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방향성…삼성 ‘제2의 창업’ 나서야”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8 10: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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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광기 삼성전자 前 부사장 “삼성, 디지털 교육 플랫폼 사업으로 ‘CPND’ 완성해야”

1987년 삼성전자 입사. 세계 100여 개국, 300개 이상 도시에서 30년간 영업과 마케팅, 사업 운영 등을 두루 경험. 글로벌 경영자로 평가받아 아프리카 총괄, 동남아 총괄을 거쳐 본사 TV사업부 글로벌 마케팅 전략팀장(부사장)에 임명. 이렇게 잘나가던 ‘삼성맨’은 4년 전 삼성전자 부사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그러고선 《어떻게 다시 성장할 것인가》 《제2 창업 시대》 《산업한류혁명》 등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 경제의 위기를 헤쳐나갈 ‘뉴패러다임’을 고민하는 민간 싱크탱크의 소장을 맡고 있다. 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는 박광기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 소장이다. 삼성에 대한 고언(苦言)을 듣기에 이보다 좋은 적임자는 없다고 여겼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5~10년 후 삼성의 모습은 어떠할까.

“삼성은 현재 이건희 회장 시대의 관성으로 유지되고 있다. 비록 지금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돈을 벌고 있다 해도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지 못하면 재벌 개혁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한 오너는 결국 경영권을 상실할 것이다. 총수가 부재하면 경제력 집중의 원흉으로 지탄받는 그룹도 사회적 명분을 잃고 해체될 것이다. 삼성은 반도체나 만드는 부품회사로 전락해 명맥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삼성에 오래 몸담은 임원으로서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나.

“삼성의 위기를 반도체와 스마트폰 같은 주력사업의 부진으로만 봐야 할까? 임직원의 위기의식이 부족해서, 1등이라는 자만심에, 혁신의 노력을 게을리해서 생겨난 것일까? 본질을 보자. 삼성의 위기는 시대적 대전환기에 영향력에 걸맞은 제2의 창업 비전을 찾지 못하고 있는 리더십의 위기다.”

삼성의 영향력에 걸맞은 제2의 창업 비전이 무엇을 의미하나.

“삼성의 주력사업인 반도체가 침체기에 접어드니 국가 경제가 더욱 어려워 보인다. 그럼 반도체가 살아나면 국가 경제가 살아날까? 수백조원, 수십조원 투자 발표에 대다수 국민이 시큰둥한 이유가 무엇일까. 삼성의 투자에 희망을 갖는 국민이 지금 몇 명이나 되나. 문제는 투자금액이 아니라 방향성이다.”

방향성이 문제라는 지적인가.

“삼성이 아무리 파격적인 쇄신안을 발표해도 그 안에 국민이 기대하는 역할을 찾아 담지 못하면 재벌에 대한 개혁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국민은 재벌에게 책무를 다하라고 채근하는데, 재벌은 국민이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하고 있다. 재벌 개혁의 본질은 재벌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사업 내용이고 역할이다. 그 일을 찾지 못하는 한 한국 사회에서 반(反)재벌 정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기업 정서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인가.

“그렇다. 그 본질을 이해한다면 정치권은 대기업을 견제하기보다 활용하려 할 것이다. 기업 총수는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삼성의 위기는 개별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경제 전체의 위기다. 삼성의 위기 극복과 국가 경제 재도약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위기의 진앙은 ‘포스트 반도체’가 없다는 것이다. 바이오, 2차 전지, 전장부품 등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삼성이 2차 도약에 성공하려면 경쟁사업 분야에서 신사업을 찾아선 안 된다. 삼성만의 강점과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차별화된 신사업 분야라야 지속 가능하다. 앞으로 모든 양산 제조업은 설사 새로운 아이템이라도 중국과의 출혈경쟁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제조굴기와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중국굴기는 한국 경제에 북핵보다 더 큰 위협의 쓰나미다. 제조굴기는 한국 제조업을 샌드위치로 만들고 일대일로는 수출 강국의 한국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삼성의 포스트 반도체가 제조업이 주력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삼성이 포스트 반도체의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얘기인가.

“반도체가 제조강국 시대의 꽃이라면 디지털 시대에 삼성이,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대기업의 투자방향에는 단순히 해당 기업의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 주력산업 지형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삼성의 신사업은 플랫폼과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 경제 시대의 국가 신산업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의 신사업으로는 어떤 분야가 적합할까.

“삼성은 돈을 잘 버는 회사지만 주가는 애플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희망을 주는 미래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삼성은 스마트폰, 반도체가 아니더라도 실현되지 않은 엄청난 잠재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구글, 애플과 경쟁하는 삼성의 힘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스마트폰과 같은 주력사업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융합시대에 삼성그룹이 가진 수십 개 관계사와 국내 중소 협력사의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바로 삼성의 힘이다. 국내에서는 이게 경제력 집중의 원흉으로 지탄받지만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국가 종합개발의 최적 포트폴리오를 가진 게 된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삼성이 세계 산업화의 롤모델인 한국의 경험을 활용해 신흥 개도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함으로써 지구촌의 균형발전과 양극화 해소에 앞장설 수 있다. 관계사와 협력업체를 동원해 맞춤형 산업화 마스터플랜을 기획하고 중소기업들을 끌어들여 경제개발을 주도적으로 해 줄 수 있다. 그룹의 종합상사는 맥킨지와 같은 세계적 국가 개발 컨설팅업체로 거듭나고, 삼성은 맞춤형 산업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할 수 있다. 알리바바가 중소 제조기업들에 판로를 열어줬듯 중소 제조기업의 신흥국 진출 플랫폼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신사업으로 또 추천할 만한 분야가 있나.

“디지털 교육 플랫폼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멀티미디어 기술과 국내 게임회사들의 개발 능력, 교육기업들을 융합하면 21세기 지구촌 교육 혁명을 선도하는 디지털 교육산업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멀티미디어 하드웨어 기술과 통신 네트워크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교육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TV, PC 등 멀티미디어 통신기기를 어떤 서비스 플랫폼으로 활용할 것이냐에 대한 답이다. 기존의 강점인 디바이스와 네트워크 사업에 플랫폼과 콘텐츠를 추가해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CPND(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를 완성하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는 디지털의 관문을 차지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이 선도한다. 삼성의 제조업 중심 성공 스토리가 디지털 경제에도 지속 가능할까? 20세기 하드웨어 선도 기업이었던 삼성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시대 변화에 맞게 진화하려면 어떤 분야의 데이터를 선점할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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