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몰아 보는 시청자들, ‘시즌제 드라마’ 시대 열리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0 12:00
  • 호수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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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달 연대기》와 《보좌관》의 실험 주목…양보다는 질적 완성도로 승부한다

지난 6월1일부터 시작한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총 18회를 연이어 방송하지 않고 6회분씩 3개 파트로 나눠 방영하고 있다. 파트1과 2에 해당하는 12회를 마무리 지은 《아스달 연대기》는 오는 9월7일 파트3로 돌아올 예정이다. 태곳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로 《아스달 연대기》는 소재부터 내용과 형식은 물론이고 방영 방식 또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셈이다. 이 작품을 쓴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경우 62부로 만들어졌던 《선덕여왕》 등의 작품을 썼던 작가들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24부작으로 그나마 적은 분량이었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총 50부작이었다. 김영현 작가의 초창기 성공작이었던 《대장금》 역시 총 56부작에 달한다.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 tvN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 tvN

하지만 이것도 200부작 《태조 왕건》이나 134부작 《대조영》과 비교하면 소소한 수준이다. 과거 대하사극은 성공 보증수표로 불리며 무려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몇 년에 걸쳐 쉬지 않고 만들어내는 사극은 그 양만큼 질을 담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전쟁 신은 직접 전투 장면을 보여주기보다는 장수들이 죽 늘어서서 말로 전투를 설명하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만일 지금 이런 방식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시청률은커녕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고 조기 종영될 수도 있다. 이미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해외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을 익숙하게 보는 시청자들에게 그런 ‘양적인 제작’은 일종의 콘텐츠 공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국내외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또 볼 수 있는 채널들이 늘어나다 보니 한 회를 보더라도 보다 밀도 높고 질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들이 대부분이다. 《아스달 연대기》는 5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여되면서도 총 18부작에 불과하다. 그것도 3개 파트로 나눈 건 그만큼 매 회가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도를 기했다는 의미를 담는다. 물론 성취가 어느 정도였는가는 차치하고라도.

JTBC 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 JTBC
JTBC 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 JTBC

완결에 치중하기보다 완성도 높여

최근 시즌1을 끝낸 JTBC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하 보좌관)의 경우엔 거의 미드에서 시도될 법한 본격 시즌제를 시도하고 있다. 시즌1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성을 주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뒤편에서 실질적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보좌관들의 세계를 통해 현실정치를 들여다보는 《보좌관》은 장태준(이정재)이 주인공이다. 그는 송희섭(김갑수) 의원 같은 노회한 정치인을 보좌하며 그를 법무부 장관에 오르게 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자신은 그 대가로 송희섭 의원이 관할하는 지역구를 넘겨받아 의원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장태준은 국회에서 상대편처럼 꾸미고 있지만 사실은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인 강선영(신민아) 의원과 공조하며 세상을 바꾸고픈 야망을 불태운다. 하지만 자신과 뜻을 함께해 왔던 이성민(정진영) 의원이 불법 선거자금 수수 의혹으로 자살하면서 어떻게든 힘을 얻기 위해 송희섭 의원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정치판의 이야기를 그저 보기 좋은 성공 판타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보좌관》은 좀 더 냉정한 세계로 담아낸다. 뜻만 갖고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하면 그 뜻이 흔들려버리는 정치판의 아슬아슬한 생리를 《보좌관》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0부작 시즌제로 기획된 작품이라면 적어도 10부 안에 하나의 굵직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을 것 같지만 《보좌관》은 아예 시즌2를 애초부터 계획한 작품이라 그런 무리한 완결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시즌제로 방영되는 미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시즌제 미드는 한 시즌을 마무리하려 하기보다는 다음 시즌과의 연결고리에 더 신경을 쓴다. 그래서 충격적인 엔딩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조금 기다리는 기간이 있어도 다음 시즌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식과는 달리 한 편의 시즌으로 완결성을 가져가면서 다음 시즌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들도 속속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MBC 《검법남녀》의 경우 시즌1의 이야기가 마무리됐지만 다시 시즌2에서 그 연결고리를 만들어 이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OCN 《보이스》의 경우도 매 시즌이 마무리되지만 시즌을 연결 짓는 고리들이 이어지며 시즌3까지 방영됐다. 이들 드라마들이 이런 형태의 시즌제가 가능한 건 그 작품의 특성상 다양한 병렬적 사건들을 보여줄 수 있어서다. 《검법남녀》나 《보이스》 모두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이고, 그 사건들 하나하나를 별개의 에피소드처럼 보여주면서 동시에 전체를 꿰뚫는 이야기를 배치함으로써 시즌을 이어간다.

 

드라마 시즌제가 갖는 장단점은?

이처럼 한 시즌이 마무리되는 형태의 시즌제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고 있어 흐름이 끊기는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나 《보좌관》 같은 경우처럼 완결되지 않고 시즌이 끝나고 일정 기간이 흐른 후 다음 시즌으로 이어가는 방식은 어쩔 수 없이 맥이 끊기는 단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드라마가 일정한 궤도에 올라 화제가 되기 시작할 즈음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게 되면 그 중간 휴지기를 거쳐 시즌2에서는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난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드식의 시즌제가 갖는 장점은 보다 완성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달아 무리하게 횟수를 이어가고 끝을 맺기보다는 10회 분량 정도로 끊어서 제작하고 방영하는 방식은 제작 현장의 노동 강도를 분산시켜 콘텐츠의 질을 높여줄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몰아 보기 같은 새로운 방식의 드라마 시청 패턴은 시즌제가 힘을 얻는 중요한 이유다. 매회 본방을 보기보다는 이미 일정 부분 완결된 작품을 몰아 보는 방식의 시청 패턴은 결국 좋은 작품에 대한 ‘선택적 시청’이라는 점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제 특정 드라마 시간대를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입소문이 난 좋은 작품들을 IPTV나 OTT 플랫폼으로 몰아 보는 새로운 시청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시즌제 드라마가 그래서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네 드라마의 한 트렌드가 될 거라는 걸 예측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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