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권의 특별한 인도 여행기 펴낸 류시화 시인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1 11:00
  • 호수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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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에 만날 사람은 바로 지금 만난 사람이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라.”

류시화 시인이 펴낸 새 여행 에세이 《지구별 여행자》에서 맞닥뜨린 문장이다. 여행기에서 여행지의 풍광 대신 경구 하나가 더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류 시인의 것은 읽는 이에게 조금 더 깊고 높아 화질 좋은 이미지로 다가갈 듯하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시를 쓰고 명상에 관한 책들을 번역하며 해마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는 류 시인은 15년 동안 매해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리고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면서 삶의 교훈과 깨달음을 얻었다. 그 기록이 《지구별 여행자》다. 성자와 걸인, 사막의 유목민, 여인숙 주인, 신발 도둑, 새점 치는 남자 등과의 만남에는,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여행 온 여행자들이며, 인생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라는 시인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연금술사 펴냄│300쪽│1만7000원 ⓒ 이관형
《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연금술사 펴냄│300쪽│1만7000원 ⓒ 이관형

인도에서 모든 사람의 ‘원형적 모델’ 만나

큰 축제로 인해 기차표를 구할 수 없게 돼 모든 여행 일정이 헝클어진 류 시인에게 뭄바이의 여행사 대표가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영국인들은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 콜카타에 골프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골프를 칠 때마다 원숭이들이 나타나 골프공을 집어 엉뚱한 곳에다 떨어뜨리곤 했다. 장난꾸러기 원숭이들에게 시달리다 못한 영국인들은 결국 새로운 골프 규칙을 만들었다.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한다’는 것. 물론 이 새로운 규칙은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엉뚱한 곳으로 골프공이 날아갔는데 원숭이들이 그 공을 주워다 홀컵에 떨어뜨리는 행운을 맛본 사람도 있고, 홀컵 가까이 공을 보냈는데 원숭이가 재빨리 집어가 물속에 빠뜨리는 불운한 경우도 있었다. 여행사 대표는 말한다.

“당신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것이오. 좌절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여행을 계속하라는 것이오.”

골프 경기만이 아니라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류 시인은 배웠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계획대로 다 조종할 수는 없다. 매번의 코스마다 긴꼬리원숭이가 튀어나와 골프공을 엉뚱한 곳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 삶이라고.

“이것을 잊지 말게.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 나타나 그대에게 배움을 주고, 그대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안내자들이지.”

《지구별 여행자》에는 그 흔한 인물 사진이나 풍경 사진 한 장 없다. 그런데도 인도를 여행하며 만난 인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하다. 류 시인은 일반인들이 평생 만나 보기 힘든 거창한 사람들과 유적지들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다. 도망간 새를 기다리는 새점 치는 남자, 말끝마다 명언을 하기 좋아하는 식당 주인, 은근슬쩍 다가와 땅콩을 까먹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여행자를 독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자, 시를 좋아하는 강도 두목 등이 그가 만난 인도인들이다. 시인에게 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원형적 모델’이다. 그래서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여행 통해 나 자신의 질서를 발견했다”

“인도는 내게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했다. 세상을, 사람들을, 태양과 열기에 들뜬 날씨를, 신발에 쌓이는 먼지와 거리에 널린 신성한 소똥들을. 때로는 견디기 힘든 더위와,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적막한 기차역에서 잠들어야 하는 어두운 밤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은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누구이든지, 그리고 내가 어디에 서 있든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축복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여행자로서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류 시인이 만난 인도인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엉뚱하고, 재치 넘치고, 유쾌하다. 그들은 우리가 대부분 잊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행복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황당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격언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누가 봐도 지저분하고 낡은 게스트하우스에 투숙한 류 시인은 열악한 환경을 참지 못하고 불평을 떠뜨린다. 그러자 입심 좋은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충고한다.

“신이 준 성스러운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그 대신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오. 나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여인숙을 운영해 왔지만, 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소. 한쪽은 언제나 불평을 해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이오. 당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고 싶은가는 당신 스스로 선택할 일이오.”

류 시인은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인도 여행기지만 인생의 여행기며 삶에 대한 순례다.

“당신, 이거 아시오? 당신이 다음 생에 만날 사람들은 바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란 걸.”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책은 ‘아 유 해피?’로 끝난다. ‘신’은 이상향의 세계를 뜻하지만, 인도인들은 언제나 마치 주문처럼 ‘노 프러블럼’을 외치며 그들의 이상향을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들이 세워놓은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류 시인은 자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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