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47인의 지역구 도전, 성공할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6 16: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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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명 총선 출마 결정, ‘10% 생존율’ 뛰어넘을지 주목

정치권은 청문회 정국으로 시끄럽지만 물밑에서는 이미 표밭갈이가 한창이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들 가운데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19대 국회 비례대표 52인 중,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이들은 단 5명(남인순·한정애·홍의락·진선미·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불과했다. 생존율이 10%를 채 넘지 못했다. 비례대표에서 지역구로 성공적으로 갈아탄 이들은 일찌감치 출마 지역을 정해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긴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들 또한 지역구라는 기득권의 벽을 뚫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년 4월 총선에서는 어떨까.

20대 국회 47명의 비례대표 의원들은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살길 모색에 분주하다. 이들의 출마 여부를 조사해 보니 37명이 내년 총선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31명은 이미 출마 지역까지 정했다. 나머지 6명은 출마하는 쪽으로 마음은 굳혔지만, 당 공천 상황과 당선 가능성 등을 주시하며 지역을 모색하고 있다. 확실하게 불출마를 결정한 의원은 주미대사로 임명돼 비례대표직을 내려놓게 된 이수혁 민주당 의원과 김성수·제윤경 의원(민주당), 유민봉·조훈현 의원(자유한국당), 이상돈 의원(바른미래당) 등 6명이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 등 4명은 출마 여부를 고민하고 있거나 말을 아끼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연합뉴스

경기 안양 동안을에 3명이 도전장 내

비례대표들이 가장 많이 도전장을 던진 지역은 수도권이다. 출마 지역을 잠정 결정한 31명 중 절반이 넘는 16명이 서울(4명)·경기(11명)·인천(1명) 지역구를 택했다. 학연·혈연 등이 복잡하고 지역색이 강한 지방 민심을 공략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우며, 대부분 수도권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해 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5선의 심재철 한국당 의원이 20년간 사수한 경기 안양 동안을 지역의 경우, 민주당 이재정·바른미래당 임재훈·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모두 출마를 결심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현역의원 4명의 대결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 연수을의 경우,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2017년부터 지역사무소를 두고 출마를 준비하며 민경욱 한국당 의원과의 대결을 예고해 왔다. 지난 7월 대정부질문에서 총선 출마를 두고 민주당 소속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공개 설전을 벌인 김현아 한국당 의원도 김 장관 지역구인 경기 고양정 출마를 잠정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비례대표들이 노리고 있는 지역구 상당수는 10년 이상 지역을 지키고 있는 3선 이상의 중진의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지역구를 정한 31명 의원 가운데 19명이 이에 해당한다. 4선 이상은 15명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지역의 터줏대감인 8선의 서청원 무소속 의원과 4선의 박지원 무소속 의원 지역구에 일찍이 송옥주 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각각 도전장을 냈다. 초선 비례대표들이 중진의원들에게 도전하는 이유는 다선 고령 의원들에 대한 세대교체를 바라는 지역 민심에 호소하고 ‘거물’들에 도전하면 혹 낙선하더라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비례대표제 취지 안 맞아” “과도한 걱정” 팽팽

1인2표 정당명부식의 현행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국회부터 현재 20대 국회까지, 비례대표의 80% 가까이 차기 총선에서 지역구에 도전해 왔다. 이들의 지역구 출마를 두고 정치권에선 비례대표제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꾸준히 있어 왔다. 특정 계층이나 직군을 대표하기 위한 비례대표 자리가 지역구 출마를 위한 정치 경력과 존재감을 쌓는 디딤돌로 여겨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비례대표는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함보다 직능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에 가깝다”며 “비례대표가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건 직능을 대표하라고 뽑았더니 자기 ‘정치’를 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비례대표를 경험한 의원들은 이 같은 시각이 과도한 걱정이라고 지적한다. 한국노총 여성위원장 출신으로, 노동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비례대표가 된 임이자 한국당 의원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헌법에 명시된 피선거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역구 활동이 비례대표 활동에 여러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차기 총선에 불출마 의사를 밝힌 비례대표 제윤경 민주당 의원 역시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비례대표로 입성했지만, 4년 임기 동안 전문성‘만’ 살려 의정을 보는 건 오히려 활동에 더 제약을 두는 것”이라며 “지역구에서 인사치레만 하고 다니는 건 문제지만, 민심을 더 다양하고 정확하게 수렴하는 등 지역 활동이 주는 긍정적 영향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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