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 베일을 벗는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1 14: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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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2차 예선에서 남북 같은 조에 편성돼
벤투호, 29년 만의 평양 원정 성사될지도 관심

7월1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AFC(아시아축구연맹) 본부에서 열린 2022 FIFA(국제축구연맹)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조 추첨식. 호주의 축구 영웅 팀 케이힐의 손에 의해 운명 같은 만남이 성사됐다. 한국과 북한이 레바논,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와 함께 H조에 편성된 것이다. 40개 팀이 8개 조로 나뉘어 치르는 2차 예선은 각 조 1위 8팀, 그리고 조 2위 중 상위 4팀까지 총 12팀이 3차 예선(최종)에 진출한다. 홈과 원정 일정도 확정됐다. 10월15일 북한 원정경기를 먼저 치르는 벤투호는 내년 6월4일 홈에서 북한을 상대한다.

월드컵 예선에서 남북 대결이 펼쳐지는 것은 10년 만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으로 가는 길목에서 한국과 북한은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 연달아 맞붙었다. 당시 북한은 남북 경색 분위기를 이유로 자국에서의 홈경기 개최를 거부, 중국 상하이에서 중립 경기를 치렀다. 한국의 홈경기는 모두 서울에서 열렸다. 마지막 맞대결은 지난 2009년 4월1일 서울에서 열린 최종 예선 홈경기다. 3차 예선 두 경기와 최종 예선 중립 경기에서 모두 비겼던 한국은 마지막 홈경기에서 김치우의 결승골로 1대0으로 승리했다. 한국은 당시 조 1위로 본선에 올랐고, 북한도 극적으로 본선행에 성공하며 남아공월드컵에 나란히 진출했다. 이후 남자 축구에서의 남북 대결은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 두 차례 더 벌어졌다.

1월8일 UAE 아시안컵 축구 북한-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북한은 이 대회에서 중동팀에 3전 전패를 당했다. ⓒ AP 연합
1월8일 UAE 아시안컵 축구 북한-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북한은 이 대회에서 중동팀에 3전 전패를 당했다. ⓒ AP 연합

2009년 월드컵 예선 땐 중국에서 중립경기

1970~80년대만 해도 남북 대결은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닌 모든 것을 건 대리전 형식이었다. 1978년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현 AFC U-19 챔피언십)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북한을 꺾은 청소년 대표팀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해빙 분위기도 있었다. 1990년 10월11일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평양으로 오는 문을 열어줬다. 12일 뒤에는 서울에서 한 경기를 더 가졌고 남북은 홈에서 1승씩을 가져갔다. 그 경기가 남자 축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한 기록이다.

여자 축구대표팀은 2017년에 평양에서 경기를 치렀다. 당시에도 북한은 부담스러운 눈치였지만, 아시안컵 예선이었기 때문에 AFC는 개최를 거부할 경우 북한을 탈락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5만 명의 관중이 모인 김일성경기장에서 한국은 북한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뒀고, 이후 다른 국가와의 맞대결 결과 골득실에서 앞서며 북한을 제치고 본선에 올랐다.

평양 원정 성사 여부는 북한에 달렸다. 최근 남북관계가 풀린 상태지만 대규모의 남측 인원이 평양을 방문해 현지 시민과 접촉하는 데 부담을 가질 수 있다. 중국에서 운영되는 북한 전문여행사 고려투어스는 최근 경기를 포함한 4박5일 일정의 패키지 상품을 1인당 1149유로(약 152만원)에 발 빠르게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제3국 개최 가능성을 단서조항으로 달았지만, 이전에 볼 수 없는 풍경이다. AFC는 “스케줄은 변동 없이 진행될 것”이라며 평양 경기가 정상적으로 개최될 것이라고 봤다.

2년 전 여자 축구대표팀 방북 당시에는 선수단과 지원을 위한 축구협회 직원, 통일부 직원에 공동취재단까지 총 51명만 입국을 허락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대응으로 개성공단 가동이 멈추며 남북대화 채널이 끊긴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 평양을 방문한 축구협회 직원과 취재진은 “신변안전 담보서를 쓰는 등 초반엔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훈련과 현지 모습을 사진 촬영하고 전송하는 데 큰 제재가 없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북한 남자 축구는 FIFA 랭킹 122위로 37위의 한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2000년대 들어 100위권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며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내는 등 아시아의 다크호스였지만, 2012년 99위를 마지막으로 100위권 밖을 맴돌고 있다. 지난 1월 UAE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레바논을 상대로 조별리그 3전 전패, 1득점 14실점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한 수 아래로 여긴 필리핀·투르크메니스탄·예멘보다도 부진한 대회 최하위 기록이었다.

북한 축구의 전력 약화는 경제제재로 인한 지원 위축 탓이다. 유럽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정은 국무위원장 취임 초기 젊은 선수들을 이탈리아·러시아·스위스 등으로 대거 축구 유학을 보냈고, 젊은 유망주들이 프로 계약을 맺으며 주목을 모았다. 하지만 현재는 에이스인 한광성(페루자), 박광룡(폴텐)만이 남은 상태다. 국내에 ‘인민 부폰’이라는 별명으로 익숙한 골키퍼 리명국을 제외하면 20대 초중반 선수들로 세대 교체가 이뤄졌는데 전지훈련이나 평가전을 통한 해외 경험 쌓기가 부족해 국제대회에서 약점을 노출한다.

 

30대 김영준 감독 경질…베테랑 윤정수 사령탑 복귀

야심 차게 영입했던 노르웨이 출신의 욘 안데르센 감독도 결국 임금 문제로 2년 만에 떠나보냈다. 2016년 5월 북한 축구대표팀의 역대 두 번째 외국인 감독으로 취임한 안데르센 감독은 북한 축구를 빠르게 변화시키며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이끌고 동아시안컵에서 일본과 비기는 등 선전했지만, 외화로 급여를 지불할 수 없는 북한 사정으로 재계약을 맺은지 6개월 만에 지휘봉을 놨다. 안데르센 감독은 올 1월 북한의 아시안컵 부진을 본 뒤 “전투적이고 조직적인 특유의 강점에 자유로운 사고를 심어왔는데, 내가 부임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안타까웠다”고 말한 바 있다.

긴 시간 북한 전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자이니치(재일동포) 선수들의 비중이 줄어든 것도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다. K리그와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던 자이니치 선수들은 북한 대표팀에 부족한 창의력과 유연성을 상당 부분 맡았다. 정대세(시미즈 S펄스), 안영학(은퇴), 량용기(베갈타 센다이) 등이 주축이었던 2010년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재일동포 사회의 중심인 3·4세대들이 일본 귀화를 택하고, 조총련계인 조선학교의 축구부 활동이 위축되며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현재 북한 대표팀에는 2명의 자이니치 선수만이 남았다.

안데르센 감독이 떠난 뒤 북한은 30대인 김영준 감독(36)에게 지휘봉을 맡겼지만, 아시안컵 대실패로 최근 윤정수 감독으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수 감독은 독일월드컵과 브라질월드컵 예선 당시 북한 대표팀을 이끌었던 베테랑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에도 북한을 이끌고 방한, 결승전에서 남북 대결을 펼친 적도 있다. 윤 감독 부임 후 북한은 빠르게 팀을 정비 중이다. 최근 인도에서 열린 친선대회인 ‘2019 히어로 인터콘티넨탈컵’에 참가해 인도·타지키스탄·시리아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스위스에서 활약하다 최근 소속팀이 없는 정일관이 맹활약하며 대회 MVP를 차지했다.

2차 예선에서 당연히 조 1위를 노리는 한국은 레바논·북한 원정이 목표 달성에 있어 가장 큰 도전이다. 조 추첨 후 파울루 벤투 감독은 “북한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팀들과 동등한 비중으로 분석하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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