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은 없다
  • 이미리 문토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7 11: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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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창업가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끝)

창문이 다 깨져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출근해야 하는 사무실. 햄버거 값도 없어 당일 면접을 본 이에게 돈을 빌려야 할 만큼 가난한 주머니 사정. 창업을 하고 3년이 지났지만 창업자에게 월급을 줄 여력이 없는 회사. 1000%를 넘어선 부채비율. 대출금 상환을 위해 주변 모든 이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상황.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주인공은 필 나이트. 나이키 창업자다. 필 나이트는 이 ‘짓’을 무려 10년이나 지속했다. 나이키 창업자의 자서전을 읽으며 이 땅의 수많은 창업자들을 생각했다. 척박한 현실과 막막한 내일. 그럼에도 스스로 믿는 비전과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전부를 거는 사람들.

창업을 한다고 하면 흔히 ‘대박을 꿈꾸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주변을 보면 창업 목적이 ‘대박’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거나 주변이 겪고 있는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도승 같은 사람들이 내가 만난 창업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회사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은 물론 영혼까지 바쳐 일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창업자로 살고 있다. 고객의 마음을 얻고, 채용을 한다. 재능을 나누는 전문가들에게는 새로운 재능마켓과 수익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세금을 내고 임대료를 내고 광고비를 낸다. 에이전시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프로젝트를 주고 비용을 발생시키면서 우리 회사가 어엿한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하나의 기업이 생겨나면 고용 및 경제적 가치 창출의 측면에서 사회에 기여하기 마련이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12~14년 새 일자리 90%가 창업 1년 이내 신생기업에서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지원 이력 성과에도 창업지원 기업이 평균 5.55명을 고용하고 매출 6억7000만원을 올린다고 언급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창업기업의 5년 이내 생존율은 27.5%에 불과하다. 실패한 창업자가 폐업 후 떠안는 부채는 평균 9억원. 4400만원의 세금 체납은 ‘덤’이다. 창업자가 채무를 떠안는 비율은 75%, 그 가족이 연대보증 채무를 떠안는 비중은 47%에 달한다. 창업의 기대효과는 전 사회가 누리지만 그 책임은 온전히 대표자 개인이 떠안는 구조다.

나이키 광고 ⓒ 유튜브 캡처
나이키 광고 ⓒ 유튜브 캡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돼 있다”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돼 있다.” 깨어 있는 시간 전부를 일에 쏟아 붓고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초해질 때, 돌발 상황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 빈약한 기회와 자원에 나도 모르게 불평불만이 나올 때 주문처럼 필 나이트의 말을 되뇌어 본다.

내 일의 본질을 다시 질문해 본다. 비전과 가치를 되새긴다. 내가 하는 일이 반드시 세상에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한다고 믿고,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최선을 다한다. 모든 창업자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결승선은 없다. 그러니 모두 각자의 전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반드시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이 땅의 모든 창업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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