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WTO 한-일 대결, 무승부 절대 아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9 10: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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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기호 전 민변 국제통상위원장
“日 지인 ‘이번에 또 지면 무슨 창피냐’더라”

스위스 제네바에서 7월23일과 24일 이틀간 열린 WTO 일반이사회에서 우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두고 양국은 처음 제대로 맞붙었다. 이 대결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평가를 엇갈렸다. ‘무승부였다’, ‘국제사회 지지를 얻는 데 한국이 실패했다’는 걱정스러운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국제통상위원장을 지낸 송기호 통상 전문 변호사는 “일본이 규제를 정당화할 논리를 펼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송 변호사는 우리 정부 대표단이 출국하기 직전, 일본의 수출 규제가 부당하다는 주장에 힘을 보탤 문건을 입수해 정부 측에 제공했다. 2003년과 2008년 일본이 우리를 백색국가로 지정하면서 그 이유를 명시한 문건으로, 일본이 현재 우리를 백색국가에서 제외 빈약함을 보여줄 근거가 된다. 7월25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송 변호사를 만나 향후 WTO 제소 전망과 현재 한·일 관계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해당 문건은 어떤 경로로 받았고 그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일본이 2003년 우리나라를 백색국가로 지정했고 2008년 재래식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품의 수출통제를 강화했을 때도 우리를 백색국가로 유지했다. WTO 규정인 가트(GATT) 10조 3항엔 수출규제를 일관되고 공평하게 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과거 일본이 우리를 백색국가로 지정한 근거를 알면, 지금 우리를 제외하려는 게 가트 조항 위반 행위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문건이 정부의 대단한 기밀문서가 아니고 당시 일본 언론에도 공개됐었는데 좀 오래됐기 때문에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웠다. 일본 측에 요청해 받았고, 우리 정부에도 바로 제공했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당장 어떤 영향이 있나.

“백색국가 제외를 우리가 지나치게 큰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도 다 비(非)백색국가다. 일본이 지금 천 백여 개 개별 품목들에 대해 어떤 방식의 규제를 가할 것인지 그 고시를 하나하나 정하고 있는데, 사실 백색국가 제외 자체보다 이 내용이 더 핵심이다. 이번에 일본이 우리가 백색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부품 3개를 개별허가로 돌리지 않았나. 비유를 하자면,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건 우리에게 대포를 쏠 지점을 살짝 옮기거나 가까이 하는 조치일 뿐이며, 실제 폭격은 각 품목들을 개별허가로 바꾸는 것이다. 다음달로 예상되는 백색국가 제외 시행 시점에 맞춰 일본이 이 고시 내용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수산물 패배한 아베, 이번 제소에 부담 클 것“

이번 WTO 일반이사회가 한·일 무승부로 끝났다는 평가가 있다.

“무승부 아니다. 일본이 과연 어떤 논리를 가지고 나올지 주목했었는데 규제를 정당화할 어떠한 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일각에선 본격 소송에 들어가면 뭔가를 내놓을 거라고 하지만, 일반이사회 자리도 굉장히 절차상 중요한 만큼, 그런 게 있었다면 이번에 제시했을 거다. 일본은 줄곧 우리가 에칭가스를 북한에 반출했다고 주장했는데, 정말 구체적 근거가 있었다면 이사회에서 이 부분을 강하게 제기했을 거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었다. 다음 달 나올 이사회 의사록을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일본이 논리를 펼치는 데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 대표팀이 떠나면서 ‘아주 쉬운 논리로 일본에 반박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던 것도 이런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일까.

“일본이 어떤 자료와 논거를 갖고 나올지 완벽히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걱정은 있었겠지만, 우리 전략 물자 통제 시스템이 문제없다는 확신에서 나온 자신감이었다고 본다.”

이제 이후 제소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

“WTO 정식 제소는 협의 요청서를 제출한 후 최소 60일이 지난 후 가능하다. 제소까지 가기 전 최대한 협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거다. 그 사이 당사국들은 협의에 성실하게 임할 의무가 있는데 일본은 지금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60일 후 제소는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판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

“WTO 제소를 통해 당장 아베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조치의 폭을 좁힐 수가 있다는 점에서 당장의 효과가 없다고 할 순 없다. 만일 WTO 절차가 진행 중인데도 아베가 국제적 분업 질서를 흔들 조치를 강행한다면 WTO가 이를 그냥 용납하진 않을 거다. 7월1일 아베 조치 이후 여러 일본 사람들과 얘길 나눴다. ‘WTO 수산물 분쟁에서도 한국에 졌는데 이번에 또 지면 무슨 창피냐’더라. 아베도 WTO 판결에 불리할 수 있는 조치를 자제할 수밖에 없을 거다.”

WTO 제소에 대해 아베가 오히려 부담이 더 클 것 같다.

“지금까지 WTO 분쟁의 99.9%는 수산물, 자동차 등 최종소비재에 대한 것들이었다. 국제 분업 체제에서 이번처럼 ‘원자재’를 대상으로, 공급단계의 교란을 일으켰던 케이스는 그동안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아베의 이번 조치는 극단적 ‘자해’ 행위로서 국제적 동조를 얻기 힘들 거다.”

그런데 이런 우려 속에도 일본 국민들은 아베의 이런 조치에 찬성하고 있지 않나.

“이는 단기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에서 발생한 여론이다. 우리 정부가 아베와만 상대하지 않고 일본 국민과도 좀 더 소통하며 우리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왜 위안부 한일 협정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지,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사법 주권을 해치는 일인지 설명해줘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일본의 10억엔 보상 문제다. 이건 아베 개인 돈이 아니라 일본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한국이 돈까지 받아가 놓고 이제 와 협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나온다며 비판하고 있다. 아베 정권 실세는 한국을 ‘보이스피싱 국가’라고 표현하며 여론을 조성했다. 이러한 오해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아베와는 원칙적으로 싸워나가되, 일본 국민과는 꾸준한 소통이 필요하다. 일본에 아베만 있는 건 아니다.”

또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처법엔 어떤 게 있을까.

“지금은 급하니까, 우리 중소기업한테 핵심 소재 부품 자체 개발해라 투자해라 한다. 그런데 아베가 몇 달 후 다시 규제를 풀어버리면 우리 대기업들은 어디로 가겠나. 다시 일본과 거래할 거다. 아베가 나중에 규제를 풀든 말든 우리 중소기업과 함께 가겠다는 국내의 어떠한 약속도 신뢰도 지금은 없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직접 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과연 우린 우리 산업 생태계를 변화시킬 의지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아베가 지금 우리에게 묻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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