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2차 보복 영향은? “성장률 1%대로” vs “대폭 하락 없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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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애초 전망치보다 낮은 성장률 기록할 것”
일각에선 “日이 더 큰 피해 볼 수도”

올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한국에 대한 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배제 등 연이은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올해 우리 성장률 전망치 등 거시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도 적잖은 우려를 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블룸버그뉴스는 8월1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한국 경제는 둔화할 것’(South Korea Sees Economy Slowing If Japan Acts on ‘White List’)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는 교역 당사국에서 제외하면 한국 경제는 올해 애초 전망치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힌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은 인용해 보도했다.

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결과는 ‘고통스러울 것(painful)’”이라면서 “한국의 자동차, 철강, 항공, 전자산업 등이 영향을 받을 것이고, (이런 영향으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의 최신 전망치인 2.2%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뉴스는 전했다.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정부의 솔직한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일본 정부가 각의(국무회의)에서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결정한 8월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브리핑 화면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각의(국무회의)에서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인 백색국가 명단(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결정한 8월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브리핑 화면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화이트 리스트 배제로 韓 경제 고통스러울 것”

한국은행도 최근 비슷한 우려를 내놓은 바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7월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일본 수출 규제는 이번 전망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악화된다면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있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한은이 불과 닷새 전에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0.3%포인트나 대폭 낮춘 시점에 나왔다.

아울러 이 총재는 일본 수출 규제의 부정적 영향이 확대되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추가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수출 규제 등이 악화한다면 대응 여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 역시 열어뒀다. 향후 우리 경제의 앞날이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 셈이다.

실제 이미 적잖은 경제 전망기관들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조정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국내외 43개 기관의 올해 한국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지난달 기준 2.1%로 6월(2.2%)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국내외 43개 기관 중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 곳은 스탠다드차타드(1.0%), IHS마켓(1.4%), ING그룹(1.4%), 노무라증권(1.8%), 모건스탠리(1.8%), BoA메릴린치(1.9%) 등 10곳으로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이번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는 한국 수출의 핵심인 반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외경제연구원은 반도체 분야에 대한 규제가 장기화 되면 재고 고갈과 시스템 반도체 개발 등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장은 “(사태가) 장기화 되면 차세대 반도체 개발 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장기적으로 한국 성장 잠재력을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이 8월2일 오전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이 8월2일 오전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日 정부가 벌린 일에 日 기업들이 더 큰 피해 볼 수도”

하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의 거시경제에 미칠 영향이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수출을 금지한 게 아니라 절차 등을 어렵고 복잡하게 한 것”이라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응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따라 우리나라 성장률 등 거시경제 전망을 수정할 필요성은 없을 것 같다”며 “그러나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오히려 일본 정부가 벌린 일에 일본 회사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반도체 소재 공급에 차질이 생겨 한국 반도체 회사가 감산을 해야 한다면 반도체 가격이 올라간다면, 이 피해가 반도체를 쓰는 일본 입장에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반도체는 약간의 수급 차이에도 가격이 크게 변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 반도체 소재 공급에 차질이 생겨 한국 반도체 회사가 감산을 해야 한다면 반도체 가격은 올라갈 것”이라면서 “만약 30% 정도 감산한다면 당장 공급이 수요의 90%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가격이 지금의 3~4배 이상으로 뛸 것이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파는 양이 줄어도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손해 볼 게 없지만 반도체를 쓰는 일본은 입장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또 한국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작년 일본 10대 메이저 전자업체가 거둔 영업이익을 다 합친 게 278억 달러인데, 한국의 삼성전자는 535억 달러”라면서 “일본 상위 10개 전자회사의 이익을 다 모아봐야 삼성전자의 절반 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15년 사이 반도체와 핸드폰 경기가 어려웠던 몇 년을 제외한 대부분 기간에 삼성전자가 일본 대표 전자회사들보다 많은 이익을 냈다”며 “일본이 부품에서 강하지만 이를 집합해 제품화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 우리는 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일본이 자랑하는 장인정신도 이런 변화 앞에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즉 한·일 분쟁이 장기화 돼도 한국 기업들이 이를 돌파할 저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경제 분쟁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한·일 사이에 걸려 있는 많은 정치적 사안들의 운명이 달라진다”면서 “경제적으로 승리하면 과거사 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다. 일본이 우리를 진정한 경쟁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살펴봤다면 ‘무조건 굽혀야 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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