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싸움에 빠진 한국당, 총선전략 ‘빨간불’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2 14:00
  • 호수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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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파, '비박계 축출' 움직임...“이러다 궤멸한다” 비관론 고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여야 5당 대표가 참석하는 회담을 제안한 7월15일 국회에서는 황 대표의 회담 제의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한 수도권 초선의원은 “한 달 전까지 장외투쟁으로 일관하며 일대일 영수회담만을 고집하던 황 대표가 돌연 회담을 역제안한 것은 자기부정에 가깝다”며 안타까워했다. 일주일 전인 7월8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똑같은 의제로 회담을 제안했을 때도 황 대표는 부정적이었다. 당권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일본과의 무역마찰로 경제상황이 심각해 수권정당을 추구하는 우리로선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면서 “당리당략적 측면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잇따른 말실수로 당은 물론 본인 지지율이 정체된 상황에서 황 대표가 뒤늦게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는 당내 의견이 많다. 한국갤럽의 7월 둘째 주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20% 아래로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과 11% 차(4월 넷째 주)까지 좁혀졌을 때만 해도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해볼 만하다’는 기류가 팽배했지만, 이제는 ‘이러다 보수진영이 궤멸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보수 정치권에 대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TK(대구·경북) 지역이나 60대 이상에서도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35%, 36%에 불과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文정부 반사이익만 노렸다면 오산” 

당내 의견을 종합해 보면, 취임 초기 황교안 대표의 머릿속에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을 보면서 당내 결속력만 높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비슷한 수준의 의석수를 확보할 경우 황 대표는 확실한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간다.

대표 취임 직후 황 대표 주변에서는 ‘이회창식 당 운영을 벤치마킹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뒤 정치인으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황 대표의 롤모델이다. 공교롭게도 이 전 총재는 판사, 황 대표는 검사 출신이다. 취임 초기 황 대표 주변에서 “유약함 걷어내고 법과 원칙이 선 야당 정치인 이미지를 내세우자”는 의견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정권이 처음 넘어간 DJ(김대중 전 대통령)정부에서 치른 2000년 16대 총선에서 이 전 총재는 당내 거물급 정치인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당시 5선 이상 다선의원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김영구, 양정규, 박관용 의원 등 세 명에 불과했다. ‘2·18 대학살’이라고 불린 공천에서 조순·김윤환·이기택·신상우 의원 등 거물급 인사들이 탈당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여당을 제치고 112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전 총재가 16대 총선 후 YS의 흔적을 지우고 빠르게 당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냉혈한’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의 ‘원칙’이 있어서다. 그때보다 오히려 1년이 더 된 문재인 대통령 집권 4년 차에 치러지는 총선이니만큼 황 대표로선 16대 총선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개혁 공천이 핵심이다. 한 전직 당직자는 “황 대표 주변에 40대 참모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인사들인데, 이들이 황 대표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은 ‘원칙’과 ‘강인함’이며 이를 토대로 내년 총선에서 정치권 물갈이를 이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가 취임 100일째인 지난 6월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우리 스스로 당을 개혁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역사의 주체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혁신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와 국민에 무한대의 책임의식을 갖고 미래와 통합을 향해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데서 이런 뜻이 읽힌다. 글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혁신’ ‘미래’ ‘통합’이다. 혁신공천을 통해 당의 면모를 일신한 뒤 범보수진영을 하나로 묶는 구상을 했을 법하다.

이러한 구상은 황 대표의 지지도가 빠지면서 점차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모든 논란의 시작점이 황 대표였다는 점이다. 여기에 당내 인사들의 잇따른 말실수도 지지율 정체에 한몫하고 있다. 한 수도권 초선의원 보좌관은 “공천권을 갖고 있는 당 대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언론에 나와 발언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생각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서 정치 신인이자 원외 인사인 황 대표로선 측근들에게 더욱 의존하는 모습이다. 지금껏 당의 핵심에 있었던 친박들을 무리하게 내칠 경우 당이 쪼개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홍문종 의원이 탈당해 만든 우리공화당이 ‘원조 보수정당’을 내세우고 있는 점도 고민거리다. 자칫 확실한 텃밭인 TK마저 우리공화당에 뺏길 수 있다.

한선교 의원의 후임으로 비박계인 이진복 의원을 검토했던 사무총장에 박맹우 의원을 선택한 것이나, 국회 예결위원장에 김재원 의원이 선임된 것을 두고 당내에서는 ‘친박계의 비박계 축출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프닝으로 끝난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 교체도 큰 틀에서 보면 비박계 배제로 볼 수 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내에서는 지금까지 원장인 김세연 의원 교체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당초 황 대표는 자신의 정치 입문을 도운 친박계를 중심으로 친위부대를 짜되, 곳곳을 비박계로 채워 올 연말이나 내년 초 바른미래당 내 유승민·안철수계와 통합 또는 연대를 모색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당·개인 지지율 정체로 벽에 부딪힌 상태다.

정부·여당의 실정 등 반사이익만을 노려야 한다는 점은 현재 자유한국당의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3선 의원 출신인 한 전직 의원은 “한국당 핵심 당직자들을 만나보면 ‘다음 선거는 무조건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TK, PK(부산·경남)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직 의원은 그러면서 “솔직히 두 지역 빼고 수도권에서 한국당 간판으로 나가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호흡이 맞지 않고 있는 점도 자유한국당으로선 안타까운 점이다. 반사이익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몫이다.

“친박으로 가면 총선 승리 어렵다”

자유한국당에서 구심력이 커지느냐 원심력이 커지느냐는 오로지 황 대표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전 대선후보가 얻은 득표율(24%)과도 격차가 벌어지면서 당 외곽 인사들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용태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황 대표는 예전처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야당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인적 혁신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인적 혁신이 없으면 내년 총선에서 특히 수도권에서 선택을 받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7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특강에서 “지금처럼 친박 1중대, 친박 2중대로 가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7월초 PK를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부산의 모처에서 비밀리에 만나 ‘황 대표 체제 아래에서 내년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느냐’를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후 당권파가 비박계에 대해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파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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