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졌잘싸’의 박수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4 09: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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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는 행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말을 말할 때 주로 전달되는 것은 그 사람의 기억이나 지식이고, 마음을 말할 때 주로 전달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말을 듣는 행위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말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을 듣는 것이다. 말을 들을 때는 상대방의 ‘언어’를 듣고, 마음을 들을 때는 상대방의 ‘감정’과 ‘의미’를 듣는다. 마음을 말하고 마음을 듣는 사람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진심이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편이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시원하게 인정할 줄 알고 변명하기를 싫어한다. 변명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다시는 마음을 말할 수도, 마음을 들을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빠르게 인정하지 않고 핑계나 변명을 앞세우기 바쁜 사회는 피곤하다. 억지스러운 변명이 이어지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짜증도 정비례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변명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실처럼 흐물흐물 늘어지기 십상이다. 빠른 사과의 효용성은 리더들의 성공 사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과의 기술’은 기업의 리더인 CEO의 덕목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어느 기업이든 한 번쯤은 소비자의 불만을 살 만한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그때 중요한 것은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제때에, 제대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현란한 말로 당장의 어려움을 넘기려고 꼼수를 부리다가 시장에서 영원히 퇴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모두 말이 아닌 마음으로 말하고 듣는 노력이 부족해서 겪는 인과응보다.

그럼에도 입에 담아선 안 될 말, 개념 잃은 말을 해 놓고도 사과 대신 변명을 일삼는 사람이 참 많다. 사과하는 행위 자체를 패배라고 여기는 소인배적 발상 때문일 것이다. 막말보다 그 변명이 오히려 더 못나 보인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들 탓에 국회가 제 일을 못 하는 이 순간에도 여의도에는 갖은 ‘조건’ 타령과 변명만 요란하다. 자기 체면만 생각하고 국민 체면은 나 몰라라 하면 설령 이긴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패배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월1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축구대표팀 선수단과 만찬을 함께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월1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축구대표팀 선수단과 만찬을 함께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U-20 국가대표팀이 귀국해 국민들 앞에 섰다. 결승전에서 패해 우승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어울리는 표현이 바로 ‘졌잘싸’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줄임말로,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뜻이다. 그들이 보여준 환한 미소는 바로 그 ‘잘 싸움’의 징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도 말했던 것처럼 그라운드에서 정말 후회 없이 뛰었다. 비록 경기에 졌더라도 후회 없는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들에게는 비난 대신 찬사가 쏟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저 자랑스러운 대표선수들처럼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여야 의원들이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두가 아무 조건 없이 국회라는 그라운드에 돌아와 후회 없이 뛰어준다면 그들에게도 ‘졌잘싸’의 박수가 아낌없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정치에서 보고 싶은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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