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한전-이재민 갈등…“왜 가해자가 룰 정하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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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액 산정할 ‘손해사정사 선임권’ 놓고 속초-한전 입장차

강원 산불 피해액을 산정할 손해사정사 선임권을 놓고 주민들과 한국전력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속초 주민은 자신들 아니면 강원도에게 권한을 넘기라는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한전은 서로 합의 하에 손해사정사를 골라야 한다며 맞섰다. 

장일기 속초 산불피해 비상대책위 공동위원장은 6월13일 시사저널에 “한전이 처음엔 비대위에게 손해사정사 선임을 맡기고 금액은 자기들이 지불한다고 했다”며 “그런데 고성군이 (손해사정사 선임과 관련해) 한전 요구를 따르자 입장을 바꿨다”고 했다. 

앞서 5월21일 고성 산불 비대위는 한전 산불수습 TF와 협상 끝에 한국손해사정사회에 실사를 의뢰하기로 합의했다. 단 손해사정사 관리는 비대위가 하고, 계약금 25억원은 한전이 낸다는 조건이 붙었다. 속초 비대위는 그러나 한전의 입김이 반영된 손해사정사의 독립성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5월8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 마을 산불피해현장에 관계자들이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5월8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 마을 산불피해현장에 관계자들이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속초 비대위 “차라리 우리가 돈 내겠다”

장 위원장은 “차라리 제3자인 강원도가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든가, 우리가 (손해사정사에 주는) 돈을 지불하는 쪽으로 가자고 주장했다”며 “피해자는 우린데 왜 가해자가 룰을 정하나”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속초 비대위와 한전은 6월11일 강원도청에서 최문순 강원지사와 함께 삼자대면을 가졌다. 하지만 비대위와 한전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합의를 뒤로 넘겼다. 

현재 속초의 복구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비대위 측에 따르면, 속초시는 4월17일부터 산불 피해지역에 대한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정부 피해대책본부가 피해 조사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거가 완료돼버리면 손해사정사 입장에선 실사의 증거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장 위원장은 “폐허를 확인할 수 없을 땐 이재민들의 진술을 참고해야 할텐데, (비대위가 선정한 손해사정사가) 아무래도 조금이나마 더 진술을 들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전은 정확한 피해규모를 파악하려면 손해사정사의 실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원 고성지역 산불피해 보상을 위한 현지 조사가 본격 시작된 6월11일 한국손해사정사회 소속 조사단원들이 토성면 원암리의 한 업체를 방문해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강원 고성지역 산불피해 보상을 위한 현지 조사가 본격 시작된 6월11일 한국손해사정사회 소속 조사단원들이 토성면 원암리의 한 업체를 방문해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한전 “항상 협의해서 진행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손해사정사 선임과 관련해 입장을 바꾼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적절한 선임을 위해 항상 비대위와 협의해서 진행하고 있다”며 “상식적으로 한전이 마음대로 선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간 보험업계에선 손해사정사 선임을 둘러싼 불공정 관행이 개선 대상으로 지적돼 왔다. 일부 보험사가 위탁 손해사정사에게 피해 평가액을 깎도록 시키는 등의 문제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손해사정으로 인한 보험금 관련 민원은 2017년 1만 7033건으로 조사됐다. 예년보다 35.7% 증가한 수치다. 

이 때문에 현재 금융위원회와 보험협회·손해사정사회 유관단체들은 고객의 손해사정사 선임권을 강화하는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다. 이는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그런데 한전은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발을 맞추고 있지 않는 셈이다. 한전 TF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월4일 고성과 속초 등지를 덮친 산불은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산림을 태웠다. 주택은 518채가 소실됐고 이재민 1072명이 발생했다. 화재의 최초 발화지점은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전신주 개폐기로 확인됐다. 이는 한전이 관리하는 시설이다. 이번 화재에서 한전 책임론이 대두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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