날기’ 위해서는 아직도 산적한 과제가 많다. 합리적 비용과 많은 항공편 배치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아직 승객 안전이나 비상상황 이후 대처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6월12일 승객 149명을 태우고 필리핀 클락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회항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승객들이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과정에서도 안전 서비스는 미흡했고, 회항 이후 대책 마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탑승객들의 증언이 줄을 이었다. 회항 당시 상황은 긴박했다.

탑승 승객 A씨의 증언에 따르면 승객들이 전원 탑승한 후 출발 멘트가 나왔지만, 뒤이어 나온 관제탑의 대기 명령에 따라 1시간 뒤인 3시30분경에야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륙 후 갑자기 기내가 추워지기 시작했고, 산소마스크가 좌석에 떨어졌다. “안전벨트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멘트가 기내에 반복해 나오자 위급함을 느낀 승객들은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려 했다.

그러나 산소마스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마스크가 안 되는 것 같다”고 외쳤지만 승무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각자 자리에 앉아 있었고,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위험을 직감하고 가족들에게 보낼 영상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A씨는 “일부 승무원은 ‘산소마스크 떨어지는 것을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승무원들 때문에 불안감이 더 가중됐다는 것이다. 한 승객은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승무원들은 이 기본적인 대응 자세가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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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 사인 받는 것에만 급급”

이후 대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행기는 4시28분 클락공항에 도착했다. 급하게 이동해야 하는 승객들에게 마닐라공항에서 출발하는 대체 항공편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마닐라로 가는 버스 탑승 시간은 11시50분이었다. 승객들은 7시간 반 가량 공항에서 대기했다. 아버지가 위독해 귀국 비행기를 탔던 한 승객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회항한 공항에서 들어야 했다. 기다리던 승객들에게는 토스트 한 조각이 식사로 제공됐고, 다음 날 비행기를 이용할 승객들에게는 호텔 숙박이 제공됐다.

A씨는 “승객들이 마닐라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자마자 제주항공 측은 ‘보상금 계좌 입금 양식’이라는 서류를 주며 고객명과 은행명, 계좌번호 등을 기입해 제출하라고 했다. 개인당 10만원씩 보상금을 주겠다며 ‘마닐라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작성해 꼭 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A씨는 “금액을 떠나 해당 양식은 ‘지연 결항’ 시 보상되는 양식인데, 비행기 기체 문제로 회항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승객들에게 사인을 받는 것에만 급급했다”며 “제주항공 측은 사과도 없이 승객들을 뿔뿔이 흩어놓으려고만 했다”고 지적했다.

제주항공 측은 “승객들의 얘기처럼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승객들의 입장에서는 두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황을 급박하게 느꼈을 수 있다. 고도를 낮추라는 경보가 울려 절차에 따라 산소마스크를 작동했으며, 센서 오류였기 때문에 실제로 착용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해당 내용을 안내했다”고 말했다. 단순 센서 오류로 회항 도중 상황이 해제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부 승객들이 산소마스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제보가 있으나 착용 시 줄을 당겨 산소공급이 되도록 한 후 착용해야 한다. 같은 열에 장착된 산소마스크는 한 개의 산소통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부 좌석이 안 되는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승무원들이 매뉴얼에 따라 대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게 제주항공 측의 일관된 답변이었다.

 

약진한 LCC, 대응 방법과 보상은 논란

국내 LCC들은 최근 계속 약진해 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악재로 휘청거리는 사이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 등 LCC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282억원)을 앞질렀다. 올해 제주항공은 1분기 매출(3928억원), 영업이익(569억원), 순이익(421억원) 모두 2005년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LCC가 국내에서 크게 성장한 것은 ‘저비용’으로 합리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기내식이나 불필요한 서비스를 포기하고,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입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LCC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비용에 맞는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받겠다는 것이지, 무책임한 서비스를 제공받겠다거나 ‘안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승객의 안전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고, 지연이나 결항, 기체 결함으로 인한 회항 등과 관련해 그에 합당한 대책과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항공사의 의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나 기체 결함 등은 어떤 비행기에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유독 LCC에서 이에 따른 대책과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된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4월 인천에서 출발해 베트남 다낭으로 가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비행 도중 전자장비 문제로 회항해 승객들에게 1인당 5만원을 보상한 사례가 있었다. 승객들은 기기 결함으로 인한 문제였기 때문에 보상이 합당하지 않다고 반발했다.

올해 1월에는 항공기 결함으로 필리핀에 발이 묶였다가 결국 결항 통보를 받은 제주항공 승객들이 제주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당시 비행기는 출발 전 시동을 걸다 멈추기를 반복한 끝에 급기야 엔진 뚜껑을 열고 수리를 시작했다. 승객들이 안전 문제를 제기하자 “문제가 없어 출발하겠다”며 재출발을 시도했지만 수 시간 동안 시동이 걸리지 않아 결국 결항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짙은 안개로 비행기를 지연시키고 승객들을 14시간 동안 대기하게 했다가, 승무원을 확보하지 못해 결항을 통보한 이스타항공에 탑승객들이 소송을 거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2월 법원은 “이스타항공이 성인 1인에게는 60만원, 미성년자에게는 40만원을 배상하고, 여행 취소로 환불받지 못한 경제적 손해도 함께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공사가 승객의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저비용 항공사, 안전 부분 간과해선 안 돼”

왜 LCC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일까.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LCC는 늘 후속조치가 문제가 돼 왔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승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문제”라며 “조종이나 정비, 서비스 인력 등에서 비교적 열악하기 때문에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다 하더라도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리한 편성으로 비행기가 한정돼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특히 “저비용이라고 해서 안전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항공 안전은 국가적으로나 항공업계 경쟁력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LCC가 앞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전 부분에 투자를 해야 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을 승객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공업계에서도 신규사업자가 대거 진입하면서 전문인력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고, 이에 따라 안전 문제가 수반되는 것을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저비용 항공사니만큼 불필요한 서비스나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것은 당연하다. 승객들도 이 부분은 감내한다. 그러나 안전에 대해서는 FSC(대형 항공사) 못지않게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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