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비아그라’를 못 만들까
  • 권한상 부경대 신소재시스템공학과 교수 (kwon13@pknu.ac.kr)
  • 승인 2019.08.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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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연구과제 성공률, 한국 95% vs 선진국 20%…박수 받을 일일까
최초 계획과 다른 결과 나오면 벌칙 부과…융통성 없는 한국 과학계
권한상 부경대 신소재시스템공학과 교수
권한상 부경대 신소재시스템공학과 교수

1년 뒤 오늘의 식사를 어디서 어떤 메뉴의 음식을 얼마를 주고 먹을 것인가. 이번 옷을 구매할 예정이라면 어떤 상표와 디자인의 옷을 얼마에 어디서 살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연구자들은 이같은 당황스러운 질문에도 정성스레 그 답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짧게는 수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국가 연구과제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과학기술의 특수성은 무시된다. 여행 보따리 챙기듯 예언자에 맞먹는 과제 제안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연구과제 최종 결과 심사에서 심심치 않게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이 발행하곤 한다. 이를테면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A4용지를 구매해야 하지만 사정상 A3용지를 구매했을 경우, 감독자는 연구자에게 연구과제비를 유용했다고 질책한다.

필자가 근무했던 스위스연방재료과학기술연구소(EMPA)의 경우, 연구자가 최초 계획서에 없던 연구관련 자료 및 재료 등을 구매하더라도 연구 효율성을 위한 방안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집행이 가능했다. 이러한 점은 연구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다양한 사유서와 증빙자료, 그리고 색안경의 시선을 마주쳐야 하는 대한민국 예언가 양성 프로젝트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은 2008년 5월28일 서울경찰청 외사과에서 수사관이 중국산 가짜 비아그라 압수품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2008년 5월28일 서울경찰청 외사과에서 수사관이 중국산 가짜 비아그라 압수품을 살펴보는 모습 ⓒ연합뉴스

‘예언가’ 양성하는 국가 과학기술프로젝트

물론 국가의 소중한 예산을 지원받는 일인 만큼 큰 틀의 연구 방향, 그 결과에 따른 기술적 경제적 파급 효과의 제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분야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다. 최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예측 불가능한 결과들이 파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발기부전 치료제로 널리 알려져 있는 ‘비아그라’ 역시 최초의 개발 계획은 협심증과 고혈압의 치료용 신약이었다.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서 폐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임상시험 도중 대상환자에서 발기 빈도가 증가하는 것이 발견돼 발기부전 치료제로 출시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만약 비아그라 같은 사례가 대한민국의 국가 프로젝트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융통성 없는 대한민국 과학계에선 최초 연구 계획과 상이한 결과라며 폐기 처분시켰을 것이다. 담당 연구자는 국가 연구비 낭비라는 비난과 함께 불이익을 받았을지 모른다.

20조5300억원, 2019년도 대한민국의 한해 정부의 연구‧개발(R&D)예산이다. 사상 최고의 R&D 예산이지만 융통성이 결여된 현재의 상황에선 아마도 최초 연구 계획과 결과 만을 짜맞추는 비율만 올리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그 결과, 국가 연구과제 성공률은 95%로 그 어느 때 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의 약 20% 성공률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성공률로만 따지자면,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최강 기술 대국이다. 그러나 실제 산업에 적용되는 수치는 아마도 한자리 수 이하로 예측된다.

그렇다면 해마다 증가하는 정부 R&D 예산과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악순환이 왜 계속해서 반복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어쩌면 연구자들 스스로 만든 결과 일지도 모른다. 국가가 인지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부분에서 과학기술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연구 제안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수의 국가 연구 과제 수주가 연구자의 객관적 역량과 기술적 진보성보다는 학연과 지연 등의 상관 관계에 따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 연구실 관계자가 실험실에서 측정기기를 시연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한 연구실 관계자가 실험실에서 측정기기를 시연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학연과 지연으로 수주받는 국가 연구과제

이러한 부분은 국익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연구자들 스스로가 솔선수범해 학연과 지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국가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과학기술 개발 타이밍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개발돼도 그 시대에 맞지 않으면 사장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과학기술분야에서 시행되고 있는 각종 규제의 일정기간 면제와 유예의 혜택 역시 하나의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 연구과제가 실패하더라도 실패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역시 데이터베이스화해서 향후 경험에 적극 활용하고 격려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 조성 없이는 아무리 많은 역대급 정부R&D 예산이 지원되는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국가 과제 따먹기 식의 예언자 연구자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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