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生死 오갔던 승객들, 제주항공에 집단소송 제기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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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승객들 사고 이후 고막 이상 등 고통 호소…나몰라라 하는 제주항공에 더 빈축

지난 6월 발생한 '제주항공 필리핀-인천 긴급회항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승객들이 항공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8월8일 제주항공 승객 46명은 비행기 기체 결함으로 인한 회항으로 입은 자신들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주항공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100만원~5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또 사건 당시 단순한 ‘센서 오작동’으로 인한 회항이었다는 제주항공 측의 해명과 달리, 승객들에게는 '여압장치 고장'이라는 ‘기체 결함’을 안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리 중인 제주항공 여객기 ⓒ 연합포토
수리 중인 제주항공 여객기 ⓒ 연합포토

 

시계바늘을 6월12일로 돌려보자. 승객들은 필리핀 클락공항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4604 여객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 후 고도를 높이던 중 경보가 울렸고, 비행기는 출발 20여분 만에 클락공항으로 긴급회항했다. 회항 과정은 긴박했다고 승객들은 증언했다. 일부 산소마스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승무원들의 대처도 미흡해 승객들의 불안이 더 가중됐다는 것이다.

이후 대처 역시 지적됐다. 제주항공 측은 6월13일 제주항공 항공편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와 마닐라공항에서 출발하는 대체 항공편을 마련했지만 승객들은 공항에서만 7시간을 넘게 대기해야 했다. 제주항공 측은 또 공항으로 이동하는 승객들에게 ‘보상금 계좌 입금 양식’이라는 서류를 주며 고객명과 은행명, 계좌번호 등을 기입해 제출할 것을 요구해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경보가 울린 것은 단순한 ‘센서 오작동’으로 인한 것이었고, 회항 도중 상황이 해제됐다”고 설명했다. 또 승무원들이 매뉴얼에 따라 대처했기 때문에 대처 방식에 문제가 없으며, 승객들이 산소마스크 사용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작동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6월12일 단독 보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6월12일 ‘[단독] 필리핀서 인천 향하던 제주항공 회항 당시 긴박한 상황’ 참조).

 

‘센서 오작동’이라던 제주항공, 알고 보니 ‘여압장치 고장’

그러나 승객들이 긴급회항 당시 촬영한 제보 영상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제주항공 측은 승객들에게 ‘여압장치 고장’이라는 안내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상에 따르면, 제주항공 관계자는 기내에 있던 승객들에게 “여압 장치는 기내 기압을 일정하게 맞춰주는 장치인데, 그 장비가 고장이 나 외부 기압과 기내 기압이 다른 상태”라며 “이대로 문을 열게 되면 고막이 터진다. 기압을 맞추기 위한 조치 중에 있으니 조치되는 대로 안내하겠다”고 설명했다.

 

6월12일 사고 당시 제주항공은 단순한 '센서 오작동'으로 회항했다고 일관되게 언론에 해명했다. 그러나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객들에게는 "여압장치가 고장났다"는 안내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 승객 제공

 

여압장치는 높은 고도를 비행하는 항공기 내부의 기압을 조절하는 장치로, 항공기 전수점검에서도 엔진∙조종∙착륙장치∙보조동력장치와 함께 주요 점검 부분으로 꼽히는 핵심 장치다. 여압장치가 고장 나 기압이 낮아지면 산소 공급이 줄어들어 호흡곤란과 두통, 고막 통증 등을 유발하고 정신을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압장치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비행기는 고도를 급격히 하강하고, 승객들에게는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게 하고 있다. 같은 상황이었던 이번 회항 사건의 원인도 여압장치 고장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제주항공 측은 언론을 통해 “센서 오작동으로 인해 경보가 울린 것”이라며 기체 결함 논란을 일축했다. 그러나 승객들에게 이미 여압장치 고장이라는 기체 결함을 안내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항공사는 항공기 사고를 방지해야 할 고도의 주의 의무가 있다. 불량 정비와 점검으로 인해 기체결함이 발견돼 항공기 운항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항공사의 책임은 가중돼야 한다. 승객들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예율의 김지혜 변호사는 “제주항공이 주장하는대로 센서 오류로 인한 회항이라고 하더라도, 센서 오작동 역시 기체 결함에 해당한다”며 "기체 결함으로 인한 항공기 사고는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미리 충실한 항공기 정비·점검을 하지 않고 비행 중 기체 결함을 발견할 경우, 안전운항의무가 있는 항공사의 ‘책임가중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승객은 비행기가 급하강을 할 때부터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고막에 심한 통증과 두통을 겪었고, 이후에도 통증을 느꼈다. 6명의 승객이 관련 통증과 이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이 중 3명에 대한 진단서와 진료영수증 등이 제출됐고, 나머지 승객도 추가로 제출할 예정이다. 한 승객은 종합병원 검진 결과 ‘양쪽 감각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았고, 양측 귀의 신경이 많이 손상돼 일상생활의 지장이 없으려면 보청기를 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았다. 중이염으로 인한 난청이 있기는 했지만 이 사건 발생 전과 비교해 난청이 악화됐다고 주치의는 판단했다. 다른 승객 역시 ‘우측 감각신경성 난청’에 대해 통원치료를 받았고, 한 승객은 고막의 기타 장애, 급성 부비동염, 우측 고막 내 출혈 진단을 받아 약물 치료를 받았다. 이 승객은 사건 이후 항공기 탑승 과정에서 우측 귀의 통증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 보청기 사용이 필요한 승객은 500만원, 나머지 승객들은 100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과거에도 여압장치 문제로 과징금 6억원 처분 받아

지난 2015년 12월에도 김포를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제주항공 여객기 7C101편이 여압장치 문제로 급하강한 유사 사례가 있었다. 비행기가 급하강하면서 산소호흡기가 내려왔고, 승객들은 귀에 통증을 호소하면서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사고 즉시 국토부는 조사에 나섰고, 조사 결과 사고 여객기의 조종사가 공기압 조절 스위치를 켜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종사는 객실 기압이 낮아지고 객실여압 경고음이 발생하자 스위치를 작동시키고 고도를 하강했다. 이후 여압시스템 기능은 회복됐으나 객실 여압이 충분히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행기는 상승했고, 귀 통증을 호소하는 승객이 발생하자 다시 재하강했다. 비행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에서 산소마스크 착용이 조치됐으며, 비행기는 비상선언 후 착륙했다. 당시 제주항공은 6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제주항공은 2011년 7월에도 이륙한 지 6분이 될 때까지 기내 공기공급 스위치를 켜지 않아 급하강한 사건으로 과징금 1000만원, 해당 조종사의 1개월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회항 당시 산소마스크가 일부 작동되지 않아 불안감은 가중됐다고 해당 여객기 승객들은 밝혔다. ⓒ 승객 제공
6월12일 회항 당시 산소마스크가 일부 작동되지 않아 불안감은 가중됐다고 해당 여객기 승객들은 밝혔다. ⓒ 승객 제공

 

현재 국토교통부는 필리핀-인천 제주항공 회항 사건에 대한 사실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토부는 항공안전감독관을 배정해 사실 조사 진행 중에 있으며, 관련 종사자 인터뷰 및 항공기 운항자료 등을 확인해 제주항공이 항공안전법 및 관련 규정에 따라 적절히 조치했는지와 규정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결과에 따라 위반사항이 있을 경우 항공사 및 관련종사자에 대한 행정처분을 할 계획이며, 조사는 9월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승객들은 소송 과정에서 제주항공 측의 의무위반행위가 발견될 경우, 업무상 과실치상 등에 대해 형사 절차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제주항공, 회항 이후 ‘합리적 조치’ 이행했나

국제선 비행기 연착이나 결항으로 인한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국제 항공협약인 몬트리올협약에 따른다. 이 협약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항공사는 항공 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 등에 대해 책임을 지게 규정돼 있다. 예외적으로 ‘항공사가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했거나 또는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체 결함 뿐 아니라 항공사의 합리적 조치 이행 여부도 소송의 쟁점이 된다. 합리적인 조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항공사가 정비 의무를 다해도 피할 수 없는 결함이었는지, 기장과 승무원이 비상대응조치 매뉴얼에 따라 행동했는지, 승객들에게 숙박 및 교통편, 대체 항공편을 제공했는지, 그와 관련해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됐는지 등이 기준이 된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회항 사건 이후 대처에서도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제주항공 측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승객들에게 사인을 요구한 양식은 비행기의 지연ㆍ결항 시 보상되는 양식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승객들은 “기체 결함으로 인한 회항인데 지연 및 결항 시 보상 양식을 승객들에게 요구하면서 보상을 끝내려고만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입국 이후에 이동 비용 등을 지원한다고 얘기했지만 승객들이 직접 결제를 해야 했고, 이후 비용 처리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고 승객들은 지적했다.

그동안 국내 항공기가 지연되거나 결항되면 승객 안전을 이유로 항공사의 과실을 문제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면책 범위가 매우 넓었던 것이다. 항공기 점검, 기상 상태, 공항 사정, 항공기 접속 상태 등 항공사가 주장하는 많은 이유로 항공사의 책임을 면제해준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승객들이 연이어 승소하면서 항공사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 2월 법원은 짙은 안개로 비행기를 지연시키고 승객들을 14시간 동안 대기하게 했다가 결항을 통보한 이스타항공에 제기된 소송에서 승객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스타항공이 성인 1인에게는 60만원, 미성년자에게는 40만원을 배상하고, 여행 취소로 환불받지 못한 경제적 손해도 함께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공사가 승객의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2017년 기체결함을 이유로 2차례 연속 결항해 손해를 끼친 이스타항공에 대해서도 법원은 지난해 4월 승객 1인당 9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이스타항공은 항공운송인이 승객의 손해를 피하려는 조치를 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손해배상이 면책되도록 규정된 규약을 예로 들어 자신들이 면책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항공사가 제시한 증거나 자료만으로는 정비의무를 다해도 피할 수 없는 기체결함과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김지혜 변호사는 "항공기 정비·점검에 투자해 기체 결함으로 인한 지연과 회항 사고 등을 줄여야 할 항공사가 노후된 부품과 기체로 무리하게 운항노선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항공운송업을 하고 있다"며 "안전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항공기 정비·정검절차 등을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된 사건이 다수"라고 지적했다. 또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기체 결함으로 인한 지연∙회항∙비상착륙 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은 무겁게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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