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 위기론으로 과학도시 위상 곤두박질
  • 세종취재본부 김상헌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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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핵심시설 타지 유출 심각
대덕특구 리노베이션 계획, 신규에만 중점
현장과 어긋나는 정책으로 겉도는 느낌 받아

대덕연구개발특구 위기론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1970년대부터 약 40년간 우리나라 국가발전을 견인하고 대전을  '과학도시'로 불리게 한 곳의 위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대덕특구 위기설은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수차례 거론했지만 뚜렷하게 좋아지거나 바뀐 것은 없다. 

지난 5월 26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출연연(정부출연연구기관) 지역 조직(분원)은 총 57개소다. 권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 15개소(서울 7개, 인천 1개, 경기 7개), 호남권 16개소(광주 5개, 전북 9개, 전남 2개), 충북 3개소가 있다. 그 외에도 대구 6개, 경북 3개가 있고, 부산, 울산, 경남에도 각각 4개, 3개, 2개의 분원이 자리하고 있다. 강원도, 제주도에도 각각 3개소, 2개소를 운영 중이다. 분원이라지만 출연연 연구시설이 이미 전국적으로 고르게 퍼져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대전만을 과학도시라고 부르기 민망하다.

과학도시의 상징이었던 엑스포과학공원모습. 현재는 영화세트장, 기초과학연구시설과 건설 중인 사이언스콤플렉스로 탈바꿈했다.  연합뉴스
한때 과학도시 대전의 상징이었던 엑스포과학공원모습. 현재는 영화세트장, 기초과학연구시설과 건설 중인 사이언스콤플렉스로 탈바꿈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연연 핵심 연구시설들 타지에 빼앗겨

더 큰 문제는 이들 분원 중 대덕특구 소재 출연연의 분원 비중이 상당하는 점이다. 이미 타 지역의 적극적인 유치 활동 등을 등에 업고 핵심 시설을 대전시 밖으로 빼내고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경우에는 1992년 서울센터를 시작으로 2012년 서울서부센터에 이르기 까지 모두 8곳의 분원이 타 지역에 설치됐다. 기초지원연은 기초연구를 위해 필요한 고성능 연구 장비를 지원하는 곳이다. 수년 전부터 대전 본원이 아닌 타 지역 분원에 신규 장비들이 착착 들어서고 있다. 당장 오창센터만 가도 대전 본원에서 볼 수 없는 고가의 장비들이 즐비하다. '휴먼 7T MRI 시스템'이나 '초고분해능 질량분석기', '고자기장 자기공명장치' 등이 설치돼있다. 기초지원연에서 운영하는 선도연구장비 10개 중 무려 5개가 오창센터에 설치돼 있다. 대전본원에 설치된 선도연구장비는 단 2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도 마찬가지다. 생명공학을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동물실험 시설이 타 지역에 있다. 실험동물자원센터와 국가영장류센터는 이미 오래전에 오창분원에서 운영하고 있고, 영장류자원지원센터는 전분분원에 있다. 한때 지역 과학계에서는 “기초지원연과 생명연은 오창으로 본원을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뼈있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다. 

대덕특구 출연연 중 산업화가 가장 활발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서울SW-SoC 융합 R&BD 센터(경기 판교)·호남권연구센터(광주)·대경권연구센터(대구) 등 3곳의 분원을 가지고 있다. 모두 4차 산업혁명시대에 중요 먹거리로 여겨지는 기술들을 연구하는 곳이다.

한국기계연구원 역시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대구)·부산기계기술연구센터(부산)·LNG·극저온 기계기술시험 인증센터(경남 김해) 등 3곳의 분원을 운영한다. 대구에서는 의료기계를 연구하고 있고 부산에서는 레이저기술과 자동차부품, 원전기기검증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전북흡입안전성연구본부(전북 정읍)·경남환경독성본부(경남 진주) 등 2곳, 한국화학연구원은 울산그린정밀화학연구센터·바이오화학실용화센터(울산) 등 이름만 들어도 중요성이 가늠되는 곳들을 타지로 보냈다.

 

계속되는 유치 실패...신규 계획은 엇박자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전시가 과학 도시의 위상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인간형 로봇 개발의 전초기지인 KAIST 휴보센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유치를 대구에 뺏겼다. 자기부상열차를 직접 개발한 기계연이 있고 실험 노선을 운영했음에도 자기부상열차 사업은 인천에 양보했다. 

4차산업혁명특별시 대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추진 중인 스마트시티특별시 구현도 계속 헛방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미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의 본격적인 추진을 위해 지난 3월 28일 '국가 시범도시 세종·부산 추진단' 출범과 함께 세종·부산 추진단별로 각 사무소 개소식을 개최했다. 세종과 부산에 구성하는 올해 국가 시범도시 예산은 올 한해만 264억 원이다.

엑스포과학공원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 중인 '사이언스콤플렉스'. 지역민들은 이 곳이 과학시설이 아니라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단순 유통시설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엑스포과학공원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 중인 '사이언스콤플렉스'. 지역민들은 이 곳이 과학시설이 아니라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단순 유통시설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시는 뒤늦게 지난 5월 '스마트시티 챌린지' 사업에 선정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총 6곳 중 한 곳에 선정돼 국비 15억 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국가 시범도시 예산의 1/10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제는 대덕특구의 공간개편 등을 위한 '대덕특구 리노베이션(재창조)'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다. 대전시는 공식적으로 "대덕특구가 시간이 지나며 국가 및 지역 경제성장 견인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세부 내역은 리노베이션으로 보기에 아쉬운 수준이다. 우선 기업 맞춤형 융복합센터 건설이 있다. 벤처 창업 2000개를 목표하고 스타트업 타운도 새로 만든다고 밝혔다.

대전시에는 이미 비슷한 성격의 테크비즈니스센터(TBC)를 운영 중이고 무려 지상 43층짜리 사이언스콤플렉스를 건설 중이다. 문제는 TBC가 높은 임대료 때문에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이언스콤플렉스는 TBC보다 더 높은 임대료가 책정될 것이라고 대전시 관계자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실정에 새로운 시설만 계속 만들겠다는 기획만 내 놓고 있다. 

첨단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라온바이오융합연구원을 세운다는 계획도 있다. IBS가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5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확보해 만들겠다는 포부다. 사실 이 중이온가속기는 IBS 자체에서도 정확한 운영 계획이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무조건 밀어 붙이고 있다. 대덕 출연연들의 바이오융합연구 시설들은 외지에 다 빼앗기고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새 시설 건설에만 혈안이 돼 있는 셈이다. 

한 지역 기업인은 “대전시에 과학도시의 위상이 위축되는 이유는 시설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시 행정이 문제”라고 꼬집고 있다. 새로운 시설, 기관 설립을 기획하기에 앞서 중요 연구시설을 외지에 빼앗기고 여러 기업 지원 시설들이 있음에도 활발하게 사용되지 않는 이유를 우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40년 넘게 이어오고 있던 위상을 아끼고 다듬는 것이 갈아엎고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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