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까지 운전대를 잡도록 해야 할까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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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젊은 층보다 고령층 사고율 오히려 낮아

지난 1월17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이 왕실 별장 주변 도로에서 다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필립공의 차량은 전복됐고, 피해 차량도 길가 숲에 부딪쳤다. 피해 차량에 탑승한 2명의 여성이 골절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의 나이 98세. 필립공은 사고 후 조사에서 당시 햇빛에 눈이 부셔 시야 확보에 문제가 생겨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이내 그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부주의하게 운전한 것 또한 확인되면서 여론의 큰 비판을 받았다. 필립공은 사고 후 운전면허증을 반납했지만, 영국 내에선 ‘몇 살까지 운전대를 잡도록 해야 할까’라는 오랜 물음에 대한 고민이 곳곳에서 다시 일었다.

올해 초 서울에서도 95세 운전자가 한 주거지역에서 30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외에도 최근 한국 고령 운전자들의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며, 65세 이상 운전자들에 대한 면허 유지 및 교육 등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영국은 올해 들어 90세 이상 운전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영국 운전면허청(DVLA)에 따르면 2018년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70세 이상 운전자가 5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 영국의 교통안전단체 IAM은 향후 20년간 고령 운전자 수는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현재의 두 배로 증가할 전망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98)의 교통사고 이후, 영국 내 고령 운전자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EPA 연합
지난 1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 필립공(98)의 교통사고 이후, 영국 내 고령 운전자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EPA 연합

영국, 70세 이후 3년마다 갱신…어길 땐 벌금

현행법에 운전 제한 연령이 명시돼 있진 않다. 이는 운전자들의 서로 다른 신체적·정신적 건강 컨디션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60세 이상 고령 운전자라도 신체 노화 정도, 운전 능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질병의 여부에 따라 운전 능력에 개인 차가 크다. 따라서 나이로 제한을 두기보다는 운전자의 신체 및 정신적 건강, 질병의 유무 등을 토대로 운전 가능 여부와 면허 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영국 교통 당국의 입장이다.

영국의 운전면허는 70세가 되면 자동으로 만료되며, 이후엔 운전자의 의사에 따라 갱신이 가능하다. 만일 운전자가 70세 이후에도 면허를 유지하고 싶을 때는 3년에 한 번 갱신해야 한다. 단, 면허 발급을 위한 최소 시력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만일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제한적인 면허가 나오며, 그 심각도에 따라 갱신이 불가하거나 1년 혹은 2년만 유효한 면허가 발급되기도 한다.

특히 시력 및 청력 저하, 수면 장애, 당뇨, 치매, 관절염, 심장질환 등을 비롯한 영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반드시 운전면허청에 보고해야 한다. 만일 이를 숨기고 면허를 발급받을 경우 최대 1000파운드(약 15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의 경우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은 65세부터 가능하다. 단 영국과 달리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이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선 3년마다 운전 적성검사와 2시간여의 교통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의료진의 판단으로 운전자의 면허 갱신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영국과의 큰 차이점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고령 운전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이 연령층 운전자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신체 노화와 인지능력 저하로 인해 고령 운전자들이 젊은 연령대 운전자보다 더 높은 사고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DVLA가 2018년 하반기에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70세 이상 운전자 중 총 1만1245명이 교통사고를 일으켰으며, 이는 해당 연령층 총 운전자의 0.2%에 해당한다. 반면 17~24세의 남성 운전자 중 280만 명이 교통사고를 냈는데, 이는 해당 연령대 전체 운전자의 0.9%로 고령 운전자들보다 무려 4배가량 높은 수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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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박탈, 오히려 노인 건강에 악영향

영국의 자동차협회(AA·Automobile Association) 또한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6개월 미만의 젊은 남성의 사고율이, 면허를 반납하기 6개월 미만의 고령 운전자들보다 월등히 높다고 밝혔다. 교통사고 발생과 나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란을 일축한 것이다. 더불어 고령 운전자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야간운전을 지양하고 익숙한 도로로만 주행하는 등 스스로 제한적인 운전을 하는 경향이 있어 사고율이 낮다는 근거 또한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필립공의 추돌 사고로 다시 한번 고령 운전자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국 언론은 고령 운전자들이 면허 갱신 시 별도의 테스트를 거치지 않으며, 재교육 프로그램 또한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비단 필립공뿐만 아니라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갱신 제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IAM이 2014년 2600여 명의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운전면허를 이미 반납했거나 소지 중이더라도 운전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한 사람들이 운전을 그만둔 주된 이유는 ‘건강’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자신감 하락, 비용 문제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현재 운전자들의 75% 이상은 차후 건강이 악화되거나 건강 또는 의학상 이유로 운전을 중단하라는 전문가의 처방 또는 조언이 있을 시 운전면허를 반납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고령자들이 운전을 하는 주된 이유는 생활 및 사교활동으로 조사됐다. 특히 영국 왕립 사고방지협회(ROSPA)는 운전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절대적인 나이 기준으로 운전면허를 박탈한다면 오히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건강에 부정적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운전면허 반납 또는 박탈은 어떠한 제도적 혹은 물리적 수단으로도 사고 방지가 불가한 개인의 경우에 한해서만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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