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 없는 ‘국가채무’ 논쟁…증세 논의 없이 ‘허수아비 공방’만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7 08: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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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중시 ‘보수’, 현재 방점 ‘진보’…‘어떤 나라 꿈꾸나’ 논의할 기회

‘국가채무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말은 사실일까. 정치권을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연일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경제 좀 안다’는 전문가들은 정치권을 향해 조언, 훈계 아니면 대안을 한마디씩 거드는 중이다. 그렇게 논쟁은 점점 커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작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부모님이나 형제, 직장 동료가 이 이슈를 꺼낸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맞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논쟁’ 중이다.

이유가 뭘까. 대중들은 복잡한 경제 이슈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럴 리 없다. 논쟁 과정에서 청와대를 포함한 여야 정치권, 학계, 언론 등이 ‘공급자 중심적’으로 사태를 키워나가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 정치권은 서로를 공격하는 소재로 이 이슈를 소비했다. 논쟁은 고고하게 ‘그들만의 언어’로 진행됐다. 정작 이 이슈가 왜 중요한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려는 이는 적었다.

국가채무 비율 논쟁은 중요할까. 중요하다면 왜 중요할까. 재정 건전성과 관련된 논쟁 같은데, 그 찬반 기저에 깔린 전제는 무엇일까. 재정 건전성은 나빠지면 안 되는 걸까. 재정 건전성은 왜 나빠지는 걸까. 과연 정답은 있는 문제일까. 지금 같은 논쟁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 우리가 정작 놓치고 있는 질문은 없을까. 시사저널은 논쟁의 근원, 뿌리를 보기로 했다. 그러면 오히려 지금의 논쟁을 보다 넓고 깊게 볼 수 있다고 여겼다.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국가재정은 나랏돈을 의미한다. 재정은 돈을 걷는 일과 쓰는 일 두 가지로 나뉜다. 즉 재정수지란 걷은 돈에서 쓴 돈을 빼고 남은 돈을 뜻한다. 걷은 돈보다 더 많이 쓰면 적자, 그 반대면 흑자다. 국가채무는 쉽게 말해 나랏빚을 의미한다. 정확하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빚을 말한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빚은 국가채무에서 빠진다. 재정적자가 쌓이면 국가채무는 는다. 빚을 내서 적자를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클 때 ‘재정건전성이 나쁘다’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 비율 40%가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관련 논쟁에 불을 지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5월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 비율 40%가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관련 논쟁에 불을 지폈다. ⓒ 연합뉴스

 

‘40%’는 국가채무 비율 마지노선?

논쟁은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가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중장기 재정 운용의 큰 그림을 논의하는 자리로 결정사항은 매년 편성되는 예산안과 재정 관련 법령에 반영된다.

홍 부총리는 올해 국가채무 비율이 39.5%로 추산되는 만큼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이후 과감한 재정 지출 확대는 어려우니 앞으로 국가채무 비율을 40% 초반대에서 관리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국제기구 권고에 따르면 국가채무 비율 60% 정도를 재정 건전성 기준으로 삼는다”며 홍 부총리가 제시한 40%라는 기준점의 근거를 따져 물었다. 40%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확장 재정(돈 풀기)을 펼치라고 주문한 것이다.

비공식 회의에서의 이런 대화가 알려지자 국가채무 비율 논쟁이 시작됐다. 특히 정치권과 학계는 ‘40%’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논쟁을 진행했다. 야당은 확장 재정 기조는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돈 풀기’며 정부 경제정책 실패를 덮으려는 방만 국정이라면서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 40%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를 중심으로 보수 논객들은 후세에 부담을 지우는 나랏빚 증가는 조심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2015년 야당 대표 시절에는 40% 고수를 주장했다가 이제 와서 말을 바꿨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하나씩 따져보자. 일단 올해 국가채무 비율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를 가정하면 39.5%가 된다. 미국(136.0%), 일본(233.0%)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111%보다 훨씬 낮다. 정부의 2018~22년 재정운영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 비율은 내년엔 40.2%, 2021년에는 40.9%, 2022년에는 41.6%로 늘어난다. 국가채무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비교해 보면 한국의 나라 곳간은 꽤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돈을 더 쓸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다음 질문은 왜 홍 부총리를 비롯한 재정 당국은 40%라는 기준점을 재정 건전성 잣대로 삼고 있는가다. 사실 여기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있진 않다. 해외의 재정준칙을 준용했을 뿐이다. 바로 1990년대 초 유럽연합(EU) 출범의 토대가 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다. 30년이 다 돼 가는 이 낡은 조약은 채무비율 60%를 회원국 가입과 유지 조건으로 제시했는데, 이 기준은 이미 유럽 내에서는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원국 다수가 이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재정 당국은 한국 경제의 무역 의존도가 높아 대외 여건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 데다, 급속한 고령화 속도와 통일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재정 여력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2017년 “한국은 GDP 대비 225%까지 빚을 늘릴 수 있지만 고령화와 복지 지출을 감안하면 40% 수준을 지켜야 한다”고 권고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관료와 상당수 경제학자가 이런 입장이다.

보수진영도 비슷한 논리를 펼친다. 경제성장률 둔화 속도는 빨라지는데 저출산·고령화로 미래 복지 지출은 가만히 있어도 폭증할 것이니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보다 미래에 방점을 찍은 논리다.

 

‘저부담·저복지’ 국가에 계속 머물 것인가

반면 진보진영은 ‘현재’를 본다. 심각한 노인 빈곤 등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해결에 ‘당장’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 미·중 무역분쟁 등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민간(가계·기업)은 방어적으로 나서게 되는데, 이때 정부까지 지출을 줄이면 내수가 쪼그라든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국제통화기금(IMF), OECD 등 국제기구의 확장재정 권고도 논거로 삼는다. 또 여력이 있을 때 나랏돈을 풀어 저성장을 유발한 저출산 등 근본 원인을 해결하자고 한다.

논쟁은 대략 이 두 갈림길의 직전까지 와 있다. ‘내일’을 염려하는 보수와 ‘오늘’을 걱정하는 진보. 양측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다. 판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양측은 모두 ‘오늘과 내일의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하면서도, 정작 증세에 대한 논의는 애써 피하고 있다. 문 대통령조차도 마찬가지다.

국가채무 비율 논쟁은 ‘어떤 나라를 바라고 꿈꾸는가’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논의의 주제와 논쟁의 주체는 더 커지고 확장돼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저(低)부담·저복지 사회로 충분한가’를 묻고 토론해야 한다.

한국의 지난해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11.1%로 OECD 평균(20.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1980년대 수준이다. 더 많은 복지를 원한다면 누구 호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걷을 것인지도 다뤄야 한다. 맞다.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40%라는 국가채무 비율 마지노선 논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정치권이, 학계가, 언론이 용기를 내 국민에게 ‘어떤 나라를 꿈꾸는지’ 묻고 사회적 토론을 이끌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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