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예술도시에서 미래 도시로 변신하는 ‘광주’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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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광주의 여름 화려하게 수놓은 ‘미디어 아트’

최근 광주가 연일 국제행사 개최로 떠들썩했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여러 뉴스거리를 남기며 얼마 전 막을 내렸고, 그보다 앞선 6월 말에는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nternational Symposium on Electronic Art, 이하 ISEA)이 열렸다. 1988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시작된 미디어아트 분야의 국제적인 네트워킹 행사다. 매년 한 도시를 선정해 최첨단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아티스트․기술자․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데, 광주가 올해의 개최지였던 것이다.

일주일의 행사기간동안 미디어아트 전시와 공연, 워크샵, 학술행사가 빼곡히 프로그램을 채웠다. 메인 행사장이었던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일대는 화려한 볼거리들로 매일이 축제였다. 거대한 홀 한가운데서 로봇들이 춤을 추고, 개막공연에서는 전통음악에 맞춰 30대의 드론이 날아올랐다. 미디어아트 공연들의 현란한 불빛과 중독성 있는 전자멜로디는 홀린 듯이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디지털의 환경은 분명 다른 예술매체보다 친숙함이 있었지만, 뜻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실험정신이 함께 뒤섞이니 저도 모르게 몰입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었다. 마약을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ISEA2019 기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매일 공연된 빌 본(Bill Vorn)의 로봇 퍼포먼스 '코파카바나 머신 섹스(Copacabana Machine Sex)'의 한 장면 ⓒ김지나
ISEA2019 기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매일 공연된 빌 본(Bill Vorn)의 로봇 퍼포먼스 '코파카바나 머신 섹스(Copacabana Machine Sex)'의 한 장면 ⓒ김지나

유네스코 창의도시 도전하는 광주

이번 ISEA 개최는 피렌체와의 경합 끝에 쟁취한 성과였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와 대한민국의 예향 광주가 미디어아트라는 부문에서 경쟁자로 만난 것이다. 광주는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도전하기 위해 미디어아트를 선택했고, 피렌체는 지난 2월 처음으로 디지털아트와 전자음악을 테마로 한 'Bright Festival'을 개최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디어아트는 전통적 예술도시가 미래적 변신을 꾀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는 모양이다.

왜 미디어아트인가를 질문하면, 광주라는 지명이 ‘빛 광(光)’자를 쓴다는 설명이 빠지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홍보하기 좋은 명분일 뿐이다. 광주발전연구원에서 2014년 1월에 발간한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의 실천과제들’이란 글에 따르면, 미디어아트는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기초 연구와 자문을 거친 결과, 광주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되기에 미디어아트가 가장 유리한 분야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향으로서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계승한다는 이유에 더해, 광산업과 첨단영상미디어산업이 광주의 전략산업이기 때문에 미디어아트와 연관이 깊다는 주장이다. 광주의 예술적 전통, 민주와 인권의 역사가 첨단 과학 기술력과 융합된다면 새로운 가치가 창조될 것이라는 비전도 제시하고 있다. 선언적이지만 좋은 방향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ISEA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학술대회. 영국 테이트모던의 이숙경 큐레이터가 백남준 작가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김지나
ISEA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학술대회. 영국 테이트모던의 이숙경 큐레이터가 백남준 작가의 예술세계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김지나

여기서 '새로운 가치'는 무엇을 위한 가치일까. 여러 문건들에서 광주가 유네스코창의도시에 도전한 이유는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임을 강조한다. 즉 미디어아트는 그 수단과 방법이고, 새로운 가치란 곧 도시의 발전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을 활용한 여타 도시재생사업들이 직면하듯이, 예술은 도시발전을 위한 '도구'일 뿐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답은 항상 '아니오'다. 어떻게 하면 도구에 그치지 않을 수 있는지는 명쾌하지 않지만, 어쨌든 늘 '아니오'가 정답이다. 이에 대해선 광주에 대한 유네스코의 평가내용에서 약간의 부연설명을 찾을 수 있다. 유네스코는 ‘미디어아트에 인권, 휴머니즘 등 공동체의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가치문제를 드러낸 시도들이 의미 있다고 본 것이다.

광주에 위치한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김지나
광주에 위치한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김지나

미디어 아트가 인간의 가치를 잊지 않는 법

과학기술의 혁신적인 발전, 특히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기술이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게 되는 시점인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 올 것이란 암울한 미래가 예측되고 있다. 그런 한편, 미디어 아트계에서는 미술작품을 인공지능이 큐레이팅하고 인간과 로봇이 그린 그림을 서로 비교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빅데이터가 되고, 예술가는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삶이 옳은 삶인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미디어아트가 인간의 가치에 대해 환기시키는 방법들의 한 예들이다.

이렇듯 미디어아트는 '도구'가 아닌 '척후병'을 자처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방향을 탐색하는 일, 즉 기술의 인문적 가치를 상상하는 일이 예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ISEA, 그리고 2017년과 2018년의 광주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에서도 일관되게 발견되는 미디어아트의 본질이다.

단지 도시 안에 미디어아트 작품 몇 개 설치한다고 미디어아트 창의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광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한 도시다. 기술적 특이점에 맞서는 또 한 번의 혁명을 광주에서 일으켜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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