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 터진 DLS·DLF, ‘제2 키코’ 사태로 비화하나
  • 김희진 시사저널e 기자 (heehee@sisajournal-e.com)
  • 승인 2019.08.23 15: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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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최대 손실률 95% 달할 것”…손실 예상액도 4600억원 육박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판매한 해외 주요국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DLS)이 대규모 원금 손실로 ‘대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상품 판매액이 약 8000억원에 달하는 데다, 손실률도 크기 때문이다. ‘제2의 키코(KIKO)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금융감독원은 뒤늦게 실태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판매현황 및 대응방향’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 DLS·DLF 상품은 8월7일 기준 총 8224억원어치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판매잔액의 88%인 7239억원이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현재와 같은 금리 수준이 상품 만기 시기인 9~11월까지 유지될 경우 예상 손실금액은 4558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주도적으로 판매한 DLS·DLF의 대규모 손실로 ‘제2의 키코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주도적으로 판매한 DLS·DLF의 대규모 손실로 ‘제2의 키코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판매잔액의 88%가 손실 구간 진입

DLS는 미국·영국·독일 등 주요국 채권금리와 연계된 파생결합증권으로 DLF는 DLS를 사모펀드 형태로 만든 파생결합펀드를 의미한다. DLS는 증권사가 발행해 자산운용사가 DLF라는 펀드 형태로 상품을 만들고, 은행이 이 DLF를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투자자 모집이 이뤄졌다.

우리은행(4012억원)과 KEB하나은행(3876억원)의 판매액이 전체 판매잔액의 95.9%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민은행(262억원), 유안타증권(50억원), 미래에셋대우증권(13억원), NH증권(11억원) 순으로 판매됐다. 전체 판매잔액의 99.1%인 8150억원이 은행에서 DLF 사모펀드로 판매됐다.

현재 문제가 불거진 해외 주요국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 중 가장 소비자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는 상품은 우리은행에서 판매한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에 연동된 DLS다. 판매금액 전체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 데다 다음 달부터 만기가 도래하기 시작해 만기까지 예상 손실률이 무려 95.1%에 달한다. 우리은행에서 독일 국채 금리연계형 DLS 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는 김모씨(28)는 “수익률은 3~5%인데 손실률이 100%에 육박한다. 가입 전에 직원이 원금 손실에 대해 제대로 고지했다면 절대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독일이 망하지 않는 이상 절대 원금 손실이 발생할 리 없는 상품이라며 투자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해당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은행이 원금 손실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가입을 유도했다며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8월16일 기준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건은 총 29건이며 민원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2의 키코 사태’를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 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일정 범위 안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나 환율이 상한선 이상 또는 하한선 이하로 내려가면 환손실을 입게 되는 구조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국내에서 환율이 급등했을 때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은 중소·중견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기업 700여 곳이 3조원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 일부 기업들은 환차손으로 흑자도산하기도 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열고 “키코는 기업을 상대로 사기상품을 판매한 것이고, DLS는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사기 판매행위를 한 것”이라며 키코와 DLS 사태 모두 공통적으로 은행의 과도한 투자상품 권유가 문제고 기업에서 개인으로 피해가 전이됐다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금소법 제정해 소비자 보호 나서야”

전문가들은 은행의 고위험 옵션매도 상품 판매를 규제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증권사와 거래했다면 모르지만 은행이 키코나 DLS와 같은 초고위험의 옵션매도 상품을 소비자에게 권유했다는 사실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키코 공대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대순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 역시 박 교수와 의견을 같이했다. 이 변호사는 “소비자들이 증권사에서 금융상품을 산다면 증권사에서 파는 상품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은행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며 “대다수 피해자는 정기예금보다 이익이 높다는 은행원 말에 이끌려 상품에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이후 일반 은행에서는 옵션매도 상품과 같은 고위험 상품을 판매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은행과 거래하는 고객들 대부분은 리스크에 대한 지식이 없고, 투자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주로 예금이자를 기대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건 적합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DLS 사태뿐만 아니라 향후 이와 유사한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제정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소법은 금융상품 판매원칙을 모든 금융업권과 판매 채널에 동일하게 확대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위법계약 해지권이나 징벌적 과징금을 통해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취지다. 해당 법안은 2011년 처음 발의된 이후 여러 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불완전판매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불완전판매를 해도 은행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키코 사건에서 보듯 적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굉장히 약하다”며 “불완전판매에 대한 사후 처벌을 강화해 금융사가 불완전판매에 빠져들 요인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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