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 섬사람이 발품으로 맞아낸 맛의 향연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5 11: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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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나고, 섬을 떠도는 강제윤 시인의 맛여행 《전라도 섬맛기행》

사람들에게는 정현종 시인의 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 전문)라는 시구가 익숙하겠지만, 섬사람 강제윤 시인에게는 “섬들 사이에/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가고 싶다”가 더 적확한 이미지다.

그는 섬사람이다. “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 그 수많은 생애의 날에 나는 섬으로 갔다”고 쓴 이유도 그래서다. 전작들의 제목에도 대부분 섬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가 이번에는 섬의 맛을 다룬 《전라도 섬맛기행》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가장 궁금한 것은 그에게 섬은 무엇인가였다.

《전라도 섬맛기행》강제윤 지음│21세기북스 펴냄│264쪽│1만6800원 ⓒ 조창완 제공
《전라도 섬맛기행》강제윤 지음│21세기북스 펴냄│264쪽│1만6800원 ⓒ 조창완 제공

그에게 섬은 무엇인가?

“열흘만 바다를 못 봐도 몸이 탄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보길도에서 태어난 것이 그 시초일 겁니다. 섬이 좋은 것은 이유가 없습니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한없이 평화로워집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섬으로 빠지지 않는 나라다. 대략 4000여 개고, 그중 유인도는 470개인데, 그는 유인도로만 400여 곳을 다녔다. 그중에서 전남 서남해안은 가장 섬이 집중된 지역이다.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작은 섬들을 제외하고 거의 다 다닌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모든 섬이 다 특별했습니다. 겉으로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섬마다 제각기 다른 삶의 내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섬을 꼽으라면 난감합니다. 이번 책은 그 섬마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음식을 다루었습니다. 음식에는 그 섬이 가진 자연, 역사, 사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 그 오감을 표현해 낼 수는 없습니다. 책으로 인연을 맺고, 소중하게 간직해 갔으면 합니다.”

이번 책은 남도 섬 전역을 발로 뛰며 발굴한 토속음식 34가지를 정리했지만 책을 읽는 이들은 이보다 수십 배는 많은 음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섬 하나에 한 가지의 대표음식을 추리다 보니 이런 부제가 달렸을 뿐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우이도 약초막걸리나 진도 찹쌀홍주 등 술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음식이나 술보다 더 깊게 녹아 있는 것이 섬사람이다. 그래서 섬에 사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섬을 섬으로 만든 것은 역시 사람입니다. 무인도들은 사람이 없어서 대동소이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섬들은 아무리 작은 섬도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입니다. 그래서 유인도에는 섬마다 고유한 문화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 문화적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가장 내재화돼 있는 것이 음식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섬과 음식은 더러는 익숙하기도 하지만 신선한 것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 소작쟁의로 유명한 암태도, 시인의 고향이자 윤선도가 정착한 보길도, 영국이 점령했던 거문도 등은 많이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섬은 일반인들에게 익숙지 않다. 그런 섬들도 식재료나 문화,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음식이 만들어졌고, 이번 책은 그것들을 정리했다.

“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는 오랜 세월 전승돼 온 토속음식입니다. 흔한 말로 삶을 말할 때 ‘먹고산다’고 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먹는 일입니다. 섬의 음식에는 섬사람들의 삶이 가장 깊이 투영돼 있습니다. 문자로도 기록되지 못한 섬의 역사가 섬의 음식 속에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이 늙어가고,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이 음식도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걸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번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음식은 대부분 섬 특유의 자산인 물고기가 중심 소재다. 낙지냉연포탕, 감성돔젓국, 보리숭어구이, 산도랏민어곰탕, 장어간국, 전복포, 쏨뱅이무침 등. 음식 이름만 들어도 입맛이 당기는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 소개하는 레시피는 의외로 단순하다. 양념의 경우 거의 대강 썼다.

 

섬에 얽힌 다양한 음식과 역사 소개도

“섬 음식은 양념이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재료 자체가 가장 싱싱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최상급의 원료를 쓰는 것이 섬 음식입니다. 그러니 맛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요리를 좋아하고 손맛이 있다는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책의 레시피는 내가 쓴 것이 아니라 섬 어머니들의 구술을 채록한 것입니다. 어머니들도 양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기호이고, 좋은 섬의 재료 자체가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최상급의 요리는 양념을 최소화한 것입니다. 최고급 해물 요리들인 꽃게나 대게, 킹크랩 요리에 무슨 양념이 필요합니까. 그냥 그 살만으로도 최상의 맛을 내지 않습니까? 금값이라는 다금바리나 감성돔, 돌돔 같은 생선회에 무슨 양념이 중요합니까? 섬 요리는 원재료가 빼어나기 때문에 양념이 적을수록 맛있고 실제로 양념도 세지 않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들을 만나다 보면 바로 섬으로 떠나서 맛보고 싶은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음식의 가치를 더 느끼게 하는 것은 섬이나 재료, 음식이 가진 다양한 이야기들도 있다. 영조의 딸 정명공주에게 등기되는 바람에 소유권을 찾기 위해 투쟁한 하의도 이야기, 정약전의 저서 《자산어보》로 인용되는 기록, 1640년 김씨(김여익)가 최초로 양식을 해서 ‘김’이라는 이름을 얻은 해태, 항일의 섬 소안도는 물론이고 섬마다 가진 다양한 무속 이야기들도 풍성하다.

저자는 현재 사단법인 섬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을 맡고 있다. 더러는 난개발로, 더러는 소외로 고통받는 섬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다. 인문학습원 ‘섬학교’를 만들어 8년째 매월 한 차례 섬 탐방을 다니고, 사진전을 통해 섬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활동도 기대된다.

“섬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교통권이나 의료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 마련과 실현에 애쓸 생각입니다. 섬은 더 보탤 것 없이 그 자체로 빼어난 관광자원입니다. 자꾸 무언가 국적 불명의 시설들을 섬에 만들려 하면 안 됩니다.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토속음식 레시피 하나가 수십억을 들인 시설물보다 섬을 더 잘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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