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의 시대’ 만든 ‘新정언유착’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9 10: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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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은 축적된다. 문제는 축적의 힘이다. 막말이 축적되면 앞서 들었던 막말의 충격은 예전 같지 않게 된다. 그렇게 막말은 더 강한 막말로 대체된다. 막말이 막말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 축적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 정치권이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올 한 해 ‘빨갱이’ ‘사이코패스’ ‘도둑놈’과 같은 전통적 막말부터 ‘한센병 환자’ ‘달창’ ‘천렵질’과 같은 새로운 막말을 쏟아냈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제1세력이 정치권인 셈이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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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막말은 다른 어떤 집단의 막말보다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왜 그럴까. 먼저 ‘학습 효과’다. 2017년 골든 글로브 공로상 수상 연설에서 미국 배우 메릴 스트립은 장애인을 비하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공인의 발언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허가를 주게 된다”고 했다. 올해 정치권이 쏟아낸 막말에는 유독 사회적 약자를 비하한 말이 많다. 시민의 대표자가 주권자 시민을 모독한 것이다.

정치권 막말의 또 다른 문제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는 데 있다. 정치란 ‘말의 투쟁’이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란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체제”라고 정의했다. 과거 집권 세력이 교체되면 상대를 죽이던 야만을 종료시킨 게 바로 정치다. 즉 총칼로 싸우지 않고 대표를 보내 말로 싸우는 제도가 바로 의회 정치인 것이다.

정치권은 정치를 다시 전쟁처럼 만들고 있다. 막말은 전쟁터의 총알과 같다. 상대의 정치적 생명을 끊겠다는 탄환 같은 막말이 정치권에 흘러넘친다. 나를 위협하는 대상과 소통·타협할 사람은 없다. 또 정치권 막말은 시민들이 사회 주요 의제를 숙고토록 하지 않고 혐오나 분노의 감정을 자극·동원해 정치를 전쟁처럼 여기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정치가 할 수 있는 게 점점 적어진다. 우리 의회 제도는 합의를 통해서만 성과를 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문제 해결의 주체인 정치권이 성과는 내지 못하고 싸우기만 하면 당연히 국민은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아니, 결국 국민은 ‘정치 혐오’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주체가 딱 한 곳 있다. 바로 언론이다. 상당수 언론들은 정치권 막말을 여과 없이, 가치 판단 없이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오히려 막말을 고르고 골라 제목으로 만들고 읽기 좋은 위치에 배치한다. 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체 플랫폼이 힘을 잃고 뉴스 유통 대부분을 포털사이트에 의존하는 지금은 언론사에 전쟁 같은 상황이다. 이럴 때 ‘관심’은 ‘돈’이자 ‘권력’이다. 더 많은 클릭을 위해 언론은 기꺼이 ‘혐오발언’에 가까운 막말들을 ‘예쁘게’ 편집해 준다. 언론 입장에서 정치권은 ‘잘 팔리는’ 혐오성 막말을 매일, 공개적으로 쏟아내‘주’는 거의 유일한 집단이다. 국민의 ‘정치 혐오’는 이미 높아 막말을 국민 정서에 들이부으면 폭발하게 돼 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서운 정치인들이 계속 막말을 하는 이유다. 그렇게 정치권과 언론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된다. 이 동맹 구조로 피해를 보는 주체는 딱 하나다. 주권자,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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