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이강인이 있다면, 농구엔 이현중이 있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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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NBA 스타 산실인 데이비슨대학 입학 허가 받은 이현중 선수

대한민국 농구의 최고 유망주로 꼽히는 이현중(19·201cm)은 최근 미국 데이비슨대학에서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다. 데이비슨대학은 NBA(미 프로농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슈퍼스타인 스테픈 커리가 다닌 학교로 유명하다. 이현중은 스테픈 커리가 다닌 학교에서, 스테픈 커리가 운동했던 농구팀의 감독 밑에서 농구와 학업을 병행할 예정이다. 

1984년 LA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인 성정아씨(54·수원 영생고등학교 체육교사)와 고려대-삼성전자 선수생활을 거쳐 현재 삼일상고 농구부를 이끄는 이윤환 감독의 아들인 이현중. 남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빼어난 농구 실력으로 관심을 모았다. 2015년 U-16(16세 이하)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 우승과 2016년 U-17 세계선수권 8강 진출에 앞장섰다. 2017년 6월, NBA 아시아퍼시픽팀 캠프에 초청된 이현중은 캠프 올스타팀에 선발되었고, 이현중의 활약에 매료된 NBA 글로벌 아카데미는 그에게 왕복 항공료, 숙박비, 수업료 등 전액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아카데미 입학을 제안했다. 2018년 1월, 이현중은 호주 캔버라 NBA 아카데미에 입학해 세계 유망주들과 경쟁을 벌였고, 현지 고등학교 수업에 참여하며 공부와 농구 성장을 도모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호주 NBA 아카데미 입학 후 1년 만에 자신의 꿈을 이뤘네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학교 들어가서 운동을 시작해야 느낌이 올 것 같아요.”

대학을 직접 방문해 확인하고 결정했어요. 여러 대학으로부터 입학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중 왜 데이비슨대학이었나요.

“제가 방문한 대학은 데이비슨대학 외에 워싱턴주립대학도 있었어요. 워싱턴주립대학은 미국 선수들이 중심이었다면 데이비슨대학은 유럽 출신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유명한 NBA 슈터들을 배출한 학교이고, 제 실력을 쌓고 발전해 나간다면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몫했습니다. 1대1보다 팀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훈련방식도 저와 맞았고요. 무엇보다 30년간 데이비슨대학을 이끈 밥 매킬로프 감독님이 진심으로 저를 원했습니다. 대학농구의 명장으로 꼽히는 분께서 지속적인 애정을 보이며 입학을 권유했다는 점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밥 매킬로프 감독은 스테픈 커리의 스승으로도 유명한데, 그런 감독이 이현중 선수에게 애정을 나타냈다는 게 무척 흥미롭네요.

“부모님과 상의 후 최종 결정한 다음 매킬로프 감독님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감독님이 ‘감기로 지독히 고생했는데 다 낫는 기분’이라며 진심으로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만큼 이현중 선수의 실력이 증명됐고 인정받았다는 의미겠죠. 호주 NBA 아카데미 생활은 어떠했나요. 1년6개월을 호주에서 보냈는데요.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언어는 물론 생활 등 모든 환경이 달라졌으니까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유망주들과 경쟁하는 상황도 어려웠고요. 몸싸움에서 밀리고 코치들의 이야기는 귀에 안 들어오고. 그래서 한동안 미국 대학 진학을 포기한 적도 있었어요. 그냥 영어와 농구나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던 거죠.”

부모님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한 적도 있었겠네요.

“많았죠.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호주에 남아도, 한국으로 돌아와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결정하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무조건 버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힘들다고 해서 돌아왔다면 지금쯤 엄청난 후회를 했겠어요.

“어휴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호주도 그렇지만 NCAA(미국대학체육협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뛰어난 농구 실력 외에 일정 수준의 학업 능력이 필요합니다. NCAA는 입학 필수 조건으로 SAT(미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중요한데요.

“작년 10월에 처음 SAT 시험을 치러 920점을 받았어요. 그런데 1000점을 넘으면 대학을 선택하는 폭이 넓어진다는 NBA 아카데미 관계자의 조언을 듣고 다시 공부해 1030점을 받아냈습니다. SAT 점수가 있기 때문에 여러 대학으로부터 입학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호주에서 같이 농구했던 선수들 중에는 SAT 성적이 안 나와 미국 대학 진학을 포기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이은정·최진수·신재영에 이어 4번째 NCAA 선수가 됐습니다. 성공한 선수도 있지만,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도 있습니다.

“왜 그분들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됩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호주 아카데미에서 경험해 봤거든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요. 학점이 떨어지면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호주에서의 경험 덕분에 버티는 힘이 생겼어요. 영어가 안 될 때는 새벽 3시까지 공부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노력했고, 슈팅에 문제가 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 개인훈련을 반복하며 실력을 키워 나갔으니까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생활이 두렵지는 않아요.”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농구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우리가 미국한테 81대133으로 패했는데 그 경기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저도 한국 고교농구에선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인데 세계적인 선수들과 붙으니까 많이 위축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한국에 남아 있다가는 우물 안 개구리밖에 안 될 거라는 사실을.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제 실력을 성장시키고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호주 NBA 아카데미 입학으로 이어졌습니다.”

호주 아카데미 과정 중에 참가했던 18세 이하 아시안 챔피언십 대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8강전에서 만난 중국한테 패하는 바람에 1998년 대회 9위 이후 20년 만에 가장 좋지 않은 대회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그 대회를 마치고 호주로 돌아와서 새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겠더라고요. 감독·코치가 시키는 운동만 하지 말고 제 스스로 개인훈련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 대회 경기 영상을 계속 반복해서 돌려 봤어요. 저한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찾아보려고요. 제게 엄청난 자극을 선사했던 국제대회였습니다.”

이현중과의 인터뷰 자리에는 어머니 성정아씨도 함께했다. 마냥 어리게 보였던 아들이 미지의 세계에서 부딪히고 극복해서 이뤄낸 결과물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걱정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시작인데 너무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게 부담스럽지만 현중이가 잘 이겨낼 것으로 믿습니다.”

이현중의 목표는 한 가지밖에 없다. NBA 1호 출신이 하승진(은퇴)이라면, 그는 NBA 진출 후 중도 포기 없이 끝까지 살아남아 미국 농구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이현중의 모습이 든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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