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간 ‘평화의 소녀상’에 기겁하는 일본대사관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o@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9 17:00
  • 호수 15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독일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전시에 공문으로 “치우라” 압박

8월1일, 베를린에 위치한 주독일 일본대사관이 독일-오스트리아 여성 예술가 총연맹(GEDOK) 갤러리에 서한을 보냈다. 2일 개막하는 전시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대사관 측은 “해당 사안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담은 자료”라며 주최 측에 3장의 입장문과 15장의 PPT 자료를 보냈다. 작품 철회를 직접 요구하진 않았지만,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와 맺은 합의를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가 생존자 할머니들과 국민 일반의 반대를 무시한 채 강행한 이 합의에는 4개의 이면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한국 정부는 해외에 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고,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설득하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2017년 12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한·일 양국 정부 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며 사실상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김서경·김운성 작가가 만든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2011년 12월14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00번째 수요집회를 맞이해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졌다. 소녀상은 미국과 중국, 독일 등 세계 각국에 설치돼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이면 합의 내용 중 2개가 소녀상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 영향력을 증명한다.

독일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다. 투표로 선출된 나치 정권은 집단수용소를 세우고 유럽 전역에서 600여만 명의 유대인과 사회적 소수자들을 학살했다. 독일 정부는 전범 재판과 68세대의 혁명을 거치며 역사적 죄를 인정했고 이를 널리 알리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독일 땅에서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배 문제 해결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옛 식민 국가들 사이에서 독일은 일본이 따라야 할 모델로 거론된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아베 일본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독일의 과거사 해결 노력을 소개하고 일본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 일본 국민과 서구 사회의 눈과 귀를 막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이런 행태와 비판이 과거사 청산을 착실히 해 나가고 있는 독일에서 알려지는 것에 대해 일본대사관은 거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7년 3월8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유럽 최초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 연합뉴스
2017년 3월8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 유럽 최초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 연합뉴스

“위안부 본질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폭력”

일본대사관은 그간 독일 내 소녀상 전시와 설치에 압력을 가해 왔다. 올해 6월 도르트문트의 체헤 촐러른 미술관장도 소녀상을 전시한다는 이유로 주독일 일본총영사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 희생자추모관은 1년여 전 고작 15cm 높이의 소녀상 모형을 ‘이달의 전시물’로 소개했다는 이유로 일본대사관으로부터 “소녀상을 치우라”는 연락을 받았다. 추모관 측은 “흔치 않은 요구에 매우 당황했으나 전시는 예정대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 같은 요청은 독일 사회의 노력을 무시한 채 침묵의 카르텔로 끌어들이려는 몰역사적 처사란 비판을 받고 있다.

베를린의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는 2008년부터 독일에서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고 있다. 한정화 회장은 주독일 일본대사관의 위안부 문제 은폐 시도를 10여 년간 지켜봤다. 코리아협의회는 지금까지 위안부 생존자인 길원옥·이옥선·김복동·이수산 할머니 등을 초청해 순회강연을 주최했고, 그때마다 일본대사관에 만남을 제의했다. 한 회장은 “항상 ‘(할머니가) 통역 없이 완벽한 독일어나 영어, 일본어로 소통이 가능한 경우에만 (대사를) 만날 수 있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가 정말 해결됐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에 소녀상을 세우고 해외 소녀상 설치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독일 정부가 ‘홀로코스트 문제를 해결했다’며 추모비를 못 세우게 한다고 가정해 보면, 일본 정부의 반대가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학자 로베르트 좀머는 “나치 치하의 강제 성 노동, 특히 군용 공창과 위안부 시스템에는 구조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제도 모두 인종주의에 기반해 여성들을 인종에 따라 분류·동원했으며, 여성들을 거짓말로 속이거나 강제로 성 노동에 동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방해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 예술은 흔히 정치적인 담론의 출발점으로 작용하며, 역사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며 일본대사관의 독일 내 소녀상 전시 개입에 우려를 표했다.

한 회장 역시 위안부는 “한·일 양국뿐 아니라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약 14개 국가의 문제”라며 나아가 “전쟁을 빌미로 한 여성의 인권 침해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인류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군의 위안부부터 나치의 성노예, 그리고 미국·소련·영국·프랑스 점령군의 독일 여성 강간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여성을 무참히 도구로 만드는 이데올로기와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위안부 사례는 독일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했다.

한 회장은 “독일인들은 수치를 딛고 일어나 목소리를 내는 할머님들께 큰 관심과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12월 쾰른 강연 끝에 이수산 할머니께서 열변을 토하셨다. 그런데 통역을 하기도 전에 독일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말이 안 통해도 그 발언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모두가 공감했다”며 “들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완벽한’ 어학 능력 없이도 대화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기억했다.

코리아협의회는 9월12일부터 상설 전시관을 열고 GEDOK에서 소녀상을 옮겨와 영구 전시한다. 베를린의 각 학교와 연계해 독일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전쟁과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루는 교육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8월14일에는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집회도 연다. 한 회장은 일본 활동가 및 단체와의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인도 많다. 특히 일본 남성 사진작가인 야지마 쓰카사는 3년간 나눔의 집에서 일했고 지난 10년간 독일 40여 곳에서 나와 함께 강연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이 함께 움직인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처음부터 정부가 아닌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공론화됐다. 시민사회가 더 많은 압력을 가해야 정부도 움직인다. 일본 시민사회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