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직장 문화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8 18: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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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도입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위반 사례 379건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10건 중 4건에 이르는 폭언으로 밝혀졌다.

직장 내 괴롭힘의 폐해와 관련해서는 이미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일례로 스탠퍼드대학교 로버트 서튼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과 유사한 직장 내 무례함(incivility)의 유형으로 다음 12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인신공격하기, 개인 공간 침범하기, 함부로 신체 접촉하기,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를 위협하기,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 농담 하기, 기분 나쁜 이메일 보내기, 사회적 신분 위협하기, 공개적으로 망신 주기, 무례하게 끼어들기, 경멸하는 표정 짓기, 앞과 뒤가 다르게 행동하기(이중인격), 옆에 있지만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무시)가 그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직장 내 무례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개인 차원에서 자존감의 훼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조직 성과 차원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무례함을 경험한 직원의 66%가 성과 하락을 보여주었고, 78%가 조직 몰입 감소를 호소했으며, 48%가 업무 노력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직장 내 의사결정 및 소통방식을 둘러싸고 직급별로 현격한 (불)만족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직장 내에서 업무 자율성을 부여받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사원의 28.6%, 대리의 28.1%만이 긍정적 응답을 하고 있고, 동기 부여가 잘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사원의 20.6%, 대리의 23.7%만이 동의를 보내고 있다. 사원 및 대리의 압도적 다수가 업무 자율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고 동기 부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답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의 상사는 업무의 목적과 추진 배경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사원·대리의 29.2%만이 동의하고 있고, ‘업무 지시나 피드백 내용이 정확하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34.4%가 동의를 표하고 있다. 역시 사원·대리의 다수는 이들 항목에 대한 불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심지어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나는 사축(社畜·직장에서 기르는 가축을 의미하는 20대의 은어)을 경험한 적이 있다’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70%에 이르렀고, ‘우리 회사에는 꼰대가 있다’에 동의한 비율 또한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조사 자료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바, 우리네 직장 문화는 무례함이나 괴롭힘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무례함은 이미 금지법이 시행 중인 성희롱과 유사한 면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든 성희롱이든 서구에서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우리네 경우는 주로 음주를 수반하는 회식 자리나 공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개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직장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아온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가해자(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의도와 관계없이 피해자의 관점에서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는지 여부가 보다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점도 유사하다. 성희롱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났던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문화가 성희롱의 일상화에 기여해 왔듯이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도 권위주의적 상명하복(上命下服)의 문화가 주원인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상의 관행으로 자리 잡으며 개인에게 내면화된 만큼 하루아침에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 또한 오랫동안 인내심을 갖고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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