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대한 탐구’ 50년에 돌아본 도올의 《반야심경》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1 11:00
  • 호수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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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당대 지식인 가운데 호불호가 가장 명확한 한 사람이 도올 김용옥이다. 도올은 ‘여수·순천사건’이나 ‘제주 4·3사건’ 등 우리 근대사가 가진 예민한 사건들에 대한 직설적 해석을 방송 등을 통해 전달하고, 이승만 등 인물에 대한 평가에도 스스럼없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가 생길 수밖에 없고, 때로는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도올의 사상과 역사에 대한 자존감은 어디에서 생겼을지가 그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관심거리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출간한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는 그의 사상적 원류를 읽고, 이제 노년에 해당하는 나이가 되어가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통나무 펴냄 │248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통나무 펴냄 │248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길고 긴 사상 여정 압축한 책

이번 책이 그의 50년 사상여정을 압축한 책이면서 지금까지 어느 책보다 쉽게 읽힌다는 점은 대교약졸(大巧若拙·매우 공교한 솜씨는 서투른 것같이 보인다)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책이다. 이 책은 그의 지난 삶의 여정을 정리한 책답게 출생부터 말한다. 출생과 서울 유학, 그리고 고려대 생물학과 입학과 신병으로 인한 귀향을 서술하는 저자는 담담하다.

도올의 사상에 대한 관심은 기독교에서 시작했고, 신병을 겪은 후에는 신학대학 입학으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1년 만에 신학대학을 나오고, 이후에는 세상의 종교, 철학 등에서 어느 한쪽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사상을 섭렵한다. 그의 사상에 대한 긴 여정이 이때부터 시작되고, 이 길에서 만난 위대한 깨달음을 준 책 《반야심경》과의 만남을 정리한 책이다. 도올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전공을 철학으로 바꾼다. 신학이 가진 교조적 환경을 못 버텨 했기 때문이다.

“나의 주체적 삶의 체험 속에서 철학적 진리를 용해시키려고 맹렬하게 노력했다. 신학에서 철학으로 제가 문학(問學·묻고 배우다)의 길을 바꾼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신학은 전제가 있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철학은 무전제의 학문이었다.”

철학의 세계로 더 깊이 갈 때 도올에게 불교는 빼놓을 수 없는 세계였고, 휴학한 후 스님 체험을 선택한다. 고향에서 멀지 않은 광덕사에 머물다가 그는 해우소에서 《반야심경》을 만난다. 이미 기독교에 대한 고민과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상태에서 만난 《반야심경》은 그를 크게 흔든다.

“한 글자 두 글자, 센텐스 바이 센텐스…. 그 뜻을 생각해 보는 순간, 아니! 막연하지만 그 의미가 통달케 되면서 펼쳐지는 광막한 사유의 세계, 전 우주가 나의 의식권 내에서 기발한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나는 정말 무지막지한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반야심경》과의 첫 만남은 도올의 사상적 여정에서 그만큼 비중이 컸다. 사실 철학이나 종교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배경도 《반야심경》이 주는 비의를 통해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반야심경》에 대한 해석은 흥미롭다.

“이것은 반불교다! 이것은 불교가 아니다! 이것은 불교의 모든 논리를 근본에서부터 파괴하는 전혀 새로운 논리다!” 도올은 《반야심경》을 통해 반대의 개념, 무의 개념을 생각하게 된다. 이 경험은 자신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다시 하산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입은 승복을 인지하지 않는 어머니를 통해 ‘사람’을 알아낸다.

“나는 그 순간 종교보다 인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하나의 대오(大悟)였다. 제도화된 종교의 규범은 인간에게 덮어씌워진 겉껍데기라는 것! 껍데기는 가라~ 나는 그 체험을 통해 목사의 옷도 벗었고 승려의 옷도 벗었다. 그리고 무전제의 철학의 길만을 고집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후 이 책은 《반야심경》이나 불교가 가진 근본을 알기 위해 한국 불교의 역사와 흐름을 소개한다. 특히 서산대사, 경허, 만공처럼 경계를 넘어선 위대한 선사를 통해 한국 불교의 맥을 풀어낸다. 다음은 싯달타로부터 한국에서 번성한 대승불교까지 여정을 풀어내고, 불교의 근본이념을 설명한다.

 

일흔 살 도올이 정리하는 《반야심경》

이 과정에서 《반야심경》이 가진 불교적 가치에 접근하기 위해 《반야심경》의 탄생부터 살피고 있다. 도올은 《반야심경》 260자가 600권에 달하는 《대반야경》의 핵심을 요약한 경전이라고 봤다. 탄생한 시간은 AD 300년 정도로 봤으며, 이 경전의 탄생은 불교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축복이었다고 봤다. 그리고 작가 자신에게도 《반야심경》을 통해 “나는 ×도 아니다”는 깨달음을 주는 계기였다. 도올은 책 후반에 《반야심경》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한다.

“나는 《반야심경》을 공(空)의 철학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반야심경》은 철두철미한 무(無)의 철학이다. ‘공이다’라는 규정성조차도 부정해 버리는 철두철미한 부정의 논리다. 그 부정은 불교 자체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스무 살 도올이 만난 《반야심경》과 일흔 살 도올이 정리하는 《반야심경》의 간극에는 수많은 사상적 길들이 있었다. 정도전이나 최한기, 동학 등 한국 사상이나 논어·노자·맹자 등 중국 사상, 화이트헤드 등 서양 철학, 깊은 기독교 유산에 대한 탐험 등 그가 여행했던 사상의 길을 쉽게 정리할 수 없다. 특히 답사를 통한 한국 독립운동사에 관한 고민은 여느 역사학자에 못지않은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긴 사상의 여정을 지난 후 정리한 텍스트가 《반야심경》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반야심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충분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불호의 흐름도 만만치 않다. 그가 참여한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방송 내용으로 이승만의 양아들에게 고발을 당해 경찰 조사를 앞둔 것도 경계 없는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도올에게 큰 환란이다. 이 책만으로 고희를 넘긴 도올이 어떤 사상적 여정을 걸어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올의 결기를 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오도송은 죽을 때까지 써야 할 것 같다. 너무도 처절하게 죽어간 무수한 우리 현대사의 원혼들이 나의 영혼을 붙들고 울부짖고 있는 한, 나는 해탈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스바하’의 노래도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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