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변했다’ 소리 듣는 40~50대 ‘초로기 치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1 10: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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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얌전하던 사람이 자주 화를 내는 등 성격 변화로 시작

냉장고 문을 열고 “뭘 꺼내려고 했더라?”거나 평소 얌전하던 사람이 별것도 아닌 일에 자주 화를 낸다면 치매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변화는 미미해 스트레스나 바쁜 일정이나 건망증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40~50대에서 이런 증상이 잦다면 초로기 치매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담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치매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생긴다. 그러나 40세부터 65세 미만의 젊은 층에서도 치매가 발병한다. 이처럼 노년에 접어드는 초기에 생기는 치매를 초로기 치매라고 부른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므로 젊은 치매라고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노인 기준인 65살이 안 된 초로기 치매 환자는 2009년 1만7000명에서 2019년 6만3000명으로 10년 사이에 4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치매 환자 수가 약 73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치매 환자 10명 가운데 1명은 초로기 치매인 셈이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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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빠르고 생존기간 짧은 게 특징

초로기 치매는 노년기 치매와 달리 유전적 영향이 조금 더 크다고 알려졌다. 다만 최근 들어 초로기 치매 환자 수가 늘어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뇌졸중 같은 뇌혈관질환이 늘어난 게 원인으로 꼽힌다. 혈관이 막히면서 뇌로 들어가는 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뇌세포가 죽으면서 혈관성 치매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음주나 식습관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젊은 층 사이에서 건강검진도 활성화되고 치매라는 병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동안 치매가 아닌 줄 알았다가 새로 진단을 받는 사람이 많아진 영향도 있다.

초로기 치매는 노년기 치매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노년기 치매는 2~3년에 한 단계씩 악화한다면 초로기 치매는 1년 만에 중증이 될 정도로 진행한다. 진행이 빠른 만큼 초로기 치매는 진단 후 생존기간도 짧다. 지난해 미국 알츠하이머병학회 연례학술회의에서 초로기 치매 환자의 생존기간이 진단 후 평균 6년으로 매우 짧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네덜란드 자유대학 메디컬센터 치매센터 연구팀이 초로기 치매 환자 약 4500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초로기 치매 환자의 생존기간은 치매의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5~6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초로기 치매의 증상은 노년기 치매보다 다양하다. 노년기 치매는 대부분 기억력이 나빠지는 증상이 먼저 생기고 이후 주의력, 언어, 시공간 능력이 떨어진다. 초로기 치매는 성격 변화가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초로기 치매는 또 감정과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뇌 앞부분) 기능이 나빠지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참을성이 없어지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접한 주변 사람들은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생산활동이 왕성한 연령대에 치매에 걸리므로 직업 경력이 단절되고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노년기 치매보다 사회적 안전망이 미흡해 초로기 치매 환자와 보호자는 더 큰 좌절감에 빠지기도 한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젊은 층이 치매에 걸렸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생계다. 우리는 물론 세계 각국도 초로기 치매 환자의 심각한 경제 문제를 덜어주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또 그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초기에 알아채지 못하는 게 큰 문제다. 치매는 주로 노년기에 온다는 인식 탓에 진단이 늦어지는 것이다. 또 초로기 치매의 증상이 우울증이나 갱년기 증상과 비슷한 면이 있어 치매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김기웅 교수는 “생산활동을 하는 연령대의 치매여서 치료가 절실하지만 치료 효과가 낮아 안타깝다. 진단 시기를 놓치지 말고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며 “회사에서 실수가 잦아 지적받는 일이 늘어날 때, 예전엔 그렇지 않던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불같이 화를 낸다거나 식당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들을 혼내는 일이 잦아질 때, 반대로 화를 많이 내던 사람이 관심이나 의욕이 떨어질 때, 멋을 내던 사람이 씻지도 않고 어디 가려고도 하지 않고 혼자 있으려고만 할 때 등 과거와 달라진 점이 나타나면 전문의를 찾아 진단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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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필름이 자주 끊기면 치매 위험

초로기 치매의 유발 원인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예컨대 비타민 B12나 엽산 결핍과 갑상선 저하와 같은 대사성 질환, 정상압 수두증(압력은 정상인데도 뇌척수액이 뇌를 압박하는 증상), 우울증 등이 대표적인 치료 가능한 원인 질환이다. 이런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인지 저하 증상은 매우 좋아진다.

불가역적 원인 질환도 있다.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질환, 전·측두엽 문제, 알코올, 루이소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은 노년기 치매는 물론 초로기 치매의 원인 질환 1위다. 치매 물질(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질환이 알츠하이머병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뇌 세포막에 있는 물질이 대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물질이다. 알츠하이머병은 노년기 치매 원인의 60%를 차지하지만 초로기 치매에서는 약 30% 남짓으로 그 비율이 낮다. 초로기 알츠하이머 치매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일반적으로 노년기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력 저하로 증상이 시작된다. 오래전 일은 기억하지만 최근 일들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후 주의력, 언어, 시공간 능력이 떨어진다. 초로기 치매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두정엽(뇌 윗부분)에 더 많이 쌓이고 시공간 지각 능력과 언어 능력이 떨어진다. 초로기 치매의 원인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되면 노년기 치매와 동일하게 약물(아세틸콜린분해효소억제제) 치료로 증상을 완화한다.

초로기 치매의 두 번째 원인은 혈관성이다. 어떤 이유로든 뇌 혈류가 막히면(일과성 허혈발작과 허혈성 뇌졸중) 뇌세포가 파괴되면서 치매가 생긴다. 이재홍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술도 혈관성 치매를 일으키는데 흔히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자주 반복된다면 초로기 치매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초로기 치매의 원인 중 전·측두엽 문제는 그 비율이 노년기 치매에서는 2%로 낮은 편이지만 초로기 치매에서는 13%로 높다. 뇌 앞부분인 전두엽에 이상이 생기면 성격 변화, 자제력 저하, 무관심과 같은 행동장애를 보인다. 뇌 옆부분인 측두엽 문제라면 지나친 성욕이나 식욕 증상이 생긴다. 전·측두엽 치매 환자는 공공장소에서 성적인 행동이나 말을 하며 다른 사람의 음식을 뺏어 먹기도 한다.

알코올성 치매는 장기간 술을 마신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알코올성 치매 환자의 뇌를 영상으로 찍으면 전반적으로 뇌가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데 특히 전두엽 부위가 매우 작아진 상태를 볼 수 있다. 전두엽은 판단 등 복잡한 생각을 담당하는 곳이다. 뇌 신경세포 내에서 루이소체라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생기기도 한다. 이 물질이 뇌에 쌓이면서 뇌세포가 파괴돼 치매가 생기는데 이것이 루이소체 치매다. 루이소체 치매는 초로기 치매의 4%를 차지한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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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고 콜레스테롤 줄여야

이처럼 다양한 초로기 치매는 원인을 찾아야 그에 맞는 약물로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가벼운 우울·배회 증상이나 반복적인 질문을 하는 증상 등은 비약물 치료(운동, 언어 치료 등)로도 호전된다. 이재홍 교수는 “환자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환경적 요인과 대인관계 등을 세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 환자에게 익숙한 환경을 유지하고 환자가 쉽게 이해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치매와 관련된 약은 많이 나와 있지만 약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근본적인 완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약물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생활습관을 함께 개선해야 효과적이다. 특히 초로기 치매는 음주, 흡연, 대화,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이전에 하지 않았던 취미활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초로기 치매 중 혈관성 치매는 평소 생활과 밀접하다. 불량한 생활습관으로 혈관 질환이 생기는 것이다. 혈관은 평생 관리해야 한다. 담배를 끊고 콜레스테롤 많은 음식을 적게 먹고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 또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혈관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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