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휩쓰는 ‘흑당 열풍’, 거품일까
  • 박지호 시사저널e 기자 (knhy@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21 10:00
  • 호수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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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슈가 비롯해 유사 브랜드만 10곳 이상…과거 대만 카스텔라 악몽 재현될까 우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저트는 흑당이다. 흑당은 사탕수수 원당을 달여 캐러멜 향이 나도록 한 시럽으로, 대만의 흑당버블티 브랜드인 타이거슈가가 올해 초 국내에 상륙하면서 그 인기가 시작됐다. 음료뿐 아니라 과자, 샌드위치, 빙수, 아이스크림 등 모든 음식에 흑당을 접목해 만든 제품이 출시되면서 ‘흑당민국(대한민국+흑당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됐다.

대만의 흑당버블티 전문점 타이거슈가가 국내에 상륙한 건 지난 3월이었다. 오픈 직후 국내 1호점인 홍대점의 대기줄이 너무 길어 “차라리 대만에 가서 먹고 오는 게 더 빠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 인기는 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7월16일 30도가량의 무더운 날씨에도 기자가 찾은 타이거슈가 명동점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흑당버블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만발’ 흑당 열풍이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업계를 휩쓸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타이거슈가 강남점 ⓒ 시사저널 최준필
‘대만발’ 흑당 열풍이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업계를 휩쓸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타이거슈가 강남점 ⓒ 시사저널 최준필

프랜차이즈 업계도 앞다퉈 흑당 음료 출시

흑당버블티는 일반 버블티와는 달리 하얀 우유에 검은 시럽이 쏟아지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한 비주얼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퍼졌다. 인스타그램 #흑당버블티 태그만 4만 개다. 타이거슈가와 유사한 브랜드만 더앨리(The ally)와 흑화당, 쩐주단, 19티, 블랙슈가, 춘풍슈가, 주옹당, 호이차, 락립배, 길용당, 행인당, 블랙티드 등 10곳을 훌쩍 넘는다. ‘흑당 전문점’뿐 아니라 공차나 카페베네, 커피빈, 요거프레소, 투썸플레이스, 배스킨라빈스, 파스쿠찌, 이디야, 셀렉토커피,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설빙, 오설록 등 기존 커피 전문점에서도 흑당 메뉴를 개발해 내놓고 있다.

흑당 열풍은 음료를 넘어 디저트 시장 전반에 불고 있다.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편의점도 갖가지 흑당 활용 디저트를 내놓고 있다. CU는 브라운슈가밀크티(아이스크림), 브라운슈가밀크티(가공유), 브라운슈가라떼, 시원한흑당크림빵 등 4개 제품을 내놨다. GS25 역시 유어스흑당무스케이크, 유어스흑당파르페, 흑당라떼샌드위치 등 3가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흑당시럽을 사서 직접 요리에 활용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실제 이커머스 업체의 흑당시럽 판매량도 최근 급증했다.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 7월1~14일 흑당시럽 판매량 증가율은 지난 1월 같은 기간 대비 무려 3만1534.24% 급증했다. 흑당의 존재가 대만 여행객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던 때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후 타이거슈가가 한국에 들어온 3월 같은 기간 대비 증가율은 2533.8%였다. 4월과 5월 같은 기간 대비 판매량 증가율도 각각 2114.8%, 910%를 기록했다.

대만 카스텔라는 3년 전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요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 위치한 대만 카스텔라 매장에서는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제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인기가 한창이던 2016년 대만 카스텔라를 파는 브랜드만 17개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1년도 채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자취를 감췄다.

업계에서는 흑당버블티의 인기도 “길어야 올해 겨울까지”라는 전망이 나온다. 버블티 자체가 봄~가을까지 가장 인기가 많은 시즌성 메뉴이기도 한 데다, 이미 너무 많은 곳에서 판매를 시작해 희소성이 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흑당버블티는 고가의 시설을 투자하지 않고 흑당시럽과 타피오카 펄만 있으면 누구든지 만들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일반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는 지금과 같이 수요가 몰리는 시즌에 맞춰 한정 메뉴로 반짝 출시한 후, 인기가 사그라지면 제품을 없애는 방식으로 메뉴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에서도 이 같은 ‘한시 운영’이 가능하다.

 

여기도 흑당 저기도 흑당, 얼마나 갈까

문제는 전문점을 표방한 매장의 경우에는 아이템의 인기가 시듦과 동시에 매장 문을 닫아야 한다는 데 있다. 장정용 한국산업경제연구소 대표는 “흑당버블티 인기도 1년 이상 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흑당버블티를 타이거슈가에서만 팔면 희소성이 있다. 안 먹어본 사람들이 호기심에 먹는 수요로 오랫동안 인기가 유지될 수 있다”면서도 “최근 웬만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흑당 메뉴를 다 내놨다. 굳이 타이거슈가나 흑화당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흑당버블티 매장들 역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매운닭발 식당이 엄청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모두 줄을 서서 먹었다. 유사 브랜드가 생길 때까지만 해도 아이템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치킨집과 호프집에 비슷한 메뉴가 생기면서 메뉴 자체의 희소성이 떨어졌고, 결국 문을 닫은 것과 같은 이치다. 2013년 인기였던 벌집 아이스크림도, 2015년 제임스 치즈 등갈비를 위시한 치즈 등갈비도 반짝 주목을 받은 후 서서히 소비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는 “점포 보증금, 권리금, 집기, 인테리어비, 가맹비, 교육비 등 초기 프랜차이즈 창업에 적어도 5000만~6000만원이 들어간다고 가정할 때 수명이 6개월~1년인 반짝 아이템으로 단기간에 투자비를 회수하고 이윤까지 남길 수 있을까를 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조언했다.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도 “국내 소비자 입맛은 전환이 매우 빠른 편”이라면서 “새로운 디저트가 나오는 순간 모두 거기로 옮겨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치킨만 봐도 한때는 굽는 치킨이 대세였다가 치즈 시즈닝으로 넘어간 후 현재는 매운맛, 치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치킨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도 맛의 트렌드가 계속 변하면서 있던 메뉴도 폐기되는 상황”이라며 “맛의 변주 범위가 크지 않은 단일 제품 판매점의 경우에는 유행이 빨리 변하는 한국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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