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결정치의 과잉이 만드는 분단사회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6 18:00
  • 호수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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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중도라고 응답한 비율이 49.2%나 됐다. 지난 13일 ‘폴리뉴스’의 데이터리서치에서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보수 17.3%, 진보 20.9%. ‘잘모름’ 12.6%였다. 중도나 ‘잘 모름’의 비율이 커지는 추세라는 설명도 따랐다. 물론 하나의 조사 결과일 뿐이다. 갤럽 조사들을 살펴보았다. 비슷한 경향이었다. 6월 1, 2주 차 조사를 보니 중도(25~28%)와 모름·무응답(47~48%)이 무려 72~76%나 됐다. 정치 세력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는데 보수·진보 양쪽의 이념 지형은 위축되고 있는 셈이다. 

보통 우리 사회에 보수, 진보, 중도가 각 30~40% 정도로 분포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진영을 대표하는 세력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가변적이다. 노무현 정부 후반,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추락했을 때 진보 성향임을 자임하는 일반 국민의 응답 비율도 낮아졌다. 반면에 탄핵 정국에서는 진보적 성향이 보수 성향을 압도했다. 지난해 3월초 중앙SUDAY의 이념성향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3%가 자신을 진보 성향이라고 답했다. 보수는 18.2%에 불과했다. 중도 응답자는 29.3%였다. 같은 조사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75.2%였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그때보다 20% 이상 하락하고, 진보 성향의 응답자도 함께 위축되었다. 대신에 중도와 ‘잘 모름’의 비중이 늘어났다.  

이미 탄핵으로 추락했던 보수 정당뿐 아니라 진보를 자임하는 집권세력에 대한 신뢰가 약화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수-진보의 양대 세력에 대한 지지율은 60~70%에 이르고 있다. 진영 대결의 독과점 체제 결과다. 볼모 잡힌 불안정한 지지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정치 자체가 중도보다 극단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 권력투쟁의 현장에서 적과 동지로 양분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은 승자독식의 정치체제에서는 더 그렇다. 실제 국민여론은 중간층이 두터운 정규분포 모습에 가까울지라도 정치세력은 양쪽으로 갈라지는 경향이 자주 나타난다. 최근 우리 정치상황이 더욱 극단적인 대립을 만들고 있다. 한때 국민적 지지를 거의 독점했던 문재인 정부가 국민적 공감보다는 신념의 정치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추락해 있던 보수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경제정책, 적폐청산 모든 분야에 맞서고 있다. 국정운영 방식을 좌파독재라고 비판하며 정면대결을 선언하고 있다. 

언론 환경도 극단의 정치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방송 등에서 정치패널의 대부분은 진영을 기계적으로 대변한다. 편향성 논란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진영을 기계적으로 대변하다 보니 서로의 접점을 만드는 공론의 무대가 되지 못한다. 국회 파행을 비난하지만, 마찬가지 모습을 재현한다. 이런 진영 대결의 정치는 점점 극단화되기 마련이다. 중도와 포용의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SNS 시대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여론정치 환경은 진영 대결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극단적 입장이 주목받으면서 확증편향이 강화되는 SNS의 특성이 갖는 부정적 문제점이다. 

극단적 정치의 과잉 대표는 그 자체로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성 왜곡이다. 이런 정치가 재편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정치가 사회 분열의 구심점이 돼 버린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 잠재력을 기대할 수 있지만, 최근 양극화 정치의 악순환 구조가 심각한 상황이다. 남북분단 극복을 말해 왔는데, 정작 우리 스스로 분단사회를 만들고 있다. 정치 파행에 대한 비난을 넘어 극단적 대결정치의 악순환 구조에 대한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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