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평소엔 ‘동료 의원’, 급하면 ‘막말’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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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의회, 동료 의원에 “씨XX” 발언 논란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폴리티컬 드릴링(Political Drilling)'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발표됐다. 이 노래 가사는 실제 정치인들이 공식 석상에서 주고받은 막말과 욕설이다. "나는 그녀를 냉장고 속 가방에 잘게 다져서 넣을 때까지 쉬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다. 이 말은 2017년 조지 오스본 전 영국 재무장관의 실제 발언이다.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비난이었는데, 이는 당시에도 막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데에는 정치인들의 폭력적 언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는 평이었다.

경남 창원시의회 본회의 전경 ⓒ창원시의회 제공
경남 창원시의회 본회의 전경 ⓒ창원시의회 제공

구점득 "공개 사과 요구"… 백승규 "욕설하지 않았다"

의회 역사가 깊은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막말 정치인이 뿌리를 내리기 힘들다. 2012년 영국 노동당 소속 나지르 아흐메드 상원의원은 "오바마에게 1000만 파운드 현상금을 걸겠다"며 파키스탄 테러범에 대해 1000만달러 현상금을 내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당으로부터 정직(停職) 처분을 받았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도 신(神)의 의도"라고 발언했던 미국 공화당의 리처드 머독 전 재무장관도 상원의원 선거에서 떨어졌다. ‘지켜야 할 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2014년 8월 도쿄도의회에서 자민당 소속 스즈키 아키히로 의원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 불임 치료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한 여성 도의원의 주장에 대해 "본인이나 빨리 결혼하라"고 비아냥댔다. 문제의 발언으로 비난이 쇄도하자 스즈키 의원은 사과 성명을 내고 자민당을 탈당했다.

국회에서 동료 의원 간 막말을 둘러싼 시비가 있었다. 2016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선 한선교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의원은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한 발언으로 진땀을 뺐다. 당시 유 의원은 "명백한 성희롱 발언으로 대단히 불쾌하다"며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국회에서 있을 수 없는 불미스런 일이었다.

지방 의회 의원들도 못된 것을 배우는 모양이다. 구점득 창원시의회 의원(자유한국당 소속)이 7월26일 "씨XX"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백승규 창원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소속)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백 시의원은 7월24일 사업장 현장점검 때 이동하면서 "씨XX"이라고 말했는데, 상임위에서 설전을 벌였던 여성 의원인 구 시의원을 겨냥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구점득 시의원은 7월26일 "의회에서 있어선 안 될 일"이라며 시의회 차원의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백승규 시의원은 "'아이 씨'라고 발언한 것은 인정한다"면서 "욕설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민주당 창원시의회 대표단도 막말 논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막말 논란의 한 가운데 있는 정치인이 오히려 특정 진영의 비호를 받고 있는 우리 정치권 현실과 오버랩된다.

정치적 반대 의사를 멋대로 표현할 자유만 외치고 그 표현이 적절한지 고민하지 않는 것은 국회나 지방의회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정치는 돈으로 거래하기 어려운 '말의 땅'이다. 때문에 정치인의 막말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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