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갑부의 “폭력시위 반대” 광고에 숨겨진 ‘반전 암호’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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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위 두고 “폭력 반대” 광고 게재…네티즌 “숨겨진 뜻은 ‘홍콩자치 보장’”

‘폭력(暴力)’이란 두 글자 위에 찍힌 빨간색 금지 마크.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李嘉誠·91)이 8월16일 현지 신문에 실은 광고다. 홍콩 사태에 관한 이 광고는 누가 봐도 폭력시위를 규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 속에 담겨 있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해당 광고의 위쪽에는 “최고의 의도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最好的因 可成最壞的果)”고 적혀 있다. 왼쪽에는 “자유를 사랑하고(愛自由), 관용을 사랑하고(愛包容), 법치를 사랑하라(愛法治)”, 오른쪽엔 “중국을 사랑하고(愛中國), 홍콩을 사랑하고(愛香港), 스스로를 사랑하라(愛自己)”는 문구가 세로로 나열돼 있다.

또 아래에는 “분노를 사랑으로 다스리자(以愛之讓 止息怒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홍콩시민 리카싱(一個香港市民 李嘉誠)”이라고 나와 있다. 이를 두고 싱가포르 방송채널 CNA는 “도시를 망가뜨리고 중국에 도전해온 시위에 대해 리카싱이 처음으로 공개 메시지를 냈다”고 보도했다. 리카싱의 광고는 명보(明報)와 신보(信報) 등 홍콩 주요 일간지뿐만 아니라 문회보(文匯報), 대공보(大公報) 등 친중 성향의 매체에도 실렸다.

그런데 이 광고에 대해 “숨겨진 뜻이 있다”는 주장이 트위터에서 제기됐다. 광고 문구의 마지막 글자를 따로 조합하면 ‘因果由國 容港治己’란 글귀가 완성된다. 해석하면 “원인과 결과는 국가에 있다.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라”는 뜻이다. BBC의 홍콩 주재기자 그레이스 츠오이는 트위터를 통해 “하나의 문장이 더 있다”고 했다. 나머지 광고 문구의 마지막 글자를 모은 ‘義憤 民誠.’ 그 의미는 “분노는 정당하고 시민은 진실하다”이다. 

8월16일 트위터에 공유된 리카싱의 신문 광고. 각 문구의 마지막 글자를 조합하면 반대의 뜻을 지닌 또 다른 문구가 완성된다. ⓒ 트위터 캡처
8월16일 트위터에 공유된 리카싱의 신문 광고. 각 문구의 마지막 글자를 조합하면 반대의 뜻을 지닌 또 다른 문구가 완성된다. ⓒ 트위터 캡처

같은 날 게재된 리카싱의 또 다른 광고도 곱씹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광고에는 ‘황태지과 하감재적(黃台之瓜 何堪再摘)’이라고 크게 적혀 있다. 중국 고전시가의 한 구절이다. 그 뜻은 “오이를 하나 따면 오이밭을 풍성하게 만들지만, 너무 많이 따면 오이밭을 망친다”는 것이다. 

‘오이’가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 리카싱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나중에 성명을 통해 “정부가 시위자들의 함성을 분명히 들었고, 지금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오이는 홍콩이고 오이를 따는 사람은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며 강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개월 동안 이어진 시위 진압 과정에서 홍콩 경찰 177명이 다쳤다고전했다. 홍콩 재계는 시위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이에 “시위대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 와중에 리카싱의 광고는 전향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광고가 공개되자마자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는 ‘#리카싱이 입을 열다(#LiKa-shingSpeakingOut)’란 해시태그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검색 횟수는 195만에 달했다. 그러다 당일 오후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기 검색어 목록에서 사라졌다. 홍콩 매체 SCMP에 따르면, 웨이보의 한 네티즌은 그를 두고 “늙은 여우”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리카싱이 정말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려고 광고를 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사실이라면 이전 그의 입장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그간 대외적으로 홍콩의 독립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 왔기 때문이다. 다만 경영에 있어서는 잇따른 중국 부동산 매각으로 ‘탈중국’을 추구한다는 눈총도 받아 왔다. 홍콩 최대 기업 청쿵그룹의 창립자 리카싱은 포브스가 뽑은 세계 28위 갑부다. 그의 개인재산은 360억 달러(43조 6100억원)로 추산된다. 

홍콩 최대 부자인 청쿵그룹 창립자 리카싱 ⓒ 연합뉴스
홍콩 최대 부자인 청쿵그룹 창립자 리카싱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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