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4 11: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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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소설 《천년의 질문》 펴낸 조정래 작가

“내가 최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남북통일의 기틀이 되고,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할 수 있는 북핵 문제가 뒤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통일을 위해 앞으로 노력할 70년 세월의 기반이 될 일인데 잘 해결되지 않고 있어 우려가 된다. 둘째는 경제다. 지금 경제가 아주 나쁘다. 한 정권의 탓만이 아니라 국제 정세의 여러 가지가 얽힌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국회를 중심으로 해서 너무 파렴치하고 치졸한 말싸움을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너무 실망스럽다. 그래선 안 된다. 여야가 똑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최근 조정래 작가가 《천년의 질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의 문제의식과 현 정국에 대한 통찰은 신작 소설인 《천년의 질문》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젊은 시절 대하소설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해 호평을 받은 작가가 최근 10여 년 동안 현실을 파헤친 문제작들을 펴냈는데, 이번에도 그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

《천년의 질문》(전3권) 조정래 지음│해냄 펴냄 | 각 416쪽 내외│각 1만4800원 © 시사저널 박은숙
《천년의 질문》(전3권) 조정래 지음│해냄 펴냄 | 각 416쪽 내외│각 1만4800원 © 시사저널 박은숙

거대 자본에 휘둘려 인간이 소외된 상황 통찰

“소설을 쓰기 위해 1976년부터 사회를 응시해 왔다. 나는 대략 서너 개 소설을 한꺼번에 구상하며 준비한다. 표면적으로 대충 20년쯤 소재가 머릿속에서 굴러간다. 《태백산맥》을 쓸 때도 《아리랑》 《한강》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등장인물도 안배했었다. 이 소설도 긴 세월 동안 구상했다. 제일 먼저 책, 그다음 언론보도, 마지막으로 거기에 필요한 실제 경험을 한 인물들을 만나는 3단계의 취재를 거쳐 정리하고 소설로 옮긴 것이다. 그러므로 취재수첩이 130여 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던지는 질문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천 년에 걸쳐 하나의 거대한 집단, 즉 국가에 소속되어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되물었을 법한 질문인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이다. 기본적이고도 치열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작가는 국가의 정체를 밝히고자 한 동서양의 연구서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관점에서 국가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직접 만나 심층적으로 취재하면서 21세기 국가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취재수첩을 든 작가의 모습은 언론사 기자와 다를 바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수필을 본 적이 있다.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기자는 사회의 등불이고 산소여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굉장히 좋은 말이다. 기자는 그 기준 속에서 모든 분야를 서치라이트를 켜고 보듯 자세히, 구체적으로, 폭넓게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기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그 인물은 작가가 소망하는 바, 바라고 있는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소망을 담아 썼다. 그가 작가의 바람대로 잘 움직여주리라 믿고 설정했다.”

작가는 수십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생생한 캐릭터를 부여해 정경유착의 실태와 비정규직 문제, 급격한 사회 양극화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드러낸다. ‘입법·사법·행정이라는 국가권력에 재벌·언론이라는 사회권력이 야합해 온갖 비리를 조장하고 있는 현실’을 짚어낸 작가는 불법 비자금, 전관예우 문제 등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는 권력 범죄의 실태를 소설로 형상화함으로써 상위 10%가 전체 국민 소득의 절반을 독식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그래서 어떤 독자에게는 재미없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정치색을 지나치기 드러낸다거나 어떤 사안에 대해 편향적 사고를 보인다는 등 이러쿵저러쿵할 법도 하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고, 형상화다. 나는 소설이 어떠한 문제는 제기하되 해결할 수 없다는 정의까지 존중한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내 나름대로 해결책까지 강구하고 있다.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차후에 평가될 것이다. 이 소설만큼은 해결책까지 내야만 작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돌아보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소설은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본과 권력에 휘말려 욕망을 키워가는 현대인들을 담담히 그려간다. 월급 통장에 매달 ‘0원’을 찍으며 사건 취재에 고군분투하는 기자의 노력,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동료들이 낙엽 떨어지듯 일자리를 잃자 자신이 낳은 두 아이의 눈빛까지 무서워졌다는 만년 시간강사의 고뇌가 술회되는 한편, 비자금 장부의 행방을 추적하는 재벌 그룹 구성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그려진다. ‘개천에서 승천한 용’인 서울대 출신 수재는 재벌가 사위로 발탁된 후 온몸을 다 바쳐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결국 죽어도 진골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비자금 장부를 훔쳐 잠적하고, 재벌의 유화정책으로 굳게 입 닫은 언론에 좌절한 기자와 그를 회유하기 위한 재벌 정보원의 전방위적 시도가 긴박하게 연출된다.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혈안인 국회의원과 사업가, 변호사 등의 아귀다툼은 치열하기만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제일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에 나오는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라는 말이다. 국가라고 하는 것은 있을 필요가 없는데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종교를 거부할 수 없듯 국가도 거부할 수 없다. 가령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의 경우 국가가 정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으로 바뀌어 행사되기 시작할 때 이 세상 모든 권력은 부패, 타락, 횡폭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막는 것은 그 권력을 만들어준 국민의 의무이며 책임이다. 그런데 국민은 민주주의란 이념하에 권력자들이 국민이 소망하는 행복한 국가를 만들어주리라고 신뢰한다. 그것을 끊임없이 배반해 온 것이 수천 년에 걸친 권력자들이다. 3권에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앞으로 얼마가 걸리든 평화적 혁명을 통해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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