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죽지 않고 공공성 지킬 방법 찾기 위해 파업”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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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 “‘흑자인데 적자’인 이상한 회계구조 바꿔야”
6월25일 실시된 우정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에서 참여 노조원의 92.87%인 2만 5247명이 찬성했다. ⓒ연합뉴스
6월25일 실시된 우정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에서 참여 노조원의 92.87%인 2만5247명이 찬성했다. ⓒ연합뉴스

집배원 노조인 전국우정노동조합(우정노조)이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노조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93%에 달하는 압도적 찬성률을 기록했다. 집배원이 우편배달을 멈추게 되면 135년 우정사업 사상 처음이자 노조 출범 이후 61년 만의 첫 파업이 된다.

사상 초유의 우정노조 파업 결의를 이끌어 낸 이동호 위원장은 6월2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과로로 죽어가는 집배원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노사가 이미 합의한 집배원 인력 증원과 완전한 주 5일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 내내 속이 타는 지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 위원장은 이번 파업을 ‘공공성을 회복하는 파업’이라 정의했다. 공공성과 적자가 충돌하는 딜레마적 상황 속에서 가장 약자인 집배원들이 쓰러지고 숨지는 비극적 상황. 이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답을 찾자’고 하지 않았다. 이미 찾아낸 ‘답을 지키라’고 했다. 노사정(勞使政) 참여로 발족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의 결론, 2000명의 인력 증원과 시스템 개선 등의 권고안을 지키라는 주장이다.

사측인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적자’를 이유로 노조의 제안에 난색을 표한다. 이 위원장은 여기에 대해서도 “‘흑자인데 적자’인 우본의 회계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반박했다. 우본의 우편사업은 작년 145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지만 예금·보험 등 금융사업에서는 5000억원(2017년 회계연도 기준)이 넘는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다. 이 수익을 자체적으로 쓰지 못하고 정부가 다 가져가는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우편사업이 국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로 유지되려면 금융사업에서 나온 수익 일부를 집배원들이 과로사로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써야 한다. 정부에, 사측에, 국민들께 묻고 싶다. 집배원이 매년 계속 이렇게 죽어나가는 것은 과연 공공적인가. 과연 지금 누가 진짜 공공성을 말하고 있나”라고 꼬집었다.

집배원들이 135년 만에 처음으로 총파업을 결의한 이유는 뭔가.

“집배원들의 과로사와 중노동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10년 이상 지속됐다. 우편 서비스를 공공 서비스로 지켜내기 위해 집배원들이 최전선에서 뛰다 ‘죽고’ 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컸는지 2017년 노사정의 참여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구성됐다. 여기서 분명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해 집배원 2000명 증원을 권고하고, 1000명은 올해 안에 증원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그렇게 올해도 벌써 9명이 숨졌다.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이번 파업을 지지한다고 보나.

“실제 파업이 진행되면 우편대란이 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저희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업에 나서는 그 뜻을 국민들께서 잘 알아주고 계신다고 느낀다. 이번 파업은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집배원 과로사 사망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계신 국민들께서 인력 충원으로 해결하라는 명령을 정부와 사측에 내려주실 거라고 믿고 있다.”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6월25일 인터뷰에서 “과로로 죽어가는 집배원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노사가 이미 합의한 집배원 인력 증원과 완전한 주 5일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시사저널 고성준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6월2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과로로 죽어가는 집배원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노사가 이미 합의한 집배원 인력 증원과 완전한 주 5일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고성준

공공성과 적자가 부딪치는 딜레마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저희 입장에서는 사측과 정부가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우편 서비스는 분명 국민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가 돼야 한다. 왜 적자가 나나. 전체 인구가 100~2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운영하면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지국을 계속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걸 포기할 수 있나. 공공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면, 국민들이 만족하면서도 집배원들도 지속가능하게 노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공공성과 적자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을 몇 년째 방치한 결과가 집배원들의 연이은 과로사다. 당연히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장비를 늘려야 한다.”

공공성이란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인가.

“보편적 서비스를 강화하려면 적자는 날 수밖에 없다. 가령 집배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소포 물량은 매년 20%씩 늘고 있다. 민간 업체와 경쟁을 할 게 아니다. 우리는 공무원이다. 인건비 대비 지금의 소포 요금으로는 적자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집배원 정원에 맞게 소포 물량을 조정해야 한다. 인력과 장비는 정체되는데 보편적 서비스를 더 강화하라는 주문의 결과가 결국 집배원들의 과로사다.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우편 서비스는 통신, 소방, 국방과 같은 국가 인프라다. 국민들께서 만족하실 만한 보편적 서비스를 위해서는 적자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도 적자 폭을 계속 늘리는 것은 부담이 될 텐데.

“우본이 적자라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우편사업은 마이너스 성장 중이지만 우본 전체가 적자는 아니다. 예금·보험·투자 등 금융사업에서 큰 흑자를 내고 있다. 우본은 자산 124조원을 보유한 국내 주식시장의 큰 손이다. 2017년도 회계연도 기준으로 예금사업에서 2200억원, 보험사업에서 3700억원 등 금융분야에서만 5000억원이 넘는 흑자를 냈다. 이렇게 나온 수익은 정부가 일반회계로 전출한다. 우본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2조8000억원이 국고로 들어갔다.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을 해달라.

“저희는 우편사업을 국민을 위한 공공 서비스로 유지하려면 지금처럼 특별회계로 돼 있는 우본 회계를 국민 세금이 지원될 수 있는 일반회계로 바꾸거나 특별회계를 유지하더라도 금융 분야에서 수익금 전출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정청으로의 승격을 요구하는 것에는 이런 맥락이 담겨 있다. 인사와 예산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어야 공공성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청와대와 국회 등의 중재는 도움이 안 되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갈등을 해결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청와대 따로, 정부 따로, 우본 따로다. 컨트롤타워가 없다보니 다 자기 입장에서 주장만 한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께서 풀어주셔야 한다. 노동을 존중하고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고용 창출도 공약하셨다. 저희의 이런 상황을 고려해 예산을 반영해서 집배원 증원을 결단해 주시면 좋겠다.”

최근 한국노총은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집배노동자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이런 제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갈등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 낼 상위 기구가 생기는 것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상위 협의 기구에서 실질적으로 결과를 내면 그 결과를 정부가 받아들여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백날 협의해서 합의안을 도출하면 뭐하나. 적자라고 합의안을 지키지 않는데. 유명무실한 협의체라면 의미가 없다.”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6월25일 인터뷰에서 “‘흑자인데 적자’인 우본의 회계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시사저널 고성준
이동호 우정노조 위원장은 6월2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흑자인데 적자’인 우본의 회계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고성준

 

파업 전까지 협상은 계속 되나.

“협상은 계속 진행한다. 우본에서 제시한 안이 있는데 저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번 주와 다음 주가 협상의 고비라 생각한다. 저희가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에서 2000명의 인력 증원과 시스템 개선 등을 권고했다. 노사 간에 합의해서 서명을 했는데 정부가 안 지키는 상황이다. 지금 약속을 어기고 있는 곳이 어디냐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저희는 지금 상식을 말씀드리고 있다. 집배원들이 과로사가 늘고 있는데 저희가 땜질하는 식으로 합의하는 것이 과연 옳나?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희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국민들께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파업에 돌입한다면 불편을 끼쳐드릴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송구한 마음이다. 다만 지금 저희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과로사라는 이유로 저희 집배원들이 세상을 떠나는 상황이다. 경찰, 소방 종사자 이상으로 과로사 비율이 높다. 후진국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과로사로 죽는 이 비극을 멈춰보자는 취지인 만큼 국민 여러분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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