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고래잡이에 나섰나 
  • 류애림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8 11: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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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국제 비판 여론 아랑곳 않고 ‘상업 포경’ 재개

지난 7월1일 오전 9시 반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항에서 일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힘차게 두드리는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여기에 전통 현악기 샤미센의 선율까지 더해졌다. 항구의 분위기는 마치 축제 같았다. 이날 일본인들이 항구에 모인 이유는 ‘닛신마루’의 출항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닛신마루는 대형 포경선으로 이날 일본은 31년 만에 ‘상업 포경’을 재개했다.

이날 시모노세키뿐만 아니라 홋카이도(北海道) 구시로(釧路)항에도 전국의 소형 포경선이 고래잡이를 위해 모였다. 오후 5시쯤에는 크레인으로 낚아올린 밍크고래 두 마리를 육지로 올렸다. 그중 한 마리는 길이 8.3m, 체중 5.6톤으로 밍크고래로선 최대급이었다. 잡힌 밍크고래 고기는 7월4일부터 일본 각지의 시장에 나왔다. 구시로에서는 560㎏의 고래고기가 두 곳의 도매시장에 나왔고 살코기 부위는 1㎏당 2500엔(약 2만7200원) 전후로 팔렸다. 다른 시장에서는 1㎏당 1만5000엔(약 16만3000원)에 팔린 부위도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항에서 지난 7월1일 포획된 밍크고래가 포경선에서 하역되고 있다. ⓒ 뉴시스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항에서 지난 7월1일 포획된 밍크고래가 포경선에서 하역되고 있다. ⓒ 뉴시스

IWC에 반기 든 日 “고래 개체수 충분”

일본은 지난해 12월26일 국제포경위원회(IWC) 탈퇴를 표명했다. 그리고 6월30일 정식으로 탈퇴하고 바로 다음 날 상업 포경을 재개했다. IWC는 고래 자원의 보호와 포경산업의 질서 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48년 설립되었고, 일본은 1951년 가맹국이 됐다. 이후 고래 남획이 계속되자 1982년 IWC 총회에서 상업 포경 일시중지(모라토리엄)가 결정됐다. 일본은 이의를 제기하고 상업 포경을 계속했지만 1986년 일본의 이의 신청은 취하되었고, 1988년부터 일본도 상업 포경을 중단한다.

작년 9월 브라질의 해안도시 플로리아노폴리스에서 열린 IWC 총회에서 일본은 개체수 회복 등을 이유로 상업 포경의 일부 재개를 제안했지만 거부됐다. 오히려 이 총회에서는 고래를 영구히 보호하자는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이 채택됐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올해 6월30일 IWC를 탈퇴하고 상업 포경 재개를 단행했다.

작년 12월 탈퇴 의사를 밝히며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고래류 중에는 충분한 자원량을 확인할 수 있는 종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호만을 중시한다”며 IWC가 포경산업의 질서 있는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탈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은 예로부터 고래를 식재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용도로 이용했고, 포경을 통해 각 지역사회가 유지되었으며, 그것이 고래를 이용한 문화와 생활을 이루어왔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수산 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생각을 각국이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 계승해 나가길 기대한다”며 일본의 전통문화 유지·계승을 탈퇴 이유로 내세웠다.

몇백 년 동안 일본 연안에서 고래 사냥이 이어져 온 것은 사실이다. 와카야마현 다이지는 400년 정도의 포경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여전히 전통을 명목으로 돌고래 잡이를 하고 있다. 돌고래의 경우 개체수가 많다는 이유로 IWC에서도 규제하지 않는다. 다이지에 위치한 고래 박물관에서는 돌고래쇼, 고래쇼 등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잔인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돌고래 사냥과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돌고래쇼 등이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일본이 IWC 탈퇴로 재개하는 것은 상업 포경이다. 그동안에도 ‘조사 포경’은 계속해 왔다. 조사 포경은 고래 자원 조사를 위해 이루어지는 포경 활동을 일컫는다. 일본은 과학적 조사를 명목으로 조사 포경에 착수해 상업 포경이 중단된 1988년부터 남극해에서 매년 300마리의 밍크고래 등을 포획해 왔다. 조사의 부산물인 고래고기는 일본 내에서 판매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업 포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상업 포경 재개 결정으로 일본은 태평양 연안에서의 조사 포경은 중단하기로 했다. 상업 포경은 조사 포경과 달리 일본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국제사회의 비판과 반발을 각오하고 상업 포경을 재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비판을 감수할 만큼 일본 국내의 고래 수요가 충분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일본의 상업 포경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PA 연합
영국에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일본의 상업 포경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PA 연합

실익 없는 상업 포경, ‘관료주의 탓’ 분석도

1960년대는 일본의 고래 포획량이 최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연간 20만 톤을 넘어서는 고래고기가 공급됐다. 단백질 섭취를 위한 소고기 등 육류 공급이 부족하던 시대에 고래고기는 일본인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1964년에는 2만4000마리 이상 포획했다. 소고기·돼지고기 등 육류에 비해 저렴했던 고래고기의 당시 1인당 소비량은 1.9kg. 학교 급식의 인기 메뉴로 고래고기를 추억의 급식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도 많다.

그러나 현재는 다른 단백질 공급원이 충분하다.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도 수입이 이루어지며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2015년 일본의 고래고기 소비량은 1인당 30g이었다. 일본 국내에서의 고래고기 전체 소비량은 연간 수천 톤 정도로 육류 소비량의 0.1%밖에 되지 않는다. 상업 포경의 재개가 오랜 기간 포경으로 유지되어 온 지역사회와 포경 관계자를 위한 배려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산업’으로서의 장래성이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 2월 영국 BBC의 루퍼트 윙필드 헤이스 도쿄특파원은 ‘일본과 고래, 왜 일본은 포경을 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당시에는 일본의 조사 포경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칼럼을 통해 윙필드 헤이스 기자는 포경이 일본의 식량 확보와 아무런 관계도 없고 세계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는데도, 또한 경제적 이유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일본의 포경을 조사하고 있는 프리저널리스트 사쿠마 준코의 인터뷰를 실었다. 사쿠마는 일본의 포경이 일본의 관료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관료는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담당자가 삭감되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거의 관료 전원이 나서서 포경 관련 부서를 어떤 일을 해서라도 유지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선거구가 포경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경우라면 상업 포경을 약속할 것”이라고 말하며 포경과 정치인, 그리고 선거와의 관계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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