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인터뷰②] “젊음과 지성이 반항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죽는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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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주년 특별기획 - 대한민국, 길을 묻다(22)] '경계인’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①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⑭이종찬 전 국회의원 ⑮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⑯박관용 전 국회의장 ⑰송기인 신부 ⑱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 ⑲임권택 감독 ⑳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21 이문열 작가 22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

지난해 송€교수와 만난 자리에선 화제로 슈뢰더 전 총리가 올라왔다. 통독 이후 옛 동독 지역 유권자들은 진보적 성향의 사민당에 몰표를 줘 슈뢰더는 일약 유럽 정치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만성적 연방정부 부채는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슈뢰더가 핵심 지지층인 노동자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혁법안 ‘아젠다 2010’을 밀어붙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결과 사민당과 녹색당 연합정부는 8년 만에 정권을 앙겔라 메르켈이 이끈 기민·기사당 연합에 내줬다.

지난해 만난 자리에서 송 교수는 “정책의 성공에는 운도 필요한 법”이라면서 “지금 메르켈 정부가 특별히 뭘 잘한 것도 아닌데, 그때는 이상하게도 슈뢰더 정부가 하는 일마다 꼬였다”며 아쉬워했다. 문제는 슈뢰더 실각 이후 진보 성향의 사민당이 독일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 중 하나인 사민당은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과 극우 정당에 밀려 점차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송 교수는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한국 진보세력에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송두율 교수가 1996년 5월 출간 8년 만에 대표작 《계몽과 해방》의 개정 증보판을 냈다. ⓒ 뉴스뱅크
송두율 교수가 1996년 5월 출간 8년 만에 대표작 《계몽과 해방》의 개정 증보판을 냈다. ⓒ 뉴스뱅크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데요,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시나요.

“촛불정신이 원했던 것은 결국 뭘까요. 부패와 무능에 대한 심판이에요. 이 정부가 무능한가, 유능한가에 대해선 많은 논란이 있을 겁니다. 기본소득 문제만 해도 면밀하게 준비되지 않은 거 같아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문재인 정부 역시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패 문제까지 불거지면 전임 정부와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데요.

“이 정권에 부패 문제가 생기면 그땐 정말 절망적일 겁니다. 냉소만이 남을 거예요. 다들 ‘아! 이 정부마저 저 모양 저 꼴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독일도 사민당(SPD)이 정권을 내준 이유가 경제 실정 때문 아니겠습니까.

“경제문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시 사민당 정부의 문제는 빌리 브란트와 같은 비전을 지닌 카리스마적 인물이 없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에서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세계시장에 내놓는 상품도 뛰어나 이제는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이 됐지요. 그런데 노동조건은 아직도 열악하고 빈부격차도 심합니다. 아주 다이내믹하지만 그 다이내믹 속에 잡음과 파열음이 너무 많다는 게 한국 사회에 대한 인상입니다.”

한국 사회에 가장 우려되는 점을 꼽으신다면 어떤 점을 지적하시겠습니까.

“앞으로 세상은 젊은 사람들의 것 아니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들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의지가 있는지 우려스러워요. ‘헬조선’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오래됐고….”

그건 기성세대의 책임이 큽니다.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걸 위해선 무한경쟁도 감수하라.’ 이것이 기성세대가 걸어온 길 아니겠어요. 스웨덴 젊은이들은 프라이데이 포 퓨처(FRIDAY FOR FUTURE-지난해 16세 스웨덴 학생 그레타 툰버그가 3주 동안 매일 스톡홀름 의사당 계단에서 각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인 것이 계기) 캠페인을 벌입니다. 현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그러한 분위기라도 만들었으면 합니다.”

최근 조사를 보면 젊은이들의 경우 사고의 경직성이 우려됩니다. 통일관도 약해졌고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보수화돼 있고요.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래를 살아갈 세대가 자신들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꾸리지 않으면 누가 대신하겠습니까.”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돼 가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프랑스의 사회주의자이자 소설가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젊음과 지성은 반항할 권리가 있다’고. 저는 젊었을 때부터 이것을 좌우명의 하나로 삼았습니다. 젊음이 반항하지 않고 지성이 반항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죽었다고 봐야지요.”

현대사는 근대화라는 박정희와 민주화라는 김대중 유산의 싸움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개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화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결국은 개발독재를 한 독재자 스스로가 무덤을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예요. 대의정치는 기본적으로 정당을 통해 창출됩니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통성을 얻지요. 그런데 지금 한국 정당에 과연 정책이 있는지 묻고 싶어요. 친박, 반박, 친문, 반문 이런 식의 편 가르기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말이죠.”

그렇다면 한국 정치에 앞으로 어떤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한국의 정당들도 여기 구라파(유럽)의 정당들처럼 연구실이나 연구재단을 꾸리는 모양인데 그 수준이 어떤지 모르겠어요. 선거 때 전략을 짜는 수준에 불과하지 않은지…. 장기적인 비전과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건 아니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젊은 세력들이 앞장서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선거에서 자기 당의 국회의원 수를 어떻게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가에 골몰하면 비전은 없습니다. 또 연구소는 앉아서 논문이나 쓰는 곳이 아니라 자기 정당의 비전과 정책을 검증하고 개발하는 곳이 돼야 합니다.”

한국당 보수화, 역사를 거꾸로 돌릴까 걱정

한국에서도 지난해 지방선거 때 녹색당의 선전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녹색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조건 중 하나가 소위 작은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여성·공해·교육 문제에 엄청난 노력을 들였기 때문이에요. 그런 문제점을 계속 생활 속에서 제기했을 때 이것들이 검증되면 시민적 힘이 그런 정당을 지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보수의 건강한 발전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엇을 지킨다’는 뜻의 보수라는 의미가 원래는 부정적인 게 아니지요. 그래서 보수는 품위라도 지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정잡배나 할 수 있는 험악한 망언이나 일삼고 있으니…. 유럽의 보수 정당은 나름대로 고상한 엘리트주의적인 요소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 정당은 기득권을 잡기 위해 모든 천박한 수단을 다 동원하는 이해집단으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종종 받지요.”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전 총리가 지금 자유한국당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나도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2003년 가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수사했던 사람이 바로 정점식 검사예요. 지금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돼 있더군요.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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